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고 자란 마을은 면 소재지였지만 변변한 숙박 시설이 없었다. 마을 초입에 있던 우리 집은 대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겨울 늦은 밤,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곤 했다. “계십니까?” 아버지가 문을 열면 검은 실루엣이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잔불을 밝히고 생면부지의 나그네를 안방으로 들였다.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 밥상을 차렸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 나그네는 연신 고맙다며 밥그릇을 비웠다. 불청객은 우리 집 안방에서 우리 식구와 함께 잠이 들었다. 1960년대 초반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요즘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당연하다. 낯선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가르침을 뼈에 새겨놓은 아이들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도 ‘남의 집’에서 하룻밤 묵은 기억이 삼삼하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통행금지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남의 집에서 자는 경우가 흔했다. 친구네 집, 선배네 집, 선생님 댁…. 나는 못해 봤지만, 동네 형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남쪽으로 무전여행을 다녀왔다. 일종의 성년식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이래, 수천년 넘게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져 오던 환대의 문화가 사라지고 말았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낯선 손님’이 설 자리를 앗아갔다. ‘남의 집’은 이제 발을 들여놓으면 안되는 성역이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는 아랍 속담이 생각난다. 어디 우리가 사는 집만 그럴까. 우리 마음의 집도 마찬가지다. 마음 안에 절망, 슬픔, 부끄러움, 억울함, 외로움 같은 ‘낯선 손님’이 쉬어 갈 거처가 없다. 감정을 조절하는 감정이 고장 나고 말았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