01 갑질
‘권위주의’로 추상화된 폭력, 갑의 횡포를 희석하다
한국에서 ‘권위주의’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987년 6월항쟁 직후, 무려 25년간 온 나라를 짓누르던 군부독재의 힘이 꺾이고 바야흐로 ‘민주화’가 시작될 때였다. 국가 폭력과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의 한국인들은 권위주의라는 말 자체를 몰랐다. 해방 후 창간된 『경향신문』1946을 기준으로 할 때 ‘권위주의’가 사용된 기사 수는 1980년대까지 하나도 없다가 1985년엔 13건, 1986년에 21건이었으나 1987년대까지 하나도 없다가 1985년엔 13건, 1986년에 21건이었으나 1987년엔 65건으로 몇 배가 되고, 1988년엔 230건으로 비교할 수 없이 급증했다.
‘권위주의’란 무엇인가
1988년에 출범한 노태우 정부하에서 ‘권위주의 청산’은 시대정신처럼 되었다. 청와대나 여당 같은 권력 핵심부에서뿐 아니라 관료사회, 대학 등에서도 ‘권위주의의 청산’이 모토였다. ‘보통사람’이라는 아이러니컬한 구호를 내세워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노태우 본인이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1987년 12월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당선 축하연을 열며 소주·빈대떡 같은 음식을 차리게 하고, 헤드테이블에 택시·버스 기사, 이·미용사 같은 진짜 보통 사람들과 함께 앉기도 했다. ‘권위주의의 불식’에 걸맞게 한다는 취지였다.
또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부터 “모든 공직자들은 의식과 발상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여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항상 국민에게 친절하고 성실한 공복이 되도록 힘써야할 것”이라고 말하자, 각 시도의 젊은 공무원들 사이엔 ‘관료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상사의 일방적 지시와 인격 모독적인 언행을 배격하자는 바람이 일기도 했다. 서울시도 권위주의 청산 바람에 발맞춰, 시청 현관에 걸려 있던 전두환의 사진을 새 대통령의 사진으로 교체하는 대신, 환호하는 어린이들 사진으로 바꿨다.
대통령 뒤에 붙던 ‘각하’라는 말을 없앤 것도 사실 노태우였는데, 그는 “지금은 권위주의가 민주질서로 이행되”고 “정치사회가 질적으로 바뀌는 체제 전환기”라 규정하며, 안보를 핑계로 정치에 이용하는 일을 절대 안 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물론 이 훌륭한 다짐이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민주화 바람에 분명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으나, 제6공화국에서 권위주의·공안통치 세력은 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반격을 시도하여 1989년에는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정치인, 대학생, 출판인이 잡혀가는 사건은 여전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권위주의’는 독재와 민주주의를 벗어난 행태와 관행을 통칭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용어로 자리를 굳게 잡았다. 서울대 한상진 교수의 『한국사회와 관료적 권위주의』를 비롯하여 1987~1988년 어간에 학자들은 권위주의의 해체를 주제로 책을 내놓거나 잇달아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권위주의의 청산=민주화’라 이해하는 이 ‘위로부터의’ 분위기는 물론 미완의 혁명6월항쟁, 노동자대투쟁이 야기한 사회적·문화적 효과임에 분명했다. 특히 이는 절차적 민주화나 생활세계의 민주화와 깊이 연관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원래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스페인 출신의 정치학자 호안 리츠Juan Linz가 프랑코 정권 같은 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제창한 개념어였다 한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의회제도를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카리스마적 독재자나 일부 집단이 독재로써 의회나 국민을 무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나 국가를 뜻한다.
얼핏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잘 들어맞는 듯하고 이미 상식적인 용어로 정착한 이 번역어는 그러나 지나치게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권위주의만으로는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내전과 정치적 반대자에게 가한 살해·납치·고문 등의 국가범죄, 그리고 대통령 1인의 제왕적이고 자의적인 통치가 잘 표현되지 못한다. 즉 한국식 독재나 분단 상황을 담기에 권위주의는 너무 추상적이거나 점잖은 것이다. 알다시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은 대단히 하드보일드한 폭력적 통치성을 갖고 있었다.
또한 권위주의라는 용어는 독재나 국가폭력의 부정적 뉘앙스를 누그러뜨리고 문제의 본원적 구조를 지적하기보다는 주로 행태와 의식을 환기한다. 그래서 ‘권위주의 극복’은 분단의 극복과 시민·민중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근본 과제를 비껴나갈지 모른다. 만약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는 것도 권위주의고, 상사가 부하 직원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 것도 권위주의고,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사람들을 ‘빨갱이’로 몬다든가 4·3이나 5·18 같은 일도 다 권위주의의 소산이라 한다면, ‘권위주의’란 너무 폭이 넓고 나이브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문제를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과업이 수행되어야 했던 민주 정부 시기에 비추어 생각해봐도 좋겠다. 이를테면 노무현 대통령의 대표적인 업적이 권위주의의 불식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로 그는 소탈하고 서민적인 풍모로 권위주의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 시절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그 같은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에 근거한 권위주의의 불식이었을까? 부족했던 건 오히려 실질적 민주화를 더 깊고 넓게 추진할 아래로부터의 강한 힘이나,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의 흐름에 맞서는 ‘권위 있는’ 방략이 아니었던가?
갑질과 권위주의
이처럼 넓게 사용되고 있는 권위주의는 단지 정치체제를 설명하는 용어만은 아니다. “어떤 일을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지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행동양식이나 사상” 또는 “자신보다 상위의 권위에는 강압적으로 따르는 반면, 하위의 것에 대해서는 오만, 거만하게 행동하려는 심리적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영역 바깥에서 권위주의의 뜻은 2014년부터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일상화된 신조어와 그에 관련된 사회 개혁의 문제를 곧바로 연상하게 한다. 바로 ‘갑질’이다. 권위주의와 갑질은 교집합이 많다. 갑질의 근절도 권위주의의 극복처럼 중요하다. 하지만 ‘갑질 반대’ 자체만으로는 개혁과 민주주의의 본연을 놓칠 수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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