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봄날 ‘꽃 대궐’에 눈길을 주다가 한마디 툭 던집니다.
‘꽃은 피고 인자 우에 사꼬.’ 느낌표나 물음표가 뒤에 달렸다면 속내를 어림짐작이라도 할 텐데, 시는 시치미를 뗍니다. 탄식일까요, 아니면 탄성일까요. 어지러운 ‘꽃 멀미’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았으니 땅이 꺼질 듯한 한숨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계절로 치면 늦겨울로 접어든 할머니에게 봄꽃은 무엇일까요. 기력이 쇠한 노파에게 봄꽃은 저승에서 보내온 초청장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여생이 있을 테니 사는 날까지 살아내겠다는 다짐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모든 걸 다 감내하겠다는 순명의 재확인이었을까요. 탄식과 탄성 사이가 아득하기만 합니다.
삼대가 살아가는 과수원집의 봄날 한순간을 포착한 짧은 시지만 많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꽃은 과거보다 미래를 가리키겠지요. 봄꽃은 치열한 성장과정을 거쳐 가을의 열매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인제 우에 사꼬”의 주어는 할머니 자신이라기보다 손주일 것입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흉내 내다 나자빠지는 손주의 재롱이 제게는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손주는 할머니한테서 물려받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겁니다. 할머니는 남겨주고 싶지만 손주는 받아들이지 않을 테지요. 지혜의 오랜 전승 경로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이 키우기, 음식 만들기에서부터 하늘과 땅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미래’가 단지 옛것이라는 이유로 퇴출당하고 있습니다. 이쯤 해서 다시 읽으면 ‘인자 우에 사꼬’가 손주의 앞날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장탄식처럼 들립니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