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파선
지난 3월, 나는 신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광고를 보았다.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신문 전면에 소설의 한 부분이 실려 있었다. 언뜻 뻔한 광고 같았지만, 첫 문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읽어나가던 나는 잠시 후 그것이 내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흠칫 놀라 안경을 쓰고, 그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것은 십여년 전에 익명으로 펴낸 나의 첫 소설이었다. ‘난파선’이라는 제목을 단 검은 표지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당시 나는 출판사 공모에 내기 위해 그 책을 만들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서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 줄의 심사평도, 심지어 악평조차 실리지 않았다.
작가로 데뷔한 후에도 나는 그 책이 나의 비공식적인 첫 작품이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없다. 원고를 다시 고쳐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그 책의 존재를 아예 잊고 지냈다. 말하자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책이었던 것이다.
신문에서 눈을 떼고 일어나, 서재의 책장 구석구석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그 책은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 책을 보여준 사람이라고는 남편이 유일했다. 나는 그에게 그 소설을 기억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내 곁에 없었다.
남편은 삼 개월 전부터 교환교수로 영국에 가 있었다. 영국과의 시차는 여덟 시간. 결혼생활이 완전히 끝장나기 전에, 우리는 그 시차를 가져보기로 했다. 그즈음 우리는 집에서 서로를 마주쳐도 가구나 짐짝 보듯 무시하고 있었다. 한 명이 거실에 있으면 다른 한 명은 방으로 들어갔고. 한 명이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다른 한 명은 컵라면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별거는 최선의 대안이었다.
남편이 영국에 간다고 했을 때, 딸아이는 대번 그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일곱 살밖에 안 된 아이라 남편이 맡을 여건이 되지 않았다. 공항에서 아이는 거의 탈진할 정도로 울어댔다. 남편은 그애를 업고 달래며 출국장 주변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울다 잠든 아이를 넘겨준 후, 그는 내게서 돌아섰다. 더부룩하게 긴 그의 뒷머리가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십 년간의 결혼생활을 수포로 만든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남편은 몇 벌의 옷만 챙겨갔을 뿐 대개의 물건은 집안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집은 어딘가 휑해졌다.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 옛 소설의 문장들 때문에,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디선가 창문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작은방에 가서 곤히 잠든 딸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밤새 내리던 비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멎었다.
다음날 아침, 딸이 부엌으로 신문을 가지고 왔다. 나는 아이의 그릇에 시리얼과 우유를 부어주고, 신문을 펴 보았다. 어제와 같은 면에, 소설이 실려 있었다. 전날의 내용에서 이어지는 것이 마치 연재소설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진저리를 치듯 저만치 신문을 던져놓고, 신문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낭랑한 목소리의 여자 상담원이 응답했다. 지면에 원작자 허락도 없이 소설을 실어도 되는 거냐고 따지듯 묻자, 상담원은 내게 원작자 본인이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기 전에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상담원은 사실을 확인해본 후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연락이 온 것은 그날 오후였다. 나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영문 원서를 보고 있었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의 전기 번역 때문이었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재주 없는 번역 일을 무리해서 맡은 것은 돈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초조함 때문이었다. 결혼생활이 언제 끝장날지 모르는 판국에, 내게는 이렇다 할 수입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 남편이 주는 아이 양육비를 벌레처럼 갉아먹으며 살게 될지도 몰랐다.
프로 소설가로 세 권의 책을 펴냈고, 영국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땄지만, 그것으로 당장 구할 수 있는 정규직은 하나도 없었다. 그 상태가 지금까지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일찌감치 대학에 자리를 잡은 남편 덕분이었다. 그가 유능해질수록 나는 무능해지고 있었지만, 좋을 대로 그 평균치를 나의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엠아이티와 캘테크를 거쳐 나사에 이르는 화려한 과학자의 일대기를 좇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두꺼운 사전을 들여다보며 한쪽 어깨로 전화를 받았다. 맑은 목소리의 여자가 또박또박, 내게 물었다.
“당신이 그 소설을 쓴 사람인가요?”
“네?”
“『난파선』 말이에요. 신문사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당신이 그 소설을 쓴 사람이라고요.”
“아…… 네. 맞아요.”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손으로 받아들었다.
“원고를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마음대로 제 소설을 신문에 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진짜 작가라는 걸 내가 어떻게 믿죠?”
여자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말해봐요. 증명해줄 출판사 쪽 사람이라도 있나요?”
나는 피식 웃었다.
“이봐요, 그건 내가 학교 앞 인쇄소에서 이십 부 만들어 돌린 인쇄물이에요. 출판사 따위 있을 리가 없죠. 아, 인쇄소 이름을 따서 ‘시대출판’이라고 새겨넣은 기억은 나는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이해하신 것으로 알고 전화 끊을게요.”
“남편은 이 책을 자신이 썼다고 했어요.”
“…… 뭐라고요?”
“그는 육 개월 전에 실종되었어요.”
여자는 다급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저를 한 번만 만나주시겠어요? 직접 뵙고,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여자는 내게 시내에 있는 카페의 위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거절할 틈도 없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 그쪽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여자의 연락처가 없었다. 약속 장소에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썼다 지우기만 수십 번 반복하다가 나는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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