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클’의 시작
2019년 11월, 공개모집으로 기후위기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이 시기에는 호주 산불이 계속되고 있었다. 캐나다, 알래스카 등지에서 영구동토층permafrost, 2년 이상 모든 계절 동안 결빙 온도 이하로 유지되는 땅 ― 편집자 주이 녹고, 그로 인해 전 세계 청년들이 기후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었다. ‘가오클’은 선한 일을 하려는 봉사정신이나 사명감으로 모인 게 아니었다. 앞으로 10년 후, 기후위기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것이라는 절실한 위기감. 일종의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위기의식이 우리를 뭉치게 했다.
‘가오클’의 정식 이름은 ‘가디언즈 오브 클라이밋Guardians Of Climate’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청년기후수호대’다. 이름을 짓는 데 영감이 된 인기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거대한 악당에 대항하면서도 즐겁게 계속해서 우리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투인 만큼, 독서동아리 구성원들도 서로를 전사라 부른다.
활동 초기에는 하고 싶은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단체 기조와 팀 구성 등에 대한 회의를 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79가지 솔루션이 담긴 『플랜 드로다운』폴 호컨 지음, 글항아리사이언스 펴냄, 2019이라는 책으로 스터디를 병행했는데 이 책은 우리 활동에 많은 영감을 제공해준 고마운 책이다. 회의와 스터디로만 두 달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우리도 정책결정권자들처럼 기후위기 대응 계획만 세우다 끝날 것 같아, 거리행동을 나서기로 모의했다.
첫 거리행동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무르익었을 때의 일이었다. ‘Merry Climate Crisis mas메리 기후위기 마스’ ‘기후난민 지난 10년간 매년 2천만 명’ ‘우리나라 기후위기 대응지수 OECD 꼴등, 1인당 탄소배출 전 세계 4위’ ‘하루 채식의 효과, 가장 쉬운 환경보호’라고 쓴 피켓을 들고 홍대 신호등 앞에서 짧은 거리행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두려웠는데, 갈수록 사람들이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쓴 간절한 메시지에 눈길을 주는 것 같아 기뻤다. 피켓을 드는 데 그치지 않고 퍼포먼스도 펼쳐서 메시지 전달과 동시에 보는 즐거움도 주고, 사람들이 행동에 참여하게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책은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을 혼자서 읽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가오클’에 ‘북수다’를 더했다. 독서모임을 해보니 혼자 책을 읽을 때보다 집중도 잘 됐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다양한 단상을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몇 번의 거리행동과 독서모임을 진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졌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활동이 멈추었고 그 공백을 야생동물이 채웠다. 그간 관심 밖의 대상이던 생태계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알리기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까지 묶여서 답답했다. 이대로 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더욱 널리 알리고 해결책을 논의하며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기를 바랐다. 이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건 ‘가오클 북수다’가 유일했다. 지쳐가는 우리가 바깥바람을 쐴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이 서로 만나 존재를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큰 위안이었기 때문이다.
기후우울증 치료제가 되어 준 책과 수다
‘가오클 북수다’는 주로 활동하는 회원 두세 명이 기획하고, 활동 회원들이 상의해서 책을 선정한다. 인스타그램 공지를 보고 신청한 참여자들까지 매회 열 명 남짓하게 모이며, 모임은 월 1회 진행된다.
기후우울증이란 기후위기 현실을 맞닥뜨려 그 거대한 문제 앞에 압도되고,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껴 발생하는 우울함을 가리킨다. ‘가오클’ 전사들도, 독서모임에 오시는 분들도 모두 기후우울증 증세를 갖고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아주 힘든데 10년 후엔 얼마나 더 큰 재해와 식량위기가 올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2100년까지 지구 온도의 상승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는데, 만약 지구의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어디서 얼마만큼의 강도로 자연재해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북수다’는 책을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의 감상뿐 아니라 기후위기를 대응하며 살아가는 서로의 일상 속 고민을 터놓다 보면 어느샌가 마음속 무거운 돌이 하나씩 사라지는 체험을 매번 한다. 책 속에서 어떤 것들이 기후위기를 야기하고 심화해 왔는지,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삶의 태도에 대한 영감을 받기도 한다. ‘가오클’ 전사들과 참여자들 모두 일상에서 채식과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재사용과 재활용을 통해 쓰레기 배출을 ‘0(제로)’에 가깝게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원칙 ― 편집자 주 등을 실천하며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유별나다’는 평가와 ‘적당히 하라’는 말에 마음속 상처가 많다. 독서동아리에서 한바탕 하소연하고 깊이 공감을 받으면 눈물 날 정도로 속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와 에너지가 차오른다. 독서동아리 지원금으로 마련한 책을 선물했을 때 기뻐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끼칠 선한 영향력을 떠올리며 보람을 느낀다.
조시 폭스 감독이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익숙함과 작별하기, 변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기」에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있는 절망감이, 격변의 시기에는 무거운 닻이 되어 휩쓸리지 않게 도와준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함께 행동하라. 행동하는 곳에는 우울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라는 말도 함께 나온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줄 때 비로소 행동이 시작된다는 것을 ‘북수다’를 통해 깊이 경험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책’과 ‘수다’가 크나큰 버팀목이 되어 우리 모두를 연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가디언즈 오브 클라이밋 인스타그램
@guardians_of_clim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