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
─ 로런스 블록
모자야말로 중요했다.
세심하게 옷을 골라 입는다면, 장소에 맞는 옷차림보다 조금 더 세련되게 차려입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2번가의 식당에 들어설 때 모자와 코트가 당신이 숙녀임을 선포한다. 아마도 당신은 이곳의 커피를 롱샴프스*의 커피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델모니코**의 수프만큼 훌륭한 이곳의 콩 수프를 좋아하거나.
* 1919년 맨해튼에서 처음 문을 연 레스토랑 체인.
** 1826년에 문을 연 뉴욕 최초의 고급 레스토랑.
비참한 경제적 상황 때문에 혼 & 하다트 식당의 자동판매기 앞에 서게 된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1달러짜리 지폐를 꺼내기 위해 악어 핸드백에 손을 넣는 당신을 지켜보는 사람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5센트짜리 동전이 나왔다. 다섯 개씩 네 묶음. 세어볼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산하는 점원이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달러를 받고, 동전을 내어주고. 여기는 자동판매기 식당Automat이었고, 저 가엾은 아가씨는 거의 자동인형Automan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전을 받으면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음식을 선택하고, 동전을 슬롯에 넣고, 손잡이를 돌리고, 조그만 창문을 열고, 거기서 음식을 받았다. 동전 한 개를 넣으면 커피 한 잔이 나왔다. 세 개를 더 넣으면 전설적인 콩 수프 한 그릇이 나오고, 또 한 개를 넣으면 깨를 뿌린 롤빵과 버터 한 덩이가 나왔다.
쟁반을 들고 조심조심 움직여 카운터로 가서 칸이 구분된 철제 은식기 함 앞에 서야 했다.
그녀는 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느 자리에 앉고 싶은지 곧바로 알았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 뜸을 들인 뒤, 쟁반을 들고 그곳으로 갔다.
그녀는 천천히 먹었다. 콩 수프 한 스푼을 음미하면서 5센트 동전 하나 아끼겠다고 그릇 대신 컵을 선택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5센트는 큰 금액이 아니었지만 하루에 5센트씩 두 번을 아끼면 한 달에 3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사실 그보다 더 아낄 수 있었다. 일 년이면 36달러 50센트이고 그건 큰돈이었다.
아, 하지만 너무 쥐어짜며 살 수는 없었다. 절약을 할 수도 있었고, 또 그래야 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에 관해서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앨프리드가 썼던 표현이 뭐였더라?
키쉬크 겔트Kishke gelt. 창자의 돈, 사람의 위를 속여 모은 돈. 그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고, 그의 아랫입술이 말리는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5센트를 더 쓰는 편이 나았다.
앨프리드의 경멸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그녀가 무얼 먹는지, 그게 얼마인지 그는 알지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다만, 한편으로는 희망이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죽음과 함께 끝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고매한 이성, 날카로운 지성, 풍자적인 유머는, 그 나머지가 전부 땅속으로 들어가고 난 이후에도 어떤 존재의 차원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녀는 사실 그런 개념을 믿지 않았지만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즐거웠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걸곤 했다. 때로는 소리를 냈지만 대부분은 몰래 마음속으로 했다. 살면서 그와 나누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고, 이제 그의 죽음이 그녀가 그나마 갖고 있던 미약한 거리낌마저 씻어냈다. 이제 그녀는 그에게 무슨 얘기든 할 수 있었고, 기분이 내키면 그의 대답을 대신 생각해내면서, 실제로 그 말을 들었다고 상상했다.
때로 대답은 너무나 신속하게 떠올랐고 너무나 꾸밈없는 솔직함으로 다가와서, 그녀는 그 대답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곤 했다. 그녀가 대답을 지어내고 있는 것일까? 혹은 그가 생을 마감했음에도 그녀의 삶에 굳건히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그녀의 시선을 살짝 비켜난 곳에 머무는, 실체 없는 수호천사인지도 몰랐다. 그녀를 지켜보고, 그녀를 보살펴주는 수호천사.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무섭게 그녀는 대답을 듣는다. 기껏해야 지켜보는 정도야, 리프헨*. 보살피는 것에 관해서라면, 당신은 혼자야.
* 연인이나 애인을 부르는 독일어 호칭.
그녀는 빵을 반으로 자른 다음 작은 나이프로 그 위에 버터를 발랐다. 버터 바른 빵을 접시 위에 놓고, 스푼을 들고 수프를 한 스푼 떠먹었다. 그리고 또 한 스푼을 먹은 다음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녀는 식당 안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먹었다. 절반이 조금 넘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저기는 여자 둘, 저기는 남자 둘, 결혼한 것처럼 보이는 남녀, 그리고 활기가 있지만 서로 어색한, 아마도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데이트중인 것 같은 또 한 쌍의 남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관심은 이내 그들을 지나쳐버렸다.
나머지 테이블에는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많았고 대개는 신문을 들고 있었다. 도시의 가을이 깊어지면서 허드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밖에 있는 것보단 여기 있는 편이 나았다. 커피나 한잔 하면서 〈뉴스〉나 〈미러〉 따위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
매니저는 슈트를 입고 있었다.
남자 손님들 대부분이 그랬지만 그의 양복은 더 고급인 것 같았고 비교적 최근에 다림질을 한 것 같았다. 셔츠는 흰색이었고, 넥타이는 멀리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차분한 빛깔이었다.
그녀는 곁눈질로 그를 관찰했다.
앨프리드가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시선은 항상 정면을 향하고, 주위의 관심 있는 것들을 살펴보려 두리번거리지 말아야 했다. 대신 뇌를 사용해야 했다. 시야 가장자리에 있는 무언가에 주의를 집중하라고 뇌에게 말해야 했다.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연습이라면 이미 충분히 했다. 그녀는 펜실베이니아역 수하물 창구 맞은편에서 했던 수업을 떠올렸다. 그녀는 슈트케이스를 맡기는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연습했다. 앨프리드가 필라델피아행 열차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 승객들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차례로 그들의 모습을 설명한 뒤 그의 칭찬을 듣고 뿌듯함에 얼굴을 빛냈다.
매니저는, 이제 보니, 입술이 작고 얇았다. 윙팁 구두는 갈색이었고, 광이 나게 잘 닦았다. 그녀가 그를 보지 않으면서 그를 관찰하는 동안 그는 자기 손님들을 정반대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찬찬히, 공격적으로, 이 테이블에서 저 테이블로 옮겨갔다. 식사하는 사람들 중 몇몇이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딱히 이유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뒤척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는 순간, 그녀는 숨을 들이쉬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스스로도 표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커피잔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주방문 옆에, 뒷짐을 지고, 근엄한 표정으로. 그녀가 배운 대로 그를 관찰하는 동안, 그는 그곳에 서서 노골적으로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저기 그가 있었다. 약간의 노력만으로 그녀는 조금도 흘리지 않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러고는 잔을 쟁반 위에 놓고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보았을 거라고 짐작했을까?
그녀는 반쯤 기억하고 있는 시를 떠올렸다. 영어 수업 시간에 읽었던 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볼 수 있는 힘을 지니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시였다. 그게 무슨 시였고 지은이가 누구였더라?
레스토랑 매니저가 본 것은, 그녀가 생각하기에, 왜소하고 특별할 것 없는, 세월이 느껴지는 여자, 역시 세월이 느껴지는 옷을 입고 있는 여자였을 것이다. 본래의 형태를 잃은 고급 모자에, 소매가 닳고 본래의 골제 단추 하나가 그리 어울리지 않는 단추로 대체된 아널드 컨스터블 백화점 코트를 입은 여자.
신발도 괜찮았다, 수수하고 검은 펌프스. 악어가죽 백. 구두와 백 모두 좋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고 둘 다 피프스 애비뉴의 고급 상점에서 샀다.
그리고 둘 다 세월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이야말로 그랬다. 그녀가 지닌 모든 물건들처럼.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남루한 고상함 그 자체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 낙인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지만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비록 낡았을지언정 그녀의 옷차림은 주인의 고상함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