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례식이 있는 날 아침, 나는 적당한 신발을 찾느라 내 방을 샅샅이 헤집고 있다. 하지만 찾아낸 것이라곤 앞코에 구멍이 뚫린 아디다스 운동화와 샌들 한 켤레뿐이다. 아무리 찾아도 굽 낮은 구두는 안 보였다. 겨울옷과 함께 상자에 넣어 다락에 둔 것 같다. 엄마는 점점 조바심을 내더니 엄마 구두라도 신으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벽장을 들여다보다 발목에 끈이 달리고 굽이 8센티미터나 되는 구두를 골랐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하마터먼 고꾸라질 뻔했다. 남동생 제이슨이 “조심해, 바보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였다.
엄마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조심해라, 데이비.”
묘지에 모인 사람들이 손부채질을 하고 있다. 애틀랜틱시티는 25년 만에 무더위 최장 기록이 깨졌는데, 우리는 그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아침 10시인데 기온이 35.5도까지 올랐다. 축축한 모래와 발밑에서 찰싹이는 바다를 느끼며 해변을 거닐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이틀 전 내가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손가락, 발가락이 쪼글쪼글해지자 휴 오빠는 나를 말린 자두 같다고 놀렸다.
휴 오빠.
묘지에서 관이 묻힐 곳으로 걸어가는데 휴 오빠가 보였다. 오빠는 한쪽에 혼자 서 있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처럼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 꺾고 있다. 햇볕을 얼마나 쬐었는지 탈색된 머리카락이 거의 하얗게 보였다. 평소처럼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덮지 않고 옆으로 단정히 빗어 넘겨서인지 눈에 띄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피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나와 제이슨은 무덤에서 엄마 양옆에 섰다. 블라우스 안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속옷에 고이는 게 느껴졌다.
어젯밤에 뉴멕시코주에서 날아온 고모와 고모부가 내 뒤에 섰다. 나는 전에 두 분을 딱 한 번 보았다. 할머니가 도랑가셨을 때. 하지만 그때 나는 다섯 살밖에 안 돼서 장례식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날 아침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 아니라, 나한테 살구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먹이려는 이웃 아주머니와 집에 남아 있는 대신에 다른 식구들과 함께 반짝이는 검은 차에 타고 싶어서.
그런데 이번에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고모가 작게 숨을 들이쉬더니 흥 하고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고모부가 고모에게 뭐라고 속삭였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목덜미에 두 사람의 숨결이 느껴져서 나는 엄마에게 더 바싹 붙었다.
제이슨이 엄마의 손에 매달려 자꾸만 엄마와 나를 힐끔거렸다. 엄마는 똑바로 앞을 보고 있다.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혼자라는 기분이 든 적이 없다.
엄마의 구두가 너무 꽉 끼고 아파서 발을 번갈아 움직였다. 나는 아픈 발과 새끼발가락에 생기고 있는 물집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땅속으로 내려가고 있는 관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관 속에 우리 아빠의 시신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2
무더위는 그날 밤에 수그러들었고, 다음 날 나와 제일 친한 친구 레나야가 우리 집에 올 때까지 줄곧 비가 내렸다. 레나야는 내 침대 끝에 앉아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문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안녕? 기분은 좀 어때?”
레나야가 평소와 달리 어색한 말투로 물었다.
“괜찮아.”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레나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버지 일은 유감이야.”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하려고 하면 무너져 울음을 터뜨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말 충격이었어.”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때 볼티모어에 있어서 몰랐어. 삼촌이 신문을 보고 전화로 알려 주셔서 알았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서 장례식에 맞춰 돌아올 수가 없었어.”
나는 흐리멍덩한 상태로 몇 마디밖에 못 알아들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처럼 아득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레나야는 나에게 암캐구리 해부도를 보여 주었다. 자기가 색연필로 직접 그렸다고 했다. 각각의 기관까지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심장, 위, 폐, 난소. 지금도 어딘가에 그 그림이 있다. 책상 맨 아래 서랍에 둔 것 같다. 그때 우리는 8학년이었다.
레나야는 키가 182.5센티미터나 되고, 무척 말랐고, 흑인이다. 다들 레나야가 농구를 잘할 거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사실은 운동을 아주 싫어한다. 농구보다는 화학 실험 세트로 실험을 하거나 유전학에 대한 책을 읽기를 좋아한다.
우리 아빠는 고등학생 때 농구를 했다. 두 번이나 주 대표 선수로 뛰었다. 대학에서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는데 학업을 포기하고 엄마와 결혼했다. 그리고 여섯 달 반 뒤에 내가 태어났다.
“데이비…… 잠든 거 아니지?”
레나야의 물음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응.”
“침대에서 나와서 옷도 좀 갈아입는 게 어때? 벌써 12시가 넘었어.”
“일어날 기분이 아니야. 피곤해. 발에 물집까지 생겼어.”
“너희 고모한테 들었는데, 너 장례식이 끝난 뒤로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며.”
“아니야. 화장실에 가느라 나온단 말이야.”
내가 자세를 바꾸자 내 다리 옆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 민카가 몸을 죽 펴고 하품을 하더니 제 털을 핥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다시 누울 때까지 턱 아래를 긁어 주었다.
“신문에 난 기사 읽었어?”
내가 물었다.
“응.”
“어떤 거?”
“기억 안 나.”
나는 몇 분 전 레나야가 쌓아 놓은 신문 더미를 뒤적여 한 부를 골라 펼쳐 들고 기사 제목부터 소리 내어 읽었다.
“애덤 웩슬러, 34세, 총에 맞아 사망하다.”
나는 기사를 레나야에게 보여 주었다.
“맨 앞면에 실렸어.”
나는 손등으로 신문을 툭툭 쳤다.
“사진 잘 나왔지?”
나는 레나야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다.
“내가 찍었어, 6월에…… 가게 앞에서. 햇볕 때문에 눈을 가리고 있는 것만 빼면 잘 나왔지, 그렇지?”
“응.”
레나야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나는 그 신문을 내려놓고 다른 걸 집었다. ‘지역 주민 애덤 웩슬러, 살해당하다.’ 레나야를 힐끗 쳐다보니 고개를 숙인 채 자기 허리띠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는 신문을 읽었다.
지난 화요일 저녁, 애덤 웩슬러 씨가 애틀랜틱시티 버지니아 애비뉴에 있는 자신의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강도가 쏜 총에 가슴을 맞고 사망했다. 단독 범행인지 공범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범인은 현금 50달러를 챙겨 빠져나갔다. 웩슬러 씨는 1964년에 애틀랜틱시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유족으로는 아내 궨덜린과 딸 데이비스(15세), 아들 제이슨(7세)이 있다.
나는 신문을 접어 침대 끝으로 휙 던졌다.
“신문은 그만 읽는 게 좋지 않을까?”
레나야가 물었다.
“왜? 다들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고 말하잖아. 그래서 읽는 거야.”
신문이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감정까지 말하진 않는다. 자기 아빠가 갑자기 총에 맞아 죽으면 어떤 심정인지에 대해서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족은 부의금 전액을 미국 심장 협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나는 천장을 보며 레나야에게 이 문장을 암송해 주었다. 엄마가 왜 하필이면 심장 협회에 기부를 하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가슴에 총을 맞긴 했지만. 그것도 네 번씩이나. 단독범인지 공범이 있는지 모를 자에게 네 번씩이나.
고모가 내 방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다, 얘들아.”
“배 안 고파요.”
내가 대답했다.
“간단하게 수프하고 샌드위치야. 레나야, 너도 점심 먹고 갈래?”
“네, 고맙습니다.”
“전 아무것도 안 먹고 싶어요.”
내가 말했다.
“너도 먹어야지, 데이비. 이런 때일수록 힘을 내야 해. 고모가 쟁반에 담아다 줄게. 레나야하고 그냥 네 방에서 먹으렴. 어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씨름을 하는 것보다 이게 나으니까.
고모가 가고 난 다음 레나야에게 말했다.
“우리 고모는 이름이 엘리자베스인데 다들 비치bitsy. 영어로 ‘작은’이라는 뜻.라고 불러. 마흔일곱 살이나 된 여자를 그렇게 부르다니 좀 이상하지 않아? 고모는 우리 아빠의 누나야. 이제는 누나였다, 겠지. 누가 죽고 나면 그렇게 하잖아, 안 그래? 뭐뭐였다, 라고.”
“그런 것 같아.”
레나야가 대답했다.
“고모는 뉴멕시코주에 사셔.”
“나도 들었어. 친절하시더라.”
“월터 고모부는 로스앨러모스에 있는 연구소에서 물리학자로 일하셔. 처음으로 원자 폭탄이 만들어진 곳이래.”
“알아. 네가 자고 있는 동안 너희 고모부랑 이야기했거든. 나도 얼른 물리학 수업 듣고 싶은데, 고등학교 2학년은 돼야 들을 수 있대.”
비치 고모가 쟁반에 점심을 담아 왔다. 야채수프와 참치샌드위치, 얇게 저민 레몬을 띄운 아이스티.
나는 음식을 먹기 시작한 레나야를 바라보았다.
나도 아이스티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고 참치샌드위치를 한입 먹어 보았다. 씹고 또 씹다 보니 속이 메슥거렸다.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복도를 달려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음식을 뱉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토하진 않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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