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똑똑한 사람들
알고 보니 벌거벗은 임금님!
미국 국민들은 지금 완전히 망한 기분이다.
미국의 위대함과 성장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지난 10년 동안 갑자기 휘청거리며 후퇴하는 경제에 적응해야 했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가구중위소득은 7퍼센트나 하락했다. 계층이 하락하는 사람들도 최근 어느 때보다 늘어나고 있다. 잇따른 여론 조사에서 절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이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살 거라는 젊은 세대의 낙관적 전망은 이 설문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 초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있는 시점에서는 이런 추세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추세와 현 위기를 초래한 집단적인 무능력을 생각해 보면, 고대하던 경제성장이 반짝 나타났다고 해도 그것이 이 나라를 옥죄고 있는 깊은 불안을 몰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극심한 환멸은 주로 답답하게 반복되는 뉴스에서 그 결과가 드러난다. 뉴스를 통해 이런 환멸이 대통령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환멸로 어떤 당이 이익을 얻고 어떤 당이 손해를 보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 나라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반대 이념을 가진 쪽의 정책 때문이든 정치적 불능 상태 때문이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 사회가 마비 상태고, 온통 ‘언쟁’뿐이며, 유권자들과 정치인들 사이는 극단적으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느낀 것은 정치적 무능력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고 실존마저 위태롭게 하는 그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들이 일거에 붕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다. 가장 최근에 드러난 엘리트의 실패인 금융위기로 경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갑자기 벌어진 사태가 아니라 연달아 이어진 부패와 무능이 불러온 결과였다.
만약 이 말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느껴진다면,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미국 사회가 그린 궤적을 잠깐 떠올려보자.
엄밀하고 이성적이며 엘리트적인 사고를 대표하는 연방대법원은 과반을 차지하는 5명의 대법관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었다. 그들의 법 논리는 법원이 예전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을 공공연히 인정할 정도로 뒤틀렸는데 말이다.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의 안보 집단은 남자 19명이 일반 칼과 문구용 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살을 저질렀는데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미국은 역사상 최장기간의 전쟁에 들어갔다.
불과 몇 달 후에는 바로 자신의 토대를 흰개미 떼처럼 갉아먹은 사기 행위로 인해 엔론과 아서앤더슨 사태가 터졌다. 당시 엔론 사태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었다. 그 후 2008년 금융위기의 대혼란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이었던 기업이 알고 보니 전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회계법인의 부추김과 지원을 받아 교묘한 사기극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엔론이 파산 법원에서 헐값에 매각되고, 부시 대통령과 엔론의 최고경영자 켄 레이가 절친한 사이임이 언론에 크게 보도될 무렵 이라크 악재가 시작됐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인 약 4,500명과 이라크인 1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고, 8천 억 달러를 사막에서 기름 태우듯 태워버렸다. 이런 중동의 음울한 풍경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5년 뉴올리언스라는 대도시가 홍수 속에 잠겨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온 구민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질질 끄는 동안, 느닷없이 주택 가격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고 결국 80년 만에 최악의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한 후 미국의 전체 금융시스템은 정말 붕괴할 것만 같았다. 월급 지불과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해지고, 현금자동기기가 모두 쓸모없어지는 금융 정전 말이다.
당시의 비상시국에 나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벤 버냉키와 재무장관 행크 폴슨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고 소란스러운 상원 청문회실에서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이 담긴 세 쪽짜리 제안서를 옹호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상원 은행위원회 의원들이 상세한 질문을 던지며 압박할 때도 버냉키와 폴슨은 이리저리 즉답을 회피했다. 어떤 식으로, 그리고 왜 구제금융 액수를 그만큼 계산했는지 두 사람도 모르는 것 같았다(어느 재무부 직원인 한 기자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그 수치는 그들이 ‘어마어마한 액수’를 얻어내야 했기 때문에 무작위로 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태도로 보아 둘 다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거나 진짜 의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애매하게 답변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들은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게 지켜야 하는 책임자였다. 그러나 간단한 질문에도 모호하고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해대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무능력하거나 수상한 사람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금융 부문에 대한 구제금융안을 통과시켰다. 그 덕에 월가는 즉시 예전의 영광과 부와 수익을 되찾았지만, 나머지 국민들은 섬뜩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 사회를 번영시킨 원천은 사실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폰지 사기였음을.
이런 추문과 실패가 반복되면서 전 국민이 피로감과 절망, 배신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여러 차례의 여론 조사를 보면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은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2006년에 시작된 지난 세 차례의 선거는 반격의 연속이었다. 2006년과 2008년에는 민주당이 카트리나 사태, 막대한 비용을 들이면서도 수많은 희생자만 양산한 이라크전의 수렁, 그리고 요동치며 무너지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을 공격했다. 2010년에는 공화당이 근 30년 만의 최고 실업률 ─ 그리고 대공황 시대에 필적하는 장기 실업률 ─ 을 지적하며 공화당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선거 당일 저녁 톰 브로코는 2010년 중간선거 투표 결과를 분석했다. 그리고 거짓말에 근거한 이라크 전쟁과 거품경제의 파산이 결국 기관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했다. “국민들이 듣던 대로 굴러가는 분야는 거의 한 군데도 없습니다. 정부가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고 발표하곤 했지만 매번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났죠.”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완패’한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 시민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시민은 앞으로 건전한 입법 과정이 보장되는지, 자신이 내일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하러 가도 되는지, 정치인들이 현재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묻고는 만일 그렇다는 대답을 듣는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 말을 못 믿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학계에서 재계에 이르기까지, 위기의 시대에서 발견되는 가장 실망스러운 공통점이 정부의 무능인데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정부가 수행하는 무수히 많은 필수적이고 일상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도로가 건설되고, 하수도 시설은 잘 관리되며, 우편물도 이상 없이 배달된다. 고층 빌딩들이 건축 법규를 어겨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고,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며 전전긍긍하지도 않고, 세무직 공무원이 뇌물을 요구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정부의 실패가 일부 영역에 불과할 뿐, 우리의 일상을 관리하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정부에 대한 우리의 불신이 한계를 넘어서면서 생긴 겁니다.” 루이지애나 호마라는 해변 도시의 해산물 식당에서 이보르 반 헤르덴이 한 말이다. 몇 년 동안 반 헤르덴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허리케인 센터의 부소장으로 근무했다. 이 센터에서는 카트리나의 전조 증상이 있었을 때 그 지역의 제방 구조가 굉장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카트리나가 닥친 후 반 헤르덴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해임됐다. 그의 짐작으로는 자신이 미 육군공병대를 거침없이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불신 풍조를 이용하는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민주당 정부의 명백한 무능력에 대해 끊임없이 과장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긴 연방정부가 당최 한 일이 없긴 하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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