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싸아― 매웠다. 펜으로 땅을 파겠다니! 며칠 전, 학교 가는 차 안에서 들은 시 한 대목에 울컥하고 말았다. 음악이 끝나고 라디오 진행자가 ‘나는 이것으로펜으로 땅을 파리라’는 구절을 한번 더 읽었다. 젖은 눈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학교에 도착해 알아보았더니 셰이머스 히니1939∼2013년의 시였다. 히니는 예이츠 이후 최고의 아일랜드 시인으로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모국의 ‘땅의 역사’를 서정적 미학과 윤리적 깊이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에서 시인은 감자 심고 토탄 캐는 농부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펜으로 땅을 파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감자와 토탄은 아일랜드 민중의 곤고한 삶과 역사를 대변하는 식량과 연료다.
시를 읽다보니 평생 농부였던 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들은 한마디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너는 농사는 못 짓겠구나.” 내가 지게며 낫이며 삽을 다루는 모양이 영 눈에 차지 않으셨던 것이다. 어린 나는 농기구를 ‘장악’하지 못했고 결국 삽을 물려받지 못했다.
시에서 히니는 “내게는 그 남자들의 뒤를 이을 삽이 없다”고 썼다. 그 남자들이란 농부를 말한다. 나도 그렇다. 물려받은 삽이 없다. 우리 대代에서 삽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농農의 가치’를 되살리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삽’ 말고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농업을 다시 보자. 긴말 필요 없다. 우리의 ‘감자식량’와 ‘토탄에너지’ 자급률부터 잊지 말자.
사족: 펜을 권총에 비유한 시의 첫 연이 자꾸 눈에 밟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