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래사를 그리며
귀래사라는 절이 어디 있더라? 하여간 이 지상 어딘가에 있긴 있겠지. 이제 그만 그곳에 닿고 싶다. 가서 나무를 해도 좋겠고 머리가 허옇게 세웠다고 싸리비로 절 마당이나 쓸라고 하면 그 또한 좋겠지. 늙으신 보살이 차려준 공양을 정성껏 비운 뒤 뒷산 남새밭에 가서 하루 종일 잡풀들과 일하리라. 가끔 일어서서 허리를 곧추세워 독수리눈으로 하늘을 보리라. 청청히 텅 빈 하늘, 그리고 목화 송이처럼 흐르는 구름들. 저녁을 마치면 골방에 틀어박혀 잡서를 읽으리라. 그리고 세상과 등을 지고 나와 대면하리라.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겠지만 그 또한 잠깐의 인연. 훨훨 털고 텅 빈 벽에 바짝 붙어 단잠을 자다 소변을 눈 뒤 절 뒤꼍 해우소 근처에서 오래 서성이리라. 텅 텅 울리는 새벽 종소리가 아픈 무릎에 스밀 때까지.
나무
강변에 나무 두그루가 서 있다
한그루는 스러질 듯 옆 나무를 부둥켜안았고
다른 한그루는 허공을 향해 굳센 가지를 뻗었다
그 위에 까치집 두채가 소슬히 얹혔다
강변에 나무 두그루가 서 있다
오리알 두 개
갈숲이 자라는 곳에 오리알 두 개
오리는 어디 갔나
갈숲이 대신 품어주는 곳에 따스한 오리알 두 개
봄
보도블룩과 보도블록 사이에서
민들레 한송이가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너 잘못 나왔구나
여기는 아직 봄이 아니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생각함
임종이 임박했다는 새벽 전화를 받고 고려병원에 달려갔을 때의 일이다. 황달이 퍼져 샛노란 눈빛의 김남주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개 같은 세상에 태어나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는다. 부탁한다. 남은 너희들은 절대로 이렇게 살지 마라!” 그의 숨이 끊어지고 난 뒤 병실 복도에 나와 나는 나에게 다짐했다. 빗방울 하나에도 절대 살해되어서는 안되겠다고!*
* 김남주가 옮긴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의 마지막 행을 차용함.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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