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종업원이 뜨거운 우동 두 그릇을 내온다. 수저통을 뒤져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는 딸애의 얼굴은 조금 지친 것 같기도, 마른 것 같기도, 늙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내 문자 못 봤어?
딸애가 묻는다.
그래.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잊어버리는구나.
나는 다만 그렇게 말한다. 그건 거짓말이다. 오히려 주말 내내 딸애의 문제를 생각하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이렇게 아무런 대안도, 방법도 없이 딸애와 마주 앉아 있다.
주말엔 어딜 간 거야?
나는 딸애가 알 만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고 같이 밥을 먹었다고 둘러댄다. 뭔가 더 물을 것 같던 딸애는 그저 응,, 하고 만다. 그런 뒤엔 겨우 성의를 보이듯이 한마디를 보탠다.
응. 오랜만에 바람도 좀 쐬고 하지 그랬어. 요즘 뭐 축제 같은 거 많이 하잖아.
글쎄다. 그럴 정신이 있어야지.
젓가락으로 굵은 면발 하나를 건져 먹는다. 젊은 시절엔 이런 면 음식을 즐겨 먹었다. 세 끼 중 한 끼를 꼭 면으로 해결할 정도였다. 면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먹고 나서가 문제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부룩한 배를 어루만지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짓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식사를 끝낸 직장인들이 계산대 쪽으로 몰려간다.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커진다. 어디나 온통 젊은 사람들뿐이다. 주름과 기미로 뒤덮인 얼굴. 숱 없는 머리칼과 구부정한 자세.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나 나를 향해 너무나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보일 것만 같다. 살피듯 조심스럽게 여기저기로 눈을 굴린다. 딸애의 우동 그릇은 빠르게 비어 가고 있다. 나는 계속 고민에 빠져 있다. 이 말을 정말 해야 할까. 해도 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해서는 안 되는 걸까.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다.
이번 거절로 돌아올 보복.
너도 알다시피.
한참 만에 나는 입을 연다. 알다시피. 그건 명백한 거절의 의사 표시다. 그걸 아는 딸애의 눈동자 위로 잠시 실망의 빛이 어린다.
알아. 엄마 여유 없는 거.
딸애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게 주의를 기울이고 무슨 말인가를 더 기다리는 눈치다. 나로선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 나라의 집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것은 멈출 줄 모르고 무섭게 자라나기만 한다. 그것을 손에 잡기 위해 달리고 뛰어오르고 점점 더 그 강도를 높여야 하는 게임에서 나는 제외된 지 오래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남은 건 그 집 하나가 전부잖니.
변두리 좁은 골목에 썩은 이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 주인을 닮아 관절이 닳고 뼈가 삭고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지는 이 층짜리 주택. 하루가 다르게 의기양양해지는 세상의 모든 집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집. 그게 남편이 내게 남긴 유일한 것이다. 실체가 분명한 것. 내가 통제력과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단 하나뿐인 것.
알아, 아는데. 나도 어떻게 안 되니까 그러지. 이럴 때 엄마한테 말하지 누구한테 말해.
딸애는 젓가락으로 그릇 안을 휘휘 저으며 중얼거린다. 체념과 기대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말투. 그러다 기어이 한 마디를 더 한다. 목돈을 빌려주면 매달 이자를 주겠다는 제안이다. 욕실 천장은 누수로 얼룩덜룩하고 장판은 때가 타고 여기저기 찢어진 데다 낡은 나무 창틀에서 바람과 먼지와 소음이 쉬지 않고 새어 드는 2층의 두 가구를 말하는 거겠지. 월세로 있는 그 사람들을 내보내고 전세를 놓으면 얼마간 목돈을 쥘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 거겠지.
그러나 지금 사는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 전세를 놓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에도 2층 새댁이 내려와 싱크대 천장에 물이 샌다고 하소연을 했다. 나이 드신 분 말고 좀 전문적인 업체에 맡겨야 제대로 수리가 될 거라고 말하던 새댁의 얼굴엔 짜증과 미안함, 곤혹스러움과 망설임 따위가 뒤섞여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참아 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장은 내게도 방법이 없다. 얼마나 들지 모르는 수리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는 탓이다. 번번이 나를 찾아와 사정하는 새댁도 마찬가지겠지.
탁자 아래서 딸애의 두 발이 까닥거린다. 운동화의 뒤축이 비스듬하게 닳아 있다. 올이 풀어진 청바지 밑단도 지저분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인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얘는 정말 모르는 걸까. 곤궁한 처지, 게으른 성격, 무신경하고 둔한 품성 같은, 남들이 알 필요 없는 너무나 사적인 것들을 왜 이토록 쉽게 드러내 보이는 걸까. 왜 남들이 자신을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 고상함과 단정함. 말끔함과 청결함. 누구나 최고로 치는 그런 가치들을 왜 깡그리 무시하기만 하는 걸까. 나는 간신히 하고 싶은 말을 참는다.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딸애가 나를 채근한다.
한참 만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가를 닦은 다음 딸애와 눈을 맞춘다. 그래. 가족이란 이런 거지. 나는 이 애에게 유일한 가족이구나. 가족일 수 있구나. 어쩌면. 이 집 때문에. 집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한다.
그래. 방법을 한번 고민해 보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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