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의 국가 우선주의
백낙청의 일관된 눈높이는 국가에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민의 삶을 말할 때조차 백낙청의 눈은 국가를 우선해서 먼저 보고 있다. 물론 그가 우선해서 보고 있는 국가는 국가주의자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질을 달리한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촛불 이후의 새로운 세상은 남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하고 삶의 질을 높여가기 위해서도 남북의 느슨한 결합이나마 우선 도모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세계사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범한반도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변혁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먼저 대한민국에 실력을 갖춘 민주정권을 수립해야 하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통해 한국경제의 활로를 찾는 동시에 동아시아, 나아가 유라시아의 지역협력에서 한반도가 걸림돌이 되어온 현실을 혁파해야 한다.
-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같은 책 278~279쪽
백낙청은 국가를 언급할 때 ‘우선’이나 ‘먼저’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백낙청이 무의식 속에서도 인민의 삶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낙청은 ‘우선 먼저’ 국가 차원의 전략을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민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전략이라기보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전략이다. 1966년 『창작과 비평』 창간 논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백낙청은 문학인과 지식인을 ‘엘리뜨’로 지목하고 엘리뜨의 결집을 우선해서 추구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서 엘리뜨 또는 먼저 세상의 실상을 깨닫고자 하는 인민을 변화시키는 전략은 매우 중요하고도 유의미한 전략이다. 나는 엘리뜨주의와는 다른 백낙청의 엘리뜨 ‘우선 먼저’ 입장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 지식인 사회의 여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엘리뜨가 대부분 인민 위에 군림하는 기득권이 되거나 대의정의 권력 엘리뜨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붓다는 깨달음 직후 자신의 깨달음을 전할 대상으로 함께 고행하던 다섯 명의 수행자를 찾아 걸어서 거의 3백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미가다야鹿野園로 갔다. 그들이 우선 먼저 자신의 깨달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붓다는 가는 도중에 우빠까라는 아지봐까ajivaka, 邪命外道를 만나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했지만 우빠까는 코웃음을 치며 붓다를 비웃고는 가버렸다.
백낙청이 1960년대부터 엘리뜨를 강조한 것은 먼저 각성한 지식인과 문인들이 인민들을 각성하도록 이끌어주는 촉진자, 도우미, 좋은 이웃善友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한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백낙청 이름짓기의 최대 걸림돌은 엘리트 우선 중심의 사고가 국가 우선 중심의 사고로 직행하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민의 삶이라는 시각에 서면 단순해질 수 있는 문제도 백낙청에게 오면 다소 복잡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본주의? 천황제를 정당화시키는 용어!
민주주의와 생태주의에 대한 백낙청의 지식은, 특히 서구의 이론에 대한 지식과 섭렵은 아마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해박할 것이다. 특별 대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를 보면 이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be 동사가 갖는 그 특이성을 존재자나 실체가 아니고 그렇다고 니체가 말하는 것처럼 공허한 개념도 아닌 ‘스스로 그러함’과 같은 뜻으로 해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be라는 술부의 실제 의미가 역사적으로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원불교나 수운 선생이 말하는 시운時運에 대한 인식하고 통하는 면인 것 같습니다.
- 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 『창작과 비평』 (2021년 가을호), 107쪽
불가 용어로 한 소식 한 사람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김용옥은 “새로운 생각을 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정확한 지적을 한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말을 모국어가 아니라 ‘플레타르키아’pletharchia라고 아무도 잘 모르는 생소한 그리스어를 끌어다 만들었다. 김용옥의 이러한 새로운 개념 만들기는 사실 그가 내세우는 ‘우리다운 기준’과도 배치되고 서구 근대를 폭파시켜버려야 한다는 그의 과감한 주장과도 정면에서 어긋나는 이름짓기일 수 있다. 자신의 새로운 말을 받아들일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의 인민들을 설정하고 있지 않는 듯한 현학 취미는 동학과 후천개벽의 사상과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백낙청은 김용옥이 인민이 주체가 되어 다스린다는 건 역사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할 때 이에 동의한다. 그리고 뒤이어 “민본사상이 평등사상과 결합하는 전환점이 너무 중요”하고 “요즘에는 수평주의 자체가 새로운 신이 되어버린 면이 없지 않지만 동학은 그와는 다른 도력의 상하를 존중하는 수평적 민주주의”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민주주의 대신 김용옥이 언급한 민본주의란 이름짓기 자체는 일본 지식인들이 천황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 만든 조어였다.배병삼,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 민본주의란 천황제나 왕정, 엘리트 우선의 귀족정, 대의정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민본주의가 나쁜 개념만은 아닐 것이다. 민본주의나 위민爲民 정신은 사대부 양반들의 기득권에 맞서 투쟁하는 왕권의 존립 기반이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세종과 정조의 개혁정책도 인민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동학과 원불교의 깨달음이 구현되는 현실 정치체제를 민본주의라고 이름짓는 것은 국가 우선의 시각에서 나온 해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서구 근대의 민주주의, 즉 민주정이란 정확히 말하면 대의정이다. 19세기 말 한·중·일의 지식인들은 하나의 정치체제인 데모크라티아democratia를 번역하면서 이데올로기 수준으로까지 격상시켜 민주주의라고 번역했다. 그만큼 왕정을 폐기하고 인민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제자리를 찾고자 하는 당시 인민들의 강력한 염원을 반영한 것이었다. 전세계에서 민주정을 민주주의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는 곳은 한국, 북한,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한자문화권밖에 없다. 백낙청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용옥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촛불을 ‘수평적 플레타르키아’라고 부른 것은 뜻밖이었다.
민주주의는 소인들의 정치다
민주주의는 대의정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체제다. 대의 민주주의, 선거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알콜제로 소주나 녹색성장처럼 말이 안 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논의할 때는 먼저 이 점부터 전제하고 시작해야 하고 꼭 직접 민주주의라고 별도의 이름으로 불러 분별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동일한 독특한 이중 정체성의 정치체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통치자가 피통치자가 되고 피통치자가 통치자가 되는 교체에 있다. 동시에 주권자가 공동체와 국가의 주요정치를 결정하는 주권자 발의제와 소환제, 국민투표 제도가 핵심이다. 선거나 삼권분립 등은 민주주의의 핵심이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는 소인들의 정치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정치다. 플라톤 등이 주장하는 철학자 독재정치, 공자가 말한 군자의 정치와는 전혀 다른 정치체제다. 물론 민주주의나 철인정치나 각기 모두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인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살 수 있는 최선의 정치체제는 그나마 민주주의다. 현자나 철학자로 추앙받던 지도자가 하루아침에 최악의 독재자로 변신하는 경우는 역사를 통해 수도 없이 경험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가 이전의 공동체 정치체제는 거의 대부분 민주주의였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대체로 연방제 민주주의를 시행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와 연방제는 한 묶음이었다. 아메리카 이로쿼이족Iroquois 연합, 호데노소니Haudenosaunee 연방 등의 민주주의는 토마스 모어, 몽테뉴, 로크, 루소 등 서구 근대 정치사상가들에게 강한 인상과 충격을 주었다. 서구의 자연법 사상은 사실 인디언 사회가 서구에 준 일종의 선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로쿼이 연합의 민주주의와 연방주의 제도는 미국 헌법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 1987년 미국 연방의회 상원은 이로쿼이 연합이 미국 헌법 제정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도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로쿼이 연합을 미국 건국의 ‘잊혀진 아버지Forgotten Fathers라고 부르기도 한다.여치헌, 『인디언 마을 공화국』
민주주의는 김용옥과 백낙청이 말하듯 현실에서는 거의 없는 정치체제가 결코 아니다. 아테나이의 민주주의가 여성과 노예를 배제한 시민들만의 민주주의라는 비판은 맞다. 그것은 그 시대의 한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나이의 민주주의는 아테나이를 강한 국가로 만들었고 다른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우월한 정치체제로 받아들여졌다. 국가로 나아가지 않고 있던 비서구 사회에서도 수많은 연방제 공동체들이 있어 왔다.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는 스위스에만 한정된 정치제제가 결코 아니다. 하나의 국가였던 미국의 주state 차원에서도 직접 민주주의는 주요한 정치체제다.
국가는 망해도 인민은 망하지 않는다
국가에 초점을 맞춘 백낙청의 한반도 나라만들기 이론에는 당연히 인민들의 공동체와 다양한 사회가 시야에 그렇게 중요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 또한 국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민주주의나 다양한 지역자치의 민주주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인민들의 세계관을 바꾸고 개벽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름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근본의 시각 전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소련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는 망해도 인민은 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가 망하면 인민들은 물질생활의 결핍을 이웃과 공동체 사회의 힘으로 해결하는 사회성 동물의 본성을 금방 발휘해 나가기 시작한다. 공동체를 만들고 자유인으로서의 삶의 지혜를 곧바로 회복하면서 금방 생존의 활로를 모색해나간다. 재난공동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상호부조의 공동체야말로 인민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사회안전망이다.
‘던바의 수’Dunbar’s number는 사회성 동물인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조건으로서 그 ‘사회’의 기준을 제시해준다. 한 사람이 터놓고 신뢰하는 사람의 숫자는 150명 안팎이다.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무수한 역사 사실과 국가, 그리고 최근의 트위터 등 SNS까지 조사 연구한 뒤 인류가 출현한 이래 이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간의 뇌가 그 이상은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로빈 던바, 『던바의 수』
실제로 아마존 원시 부족 공동체의 평균 구성원도 약 150여 명이다. 구성원 수가 200명을 넘어서면 공동체의 일부가 따로 다른 지역으로 떨어져 나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인류의 전쟁사를 살펴보아도 전우애로 똘똘 뭉친 전투 핵심부대는 150명 안팎의 중대 단위다. 인민이 서로 주체로서 신뢰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와 그 지역공동체의 연대와 연합이야말로 국가 이전에 인민 삶의 근거지로서 아주 ‘오래된 미래’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이건 국가건 자본주의의 무한축적 원리에 충실하여 최대한의 돈벌이에 목을 매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적어도 개인이나 한정된 집단 차원에서는 그런 세태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고 나아가 이런 기막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돈벌이를 하고 경제에서 탈락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당장에 나 자신과 김종철을 이런 개인들 틈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와 녹색담론」, 같은 책 115쪽
백낙청의 이런 지적은 일견 맞는 말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자존감을 지켜내면서 지금과 같은 기막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세계관대로 다른 대안을 실천하는 삶을 꼭 지금의 체제에 순응한 돈벌이로 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태산 박중빈원불교 창시자 ― 편집자 주이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간척사업을 벌인 것은 개벽세상을 준비하는 새로운 삶이었지 비굴하게 체제에 순응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계속)
★이 글은 프레시안(http://pressian.com)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