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자를 앞세운 낱말들이 가물가물하다. 맨주먹, 맨밥, 맨손, 맨몸, 맨정신, 맨발. 맨몸으로 상경해 자수성가했다, 군부 독재 시절을 맨정신으로 버텨냈다, 맨밥을 먹으며 네 아이를 키워냈다–고도성장기를 관통해온 ‘맨몸의 서사’가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고향이 아니고 ‘고향 땅’이었다. 사시사철 맨손에 맨발이던 시절, 몸과 자연 사이를 가로막는 벽은 없었다. 두 발은 언제나 땅을 밟고 있었다. 어린 나는 늘 ‘접지接地 상태’였다.
고향을 떠나 가족을 일구며 살아온 이곳에는 땅이 없다. 한마디로 ‘지구 표면’이 달라진 것이다. 도시에서 사는 나는 ‘절연 상태’다. 시멘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신발이 접지를 차단한다. 집과 일터가 공중에 떠 있고, 지하철을 타고 땅속을 오간다. 걸어다닐 때도 맨땅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맨발로 걷기가 새로운 건강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 몸이 지구 표면에 있는 전자와 연결되면 체내 전기 환경이 평형을 이뤄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줄지어 발표되고 있다. 접지의 영어 표기는 ‘어싱Earthing’이다. 좁은 의미의 땅이 아니라 지구 자체와 연결한다는 의미일 테다.
시인의 눈은 새의 날개가 아니라 ‘발’에 주목한다. 발이 없다면 새는 날지 못한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바퀴가 고장 나면 이륙하지 못한다. 문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산업문명의 ‘두 발’은 무엇인가. 땅, 지구다. 천지자연이 없으면 산업은 불가능하다. 날개에 쏠린 눈을 돌려 두 발을 예의 주시할 때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나 문명을 막론하고 날개만 바라보다가는 ‘새로운 하늘’로 이륙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