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우주의 저편
야근을 멈출 수 없었다
위성도시로 가는 심야버스에 올랐다
졸다가 땀을 훔치며 내렸다
어린 시절 폐쇄된 간이역
백목련이 터진다
칼날이 잠든 곳
새끼 밴 생구生口따위가 사람보다 더 대접받는다고, 면도날 하나를 여물에 넣고 두근두근 내가 더 야위어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내 혀 깨물고 죽어도 울지 말거라, 속병으로 약봉지를 끼고 사는 노모는 걸핏하면 일을 때려치우는 자식이 걸려 잠을 거른다 화를 삭이지 못하고 또다시 사표를 던진 날 어머니 생각에 사골을 사러 가서 보았다 간혹 소의 몸에 서려 칼끝도 받아낸다는 그것, 장기인지 쇠붙이인지 모를 덩어리가 칼잽이의 손에 검붉은 김을 내뿜고 있었다
선무당같이 시끄럽게 떠돌던 돌팔이가 슬쩍 소 주둥이에 밀어넣은 건 자석이었다 이튿날 거짓말처럼 벌떡 소는 일어났고 방바닥을 구르던 나의 복통도 잠들었는데
잠들지 못하는 장기
숨 가쁜 자력은 다 늙어 쇠하도록
끌어안은 날
잠재우고 있다
너는 봄이다
네가 와서 꽃은 피고
네가 와서 꽃들이 피는지 몰랐다
너는 꽃이다
네가 당겨버린 순간 핏줄에 박히는 탄피들,
개나리 터진다 라일락 뿌려진다
몸속 거리마다 총알꽃들
관통한 뒤늦게 벌어지는 통증,
아프기 전부터 이미 너는 피어났다
불현 듯 꽃은 지겠다 했다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찔레 향에 찔린 바람이 첨예하다
봄은 아주 가겠다 했다
죽도록, 이라는 다짐은 끝끝내
미수에 그치겠다는 자백
거친 가시를 뽑아내듯 돌이키면
네가 아름다워서 더없이 내가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때늦은 동백 울려퍼진 자리
때 이른 오동꽃 깨진다, 처형처럼
모가지째 내버려진 그늘
젖어드는 조종弔鐘 소리
네가 와서 봄은 오고
네가 와서 봄이 온 줄 모르고
네가 가서 이 봄이 왔다
이 봄에 와서야 꽃들이 지는 것 본다,
저리 저리로 물끄러미
너는 봄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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