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인간의 수치,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내 서재 한쪽은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관한 책들로 채워져 있다. 수십 권이 넘는 그 책들 중에서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I sommersi e I salvati』를 택하겠다.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절망’이라는 감정은 내겐 친숙한 것이지만, 그 감정의 알맹이는 확실히 달라졌다. 지금 생각하면 예전에는 높고 두꺼운 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젊었을 때의 나는 사람들이 ‘사실’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사실’이란 우선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와 지금도 계속되는 재일조선인 차별을 가리키며, 또한 당시 한국 군사독재 체제 현실을 가리키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체제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억압 등 세계에 편재하는 비인도적·반인권적 현실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이 언제까지고 방치될 리 없다.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내 절망감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은 내가 갇혀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릴 수가 없다, 갇힌 채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런 초조감이었다. 하지만 젊었던 내게는 ‘시간’이라는 애매한 ‘출구’가 있었다. 살아 있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어 벽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기대가 아직 남아 있었다. 행운이라고 해야겠지만, 시간이 흘러 나는 벽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절망과의 연줄을 끊을 수 없다.
일본에서는 2012년 말 우파 정권이 높은 지지를 얻으며 등장했다. 이 정권은 2011년에 일어난 파국적인 원전 사고가 아직 수습될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세계 각지에 원전을 수출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럴 때 내거는 구호는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일본 원전 기술”이다. 이것이 뻔뻔스런 거짓말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를까?
연예인에서 전국적인 정당의 리더로 출세한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성범죄 방지를 위해 그곳의 향락산업을 활용하라고 미군 사령관에게 권했다. 그것이 문제가 되자 일본군 위안부제도로 논점을 옮겨갔고, 거기에 대해서도 비판이 빗발치자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며 언론에 책임을 전가했다. 그 분별없는 짓을 외국과 국제기관이 비판하자 다시 논점을 바꿔 세계에서 일본만이 오해받고 적대시당한다며, 마치 자신이 일본의 명예를 위해 싸우고 있는 듯 주장했다. 이게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강변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를까?
일본에서는 극우단체가 매주 “조선인을 죽여라!”라거나 “한국인은 나가라!”라는 야비한 소리를 계속 외쳐대며 번화가에서 데모를 하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금지조약이 명백히 금지하고 있는 증오범죄이고, 의당 일본 정부도 겉으로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데모는 조금도 수습될 기미가 없다. 그들의 주장은 “재일조선인은 부당한 특권을 탐내며 일본인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치한 거짓말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를까? 정말 ‘조선인’이 어떤 존재인지 따위는 그들에게는 아무래도 좋다. ‘조선인’이란 폭력적인 코미디에서 ‘악역’을 맡게 된 기호에 지나지 않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총리부터 극우단체에 이르기까지, 비논리적이고 반윤리적인 주장을 마치 극장 객석에서 코미디를 보듯 즐기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논리적 정합성과 윤리적 정당성 여부가 아니다.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다. 현실은 이미 코미디 영역을 벗어나 평화나 인간 존엄의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데는 관심이 없다. 이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눈앞의 사리사욕, 비굴한 보신, 지적 태만과 무기력, 왜곡된 자기애, 기타 갖가지 이유로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일본군 위안부 등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당한 피해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실을 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한국은 일단 제쳐놓고) 무참한 일본 사회의 현실이다. 이는 일본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차별, 불관용, 폭력이 세계 각지에서 개가를 올리고 있다.
지금도 나는 절망하고 있지만, 이 감각은 젊었을 때의 그것과는 다르다. 예전처럼 외부에 의해 갇히는 게 아니라 내부로부터 집요하게 피로감과 공허감에 침식당하는 감각이다. 이런 감각은 어느 정도는 프리모 레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나는 인정한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직후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è un uomo』를 썼고, 그로부터 약 40년간 성실한 증언자로 살아간 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출간한 다음 해인 1987년에 자살했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강제수용소 경험의 더욱 철저한 고찰이요, 인간존재에 대한 더욱 타협 없는 인식이며, 따라서 더 깊은 절망감이다. 거기에 비하면 내 절망 정도는 하찮은 것이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나는 1980년에 읽었다. 나는 일본에 있었으나 두 형들은 한국의 감옥에 갇혀 있었고, 광주에선 5·18이 한창 진행 중이었으며, 어머니는 말기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10년쯤 뒤 한국에서 군사정권 시대가 끝나고 형들은 석방됐다. 나는 대학 교단에 서게 됐고 조금씩 책도 내게 됐다. 벽 바깥에 나가 사회적으로 발언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몇 년 뒤 레비가 자살한 사실을 알았다. 1990년대 중반에 어느 유명 출판사의 편집자 곤다이보 미에를 알게 됐다. 그녀는 원래 『이것이 인간인가』의 출판을 시도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일본에 레비를 소개한 공로자였다. 그런 사람한테서 레비에 대해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프리모 레비를 찾아가는 여행プリ-モ·レ-ヴィへの旅』(한국어판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이라는 책을 썼다. 토리노와 아우슈비츠에도 직접 갔다. 그 책을 쓰던 중 아무래도 읽어야 할 책인데 아직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 있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였다. 곤다이보 씨가 그 몇 년 전부터 번역 출판을 기획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사전을 찾아가며 영어판The Drowned and the Saved을 읽었다. 마음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 사람은 자살할 수밖에 없었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살하지 말았어야 한다거나 살아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등의 생각이 들진 않았다.
이 책을 보고 나치 범죄의 심각성, 모골 송연함에 다시 한번 치를 떨었지만, 그 이상으로 이 책은 ‘나치의’라고 한정할 수 없는 넓이와 깊이로 인간존재 그 자체의 위기를 파헤쳤다. 레비는 여기서 자신의 르상티망(원한)을 토로하진 않는다. ‘신’이나 ‘운명’ 같은 초월적인 관념을 만들어내서 분노나 슬픔을 터뜨리거나 거기에서 위로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자기 자신도 용서 없이 까발린다. 그는 다만 깊은 절망의 양상들을 과학자와 같은 솜씨로 해부한다. 냉혹하기조차 한 분석과 기술이 어디까지나 지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레비가 인생 마지막에 이 책을 남긴 것은 타인에게 사실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증언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증언을 그 사람들을 향해 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그는 이 증언을 써서 남겼다. 개인의 생물학적 생명 이상의 가치(일단 ‘진실’이라고 해둘 수밖에 없다)를 위해. 그리하여 레비는 설사 아무리 절망적인 것일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의,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진정한 지적 즐거움’도 우리에게 준다.
완성된 내 책 표지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살아남은 ‘죄’, 인간이라는 사실의 ‘수치’, 그래도 반드시 ‘희망’은 있다…….”
곤다이보 씨가 생각해낸 문장이다. ‘희망은 있다’는 부분에 나는 저항하면서 굳이 ‘희망은 있는가?’라는 의문형으로 해달라고 했으나, 결국 타협하고 말았다. 그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내 책 『프리모 레비를 찾아가는 여행』은 1999년에 출간됐고, 곤다이보 씨의 집념이 열매를 맺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의 일본어판도 2000년에 마침내 간행됐다. 그 5, 6년 뒤 곤다이보 씨가 교통사고로 어이없이 급사했다. 그리고 다시 2, 3년이 지난 뒤 나는 일 때문에 그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편집부 직원은 나를 모르는 듯했으나 그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곤다이보 씨 이름을 얘기했는데도 그녀조차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은 외주 편집자였나요?” 따위의 질문이 돌아왔다. 30년이나 그 회사에 다니면서 프리모 레비를 일본 사회에 소개하는 문화적 공적을 남긴 인물을 사내의 후배들조차 모르는 것이다. 이 회사도 다른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눈앞의 판매실적 올리기에 보탬이 되는 책을 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처럼 레비라는 존재를 알기를 거부하고 그 경고를 외면하면서 구원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도 이따금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는 것은 안이한 ‘희망’에 눈이 멀고 싶지 않아서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일본에서는 품절로 절판됐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번역 출판하려는 기획이 있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이 책의 일본어판은 2014년에 재발행되었고, 한국어판은 같은 해에 출간되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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