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나의 미래,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김경집
안녕하세요. 여러분, 행복하세요? 왜 행복해요? 시험이 끝나서? 제일 싫은 게 시험이지요.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요? 여러분 인생에서 황금기가 언제였던 것 같아요? 지금? 불행히도 대한민국 국민들 인생의 황금기는 4세에서 7세라고 합니다. 세 살까지는 인지능력이 없으니까 빼고, 네 살쯤 되면 보통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네 살에서 일곱 살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일곱 살 이후,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빨간펜’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우리 인생은 힘든 여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맞죠? 더 답답한 건, 선배 언니나 오빠들 보면, 힘들게 대학 가서 힘들게 졸업했는데 원하는 자리를 얻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걸 이미 여러분도 느끼고 있잖아요. 이런 세상에서는 인생이 힘들 수밖에 없어요. 이건 여러분 탓이 아니에요. 어른들의 잘못이죠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오늘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자, 조금 도발적인 주제인데요. “첫째, 절대로 어른 말 믿지 마라!”입니다. 부모님 말씀도, 선생님 말씀도, 지금 여기서 제가 하는 말도 믿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지금의 어른들은 20세기에 태어나서, 20세기에 배우고, 20세기에 살아온 분들이에요. 여러분들은 21세기에 태어나서, 21세기에 배우고, 21세기의 마지막까지 살아가야 하죠. 20세기와 21세기가 비슷하다면 상관이 없어요.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요. 완전히 다릅니다. 모든 교육의 문제는 과거를 살아온 사람이 과거의 방식으로 미래를 살아갈 사람을 가르치는 데서 발생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죠. 그런데 사회가 급격하게 바뀔 때 그 틀도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미래를 살아갈 이들의 삶이 불행해져요. 지금이 딱 그런 시기예요. 왜 이런 강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요, 그런 중요한 전환점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나, 어른 말 믿지 마라!
김경집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있어요? 여러분, 미적분 배우죠? 재미있어요?
학생
아니요.
김경집
수학이 재미있다면 변태(?)죠. 따져봅시다. 여러분들이 미적분이나 지수 로그를 배울 때, 수학 선생님한테 누가 언제 미적분을 수학에 들여왔고, 미적분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들어본 사람 있어요? 미적분이 수학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과학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더 나아가서 우리 일상생활에 미적분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어본 학생?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렇다면 수학 왜 해요?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3 끝날 때까지 가장 오래 하는 게 국어하고 수학입니다. 국어는 우리말이니까 스트레스가 덜한데, 수학은 거의 외계어지요. 그런데 정작 왜 하는지는 몰라요. 죽어라고 계산만 하는 거예요. 수학을 해서 뭘 얻어요? 점수를 얻죠. 물론 수학을 통해서 논리적 사고나 체계적 사유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수학이 주는 건 딱 한 가지예요. “얘들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있단다.” 이거 배우는 거예요.
미적분이 언제 생겼을까요? 17세기 중후반, 정확하게는 1660년쯤에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이 미적분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물리학에 도입합니다. 왜 미적분을 들여왔을까요? 뉴턴은 속도, 가속도 등 운동의 법칙을 연구한 사람이죠. 속도와 가속도를 구하는 데 어느 정도 계산은 되지만, 이게 언제 어떻게 연결 혹은 분리가 되고 어떤 식으로 감속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산법이 없었던 거예요. 이런 것들을 수학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기에 그 해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뒤 독일의 철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라이프니츠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수학적 방식의 미적분을 도입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18세기 초반 영국과 독일에서 거의 동시에 미적분을 도입한 것을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수학적인 관점에서 그게 왜 필요했느냐를 따져봅시다. 이는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가 다르다는 걸 의미합니다. 17세기까지 인류가 축적해온 수학적 사고와 체계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수학을 배울 때 17~18세기 유럽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고 문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중요한 분기점은 무엇인지를 동시에 배웠어야 해요.
그렇다면 지금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여러분 ‘IT’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을 뜻하는 말인데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장래성 있는 직업 중에 하나가 바로 IT 직종이잖아요. 그런데 이 IT도 예전 같지 않아요. 새로운 시장의 강자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DTData Technology예요. DT라는 말 들어본 사람 있어요? 없어요. 이게 지금 우리의 현주소예요. DT에서 D는 데이터를 뜻합니다. 페이스북 많이 하지요? 그게 IT일까요, DT일까요? 시작은 IT였지만 점점 DT의 형태로 가고 있습니다. 최근 빅데이터가 많이 언급되는 것도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죠.
IT산업은 투자 대비 이익이 많이 생길 수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그만큼 기술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니 버블 논란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결국 2000년대 초반에 IT버블이 꺼지고 맙니다. 그게 IT산업의 몰락으로 나타난 것이죠. 이제 투자도 없고, 성과도 없는데 IT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로운 직업을 얻어야죠. 살아가야 하니까요.
우리 사회는 개인이 삶을 재설계하고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교육시스템이 전무해요. 여러분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성세대는 그런 것을 안 겪고 살았어요. 제가 왜 어른들 말 믿지 말라고 하느냐면 어른들의 삶은 ‘원 텀 라이프one-term life’였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는 대학을 졸업해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은퇴할 때까지 쭉 그 직업을 갖고 살았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느냐 하면, 최소한 여섯 번 삶이 바뀌어요. 쉽게 말해 여섯 번 직업이 바뀐다는 얘기죠. 이건 1990년대에 프랑스의 미래학회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런 변화에 대해 준비도 하지 않고, 변화를 보지도 못하고 있어요. 한 텀짜리 삶을 산 어른들이 여러 단계의 삶을 살아갈 여러분들의 삶을 설계하고 간섭할 수 있느냐? 저는 아니라고 봐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에요.
불행히도 우리 교육은 첫 번째 직업을 얻는 것에 올인하고 있어요. 그 다음은 ‘나 몰라’예요. 어떻게 이게 교육일 수 있죠?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겁니다. 그런데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는 교육이 의미가 있을까요? IT산업의 거품이 꺼졌을 때, IT산업 하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잘 보세요. 갈 데가 없어요. 돈이 있으면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카페 차리면 되고, 돈 없으면 동네 치킨집하는 거고요. 다행히 대한민국 사람들이 워낙 닭을 좋아해서 근근이 버틸 수는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집 앞에 있는 치킨집 사장님이 IT사업하다가 접고 왔을 확률이 높은 거예요. 변화의 시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미래도 이런 식으로 펼쳐질 확률이 높습니다. 정신을 잘 차리셔야 해요.
다시 미적분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17세기 후반에 미적분이 물리학과 수학에 도입된 이유를 살펴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어요. 그러고 나면 우리가 살아온 20세기를 어떻게 읽을 것이며, 앞으로 살아갈 21세기를 어떻게 대응할 건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게 바로 교육의 역할입니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났죠. 19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보다 빨리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면서 이익을 얻는 사회 구조를 요구합니다. 철저하게 속도와 효율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였죠. 그런 그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럼 그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노동력이 필요하겠지요. 따라서 교육도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 전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게 돼요. 1차대전과 2차대전이죠. 전쟁은 인격이나 도덕, 창의성 같은 거 따지지 않아요. 철저하게 속도와 효율이죠. 적을 쓰러트리고 나는 살아남아야 해요. 1945년에 전쟁이 끝나는데, 전쟁이 끝났으면 그때까지 외면했던 인격, 창의성, 도덕성, 상상력 같은 가치들이 다시 회복돼야 하지만,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산업화의 흐름은 바뀌지가 않습니다. 물론 이런 흐름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린 부분도 있지요.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반쯤 산업화에 뛰어들어요. 돈도 없고, 자원도 없고, 오로지 사람만 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불과 몇십 년 만에 저 밑바닥에서 산업화를 통해 OECD에 가입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어요. 이런 것만 봐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 위대합니다. 속도와 효율 경쟁에서 대한민국은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어요.
여러분, 학교 다니면서 세계사 배워요? 생각보다 세계사 선택 많이 안 하죠? 세계사 배워도 연대기만 외우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뭐라고 떠듭니까. “세계화”해야 된다고 그러죠.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영어 잘하는 거죠. 그리고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의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부모님과 선생님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속도와 효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바깥세상에 대해 관심을 끊고 태연하게 살아왔던 거예요. 그러다 당한 게 바로 IMF사태예요. 이건 단순히 외환 관리를 못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IMF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죠.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인데, 그 당시 어른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구나, 이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는 대한민국밖에 없구나’ 하면서 대단히 감상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통일을 준비하지?’ 하면서 공부를 하거나 투자를 하지도 않았어요. 1991년에는 소비에트 연방, 요즘은 낯선 이름인데 소련이 해체됩니다. 러시아가 독립하면서 이 공산주의 국가는 완전히 해체되고 맙니다. 이를 보고 우리는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결론을 내리죠. 그건 지극히 단편적인 시선이에요. 냉전체제는 극단적인 속도와 효율의 경쟁입니다. 특히 군사적인 면에서 그렇지요. 소련의 해체는 더 이상 그것이 유효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 거예요. 대한민국은 그걸 몰랐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다가 1997년에 IMF사태를 겪은 것입니다. 문제는 21세기인 지금도 1997년의 체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1997년 이전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어요.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거의가 IMF 때 생긴 거예요.
둘, 연대와 집단지성을 배워라!
김경집
지금 여러분을 보면 ‘그때 얘기를 지금 왜 하지?’ 하는 표정인데요. 여러분의 삶이 그때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 연속선에 있는 것이라 이야기를 해드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이게 지금 우리의 관심사잖아요. 다른 질문을 해 보죠. 여러분 학교 왜 다녀요?
학생
자퇴를 못해서요.
김경집
자퇴를 못해서? 정말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네요. 고마워요. 또 있어요?
학생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학생
친구를 만나려고요.
김경집
하고 싶은 거 하려고, 친구 만나려고, 또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 학교에서 뭘 배워요? 지식을 배우죠? 선생님들도 계셔서 이런 이야기하기가 좀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육은 속도와 효율의 방식을 따르고 있어요. 어쩔 수가 없지요.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게 속도와 효율을 제공하고 발휘하는 노동력이니까요. 그런데 21세기에는 이게 안 통해요. 21세기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바로 창조, 혁신, 융합이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이런 거 배우나요?
전 학교교육의 첫 번째 목적을 이렇게 생각해요. 바로 ‘연대’를 배워야 합니다. 예전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지식을 습득해야 했어요. 그 지식을 제공하는 곳은 학교밖에 없었고요. 지금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굳이 학교를 안 가도 돼요. 학원에서 더 잘 가르쳐주죠. 홈스쿨링을 할 수도 있고요. ‘연대’는 친구와 선생님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두 번째 이유는 ‘집단지성’을 배우기 위해서예요. 얼마 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있었죠? 우리는 다 이세돌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5대 0 아니면 최소한 4대 1. 이세돌 본인도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근거 없는 자만이 아니에요. 알파고가 이 시합이 있기 6개월 전에 중국의 프로 시합을 해서 이긴 적이 있는데, 그때 알파고 실력이 초단 정도밖에 안 됐어요. 이세돌은 세계 최강의 9단이에요. 이 차이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그런데 결과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4대 1로 이겼지요? 사실 1승한 것도 대단한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6개월 사이에 알파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겁니다. 엄청난 진화를 이루었잖아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이벤트가 벌어진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느냐, 어쨌든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이 시합을 지켜봤잖아요. 인공지능이 지금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본 거잖아요. 이미 세계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20세기 방식으로 생각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삶을 설계해요. 이러면 백전백패입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AI의 핵심이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물론, 집단지성의 성과를 어느 누군가가 독점을 하게 될 가능성은 큽니다. 이런 현상은 여러분에 진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거예요.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