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비트코인: 기초
비트코인은 과연 무엇인가?
비트코인은 ‘암호화폐’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화폐의 일종이다. 은행이 통제하거나 정부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들의 분산된 네트워크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풀어 생성한다. 비트코인의 생성에는 블록체인이라는 암호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존재하는 암호화폐의 종류는 많지만, 그중 최초이자 최대의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비트코인은 물리적 개체가 아니다. 달러 또는 유로처럼 지폐나 동전으로 제작되지 않는다. 대신 지갑wallet이라고 부르는 디지털 파일에 저장된다. 이 지갑은 스마트폰 혹은 컴퓨터에 있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비트코인을 타인에게 전송하는 데 사용된다.
비트코인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비트코인을 ‘채굴하는mining’ 것이다. 암호화폐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암호 계산을 컴퓨터가 수행하도록 설정하면 된다. 암호 계산을 통해 소량의 비트코인을 획득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원래는 이 방식으로 비트코인이 유통되었지만, 오늘날 채굴 경쟁이 아주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투자 없이 비트코인을 얻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대신 비용을 지불하고 업체가 채굴을 대신해주는 ‘클라우드 채굴cloud minin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얻는 또 다른 방법은 이미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다. 로컬비트코인스닷컴localbitcoins.com 같은 서비스는 비트코인을 달러나 유로 같은 기존 화폐로 교환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거래소를 통해 얻는 방법도 있다. 거래소에서는 비트코인을 달러나 파운드, 유로, 위안으로 서로 환전할 수 있다. 다른 외환 거래와 다르지 않다. 마운트곡스Mt. Gox가 세계 최대의 거래소였지만 2014년 파산했다. 2018년 4월 12일을 기준으로, 거래량 기준 최대 거래소는 바이낸스Binance다.
최근에는 고객이 은행 서비스와 암호화폐 서비스를 연동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도 출시되었다. 비트코인을 예치해두고 상점에서 달러나 파운드 같은 기존의 각국 통화로 사용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코인베이스Coinbase와 비트페이Bitpay가 그 예다.
마지막으로, 비트코인을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재화나 서비스 판매의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는 것이다. 스트라이프Stripe와 페이미엄Paymium 같은 기업은 상인들이 암호화폐를 취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비트코인으로 무엇을 살 수 있는가?
초창기에는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받아들인 첫 번째 시장은 마약류를 비롯한 불법 서비스 시장이었다. 오늘날에는 비트코인을 직접 취급하는 사업체가 많으며, 특히 충성스러운 비트코인 사용자는 코인베이스나 비트페이 같은 카드 연동 서비스를 이용하면 어떤 신용카드 거래에서든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다.
2장
비트코인의 탄생
세상을 뒤흔들 아이디어가 어느 날 갑자기 메일함에서 불쑥 나타나지는 않기 마련이다. 암호기술자 애덤 백Adam Back도 그렇게 생각했다. 2008년 8월,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가상화폐virtual currency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이메일을 보냈을 때 그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백은 1992년에 만들어진 사이퍼펑크cypherpunk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되어 있었는데, 여기에서 컴퓨터상에만 존재하는 화폐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백은 나카모토의 구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모르는 이름이었기에 더 그랬다.
이것이 가공인물 또는 집단으로 여겨지는 나카모토의 이름이 세상에 처음 드러난 때였다. 당시에는 증명되거나 입증되지 않은 나카모토의 아이디어는 비트코인이라고 불렸다. 그로부터 3년이 되지 않아, 사토시 나카모토가 인터넷에서 사라진 시점에 비트코인의 총 가치는 5450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발명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나카모토가 잠적할 때가지 이 새로운 유형의 화폐를 생성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너무도 많이 고쳐 쓰였기 때문에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의 저작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사용되는 비트코인의 컴퓨터 코드 중 나카모토가 작성한 것은 3분의 1 미만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을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요소들처럼 비트코인 역시 이제는 모두의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비트코인처럼 낯설어 보이는 아이디어도 컴퓨터 과학자와 프로그래머, 수학자, 사이퍼펑크 세계의 활동가 들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이들은 기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한 복잡한 아이디어를 많이 고안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경험적으로 ‘넥스트 빅씽next big thing’이라고 칭송되는 대박 아이디어에 회의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동안은 비트코인도 금세 잊힐 또 다른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가상화폐로서 첫 번째 구상도 아니었고, 앞선 아이디어들도 전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비트코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메일 한 통을 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백과 접촉한 이후, 나카모토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암호학 관련 공개 이메일 리스트에 뿌렸다. 다음에는 동등 계층 간peer-to-peer, 이하 P2P 기술이라면 온갖 프로젝트 제안을 받아들였던 P2P재단P2P Foundation 웹사이트에도 게시물을 올렸다. 그때 나카모토의 아이디어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무료 암호화 소프트웨어인 프리티굿프라이버시Pretty Good Privacy의 프로그래밍에 참여했던 핼 피니였다. 비트코인이 탈중앙화 암호화폐라는 점에 매료된 피니는 나카모토와 함께 코드를 작성했다. 피니는 또 200년 초 나카모토가 전송한 최초의 비트코인을 수령하기도 했다. 당시 가치로는 푼돈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속도는 느렸지만 확실히 비트코인은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두 신예 프로그래머 개빈 안드레센Gavin Andresen과 마르티 말미Martti Malmi가 나카모토를 도와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비트코인 코드를 개선해나갔다. 이들은 암호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화폐를 일컫는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2009년 가을에는 탈중앙화된 화폐가 실제로 작동할지도 모른다는 신선한 가능성에 관심을 보인 암호학 괴짜와 자유지상주의자, 프로그래머 들을 위해 포럼을 열기도 했다.
나카모토와 개발자들이 코드를 수정하면서 실험과 테스트를 거듭할수록, 비트코인은 단순한 아이디어 그 이상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코드는 잘 작동했고, 복원력도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아 화폐 생성에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설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비트코인은 더 견고해지는 것 같았다.
비트코인의 기술적 측면은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다른 부분은 아직 부족했다. 2010년 초까지 비트코인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고, 비트코인으로 구매할 만한 것도 없었다. 단지 스티커와 티셔츠 같은 비트코인 관련 상품 몇 가지를 파는 작은 웹사이트만 몇 개 있을 뿐이었다. 2010년 4월에 일어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라즐로 한예츠Laszlo Hanyecz라는 비트코인의 열성 팬이 자신에게 피자를 배달시킨 비트코인 포럼의 회원에게 1만 비트코인을 지불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트코인은 피자를 주문하기에 신뢰할 만한 지불 수단은 아니었다.
입소문을 타다
2010년 7월, 인기 있는 기술뉴스 포털 사이트인 슬래시닷slashdot이 비트코인 관련 뉴스를 메인 화면에 게시했다. 비트코인 프로그램의 다운로드 건수는 일곱 배 가까이 치솟았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은 많아졌어도 이들이 손에 쥘 비트코인은 거의 없었다.
비트코인은 ‘작업증명proof-of-work’이라는 까다로운 계산을 수행하는 대가로 생성되어 배분된다4장 참고. 초기에는 컴퓨터가 채굴 프로그램으로 ‘블록block’이라는 일종의 분산형 거래장부ledger를 완성하면 작업의 보상으로 50비트코인이 생성되고, 생성된 비트코인은 사용자의 가상 지갑으로 들어왔다5장의 ‘화폐 채굴의 세계’ 참고. 중앙은행 없이 돈이 어떻게 ‘발행되는지’의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네트워크에 속한 컴퓨터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보상을 받기가 어렵지 않았다. 비트코인 원년에는 네트워크상에 사토시 나카모토의 컴퓨터가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나카모토는 지갑에 100만 비트코인을 축적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블록 완성의 난이도는 어려워졌다5장의 ‘디지털 군비 경쟁’ 참고. 작업증명을 수행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 컴퓨터 한 대로 블록을 따내기는 거의 복권에 당첨되는 일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때까지도 비트코인은 매우 저렴했다. 현금으로 거래될 때, 1비트코인은 단 몇 센트에 불과했다. 거래는 포럼에서 또는 이메일로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단 몇 달러어치의 비트코인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식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시세가 형성되고 다량을 매입할 수 있어야 했다. 또 재화의 거래에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거래소
P2P 파일 공유 프로그램 e동키eDonkey를 공동 창립한 제드 맥케일럽도 비트코인을 발견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맥케일럽은 「매직: 더 개더링」이라는 카드게임 관련 프로젝트의 거의 방치된 사이트 도메인인 ‘마운트곡스’를 그대로 사용해 비트코인 거래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마운트곡스에서는 누구든 비트코인을 미국 달러로 사고팔 수 있었고, 시세도 시장 수요에 따라 변동했다. 슬래시닷에서 얻은 사람들의 관심에 힘입어, 마운트곡스는 최초의 실질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로 발돋움했다.
이렇게 비트코인을 달러로 사는 것은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2011년 초 두 가지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0년 12월,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를 인터넷에 공개하자, 페이팔PayPal을 비롯한 결제 업체는 위키리크스와 자유지상주의자, 사이퍼펑크에 대한 기부금 결제를 거부했다. 인터넷 활동가들은 이를 검열로 규정하고 비판했으며, 비트코인이 이런 문제의 잠재적 해결책으로 논의되었다. 비트코인은 운영하는 기업이 없어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기부할 수 있고, 정부가 위키리크스의 보도에 엠바고를 걸도록 누군가를 강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마운트곡스의 비트코인 가격은 그 달 30센트까지 오르며 기대를 모았다.
시장
두 달 후, 또 다른 이상주의자가 정부의 영향권을 우회하는 비트코인의 능력을 시험대에 올렸다. 자신을 ‘공포의 해적 로버츠Dread Pirate Roberts’라고만 밝힌 이 사람은 실크로드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실크로드는 정부 통제를 무산시킨다는 이념 아래, 불법 거래를 위한 일종의 아마존Amazon 같은 시장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피해자 없는 물건마약류와 위조된 공문서는 괜찮았지만 무기류, 불법 음란물, 도용된 신원정보는 허용되지 않았다.’만을 판매한다는 철학을 내세운 실크로드는 토어TOR라는 주소 익명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사용자만 접속할 수 있었다. 이 복면을 쓴 공간은 다크 웹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통화는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을 사용함으로써 기존 신용카드 거래보다 익명성이 더 보장되자, 인터넷에 능통한 마약 밀매업자들은 그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인기가 있었던지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고 2011년 상반기에만 수차례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해 6월, 지금은 폐쇄된 거커Gawker라는 웹사이트에 실크로드 관련 기사가 게시되었다. 그 즉시 실크로드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불법이기는 했지만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겨나자 마운트곡스에서 2011년 2월 70센트 정도였던 1비트코인 가격은 5월에는 10달러 가까이, 6월 중순에는 32달러까지 증가했다.
실크로드의 호황은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의 반갑잖은 관심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2011년 6월 5일, 척 슈머미 상원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비트코인과 실크로드를 맹비난하며 관계당국의 엄중한 단속을 촉구했고, 마약단속국과 법무부는 우려를 표명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6월, 공포의 해적 로버츠는 뜨거운 관심이 수그러들기를 기대하며 실크로드 사이트 운영을 자진중단했다.
악명이 높아지자 사람들은 비트코인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마운트곡스 창립자 제드 맥케일럽은 해킹 공격으로부터 사이트를 지키는 데 지쳐가는 중이었다. 2011년 1월에는 사이트에 침입해 4억 500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털어가는 일도 있었다. 3월, 맥케일럽은 다른 개발자에게 사이트를 팔아넘겼다.
비트코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사토시 나카모토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도 2011년 4월 즈음이었다. 나카모토는 짧은 이메일을 몇 통 주고받으면서 일련의 반정부적 행위로 인해 부정적으로 변한 언론 보도와, 비트코인 지지자 사이에서 일종의 악당 같은 존재가 된 자신의 명성에 우려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카모토는 잠적했다. 포럼 계정을 정지시켰고, 이메일도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비트코인 자체가 사라지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 걸려 있었다. 나카모토가 사라진 시점에 존재하던 비트코인의 총 가치는 5400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에 달했는데, 두 달이 지나서는 2억 700만 달러한화 약 2300억 원를 넘어섰다. 2011년 6월 8일, 280만 비트코인이 거래되며 최고 거래치를 경신한 날, 마운트곡스는 24시간 만에 수수료로 90만 달러 가까이를 벌어들였다. 공포의 해적 로버츠가 7월에 재개한 실크로드는 한 달에 3만 달러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고, 그 수치는 빠르게 증가했다. 암호화폐는 더 이상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나 언급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던 암호화폐의 모습은 그 창시자와 함께 사라지고, 실제 가치를 지닌 실제 화폐가 남게 되었다. 그로 인한 부작용도 함께 말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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