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서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㉕
제주 ‘담너머’
우리가 ‘담너머’를
시작한 이유
‘담너머’는 2019년에 시작한 제주 회복적 정의 연구모임입니다. 제주는 최근 10여 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주민의 증가입니다. 제주에 이토록 많은 육지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은 제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제주는 육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유배지였고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시골 지역에서는 육지의 이주민에게 집을 내어주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주민은 계속 유입되었고 더불어 유례없이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제주 사회 곳곳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합니다. 마을의 발전을 원하는 사람과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싶은 사람,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과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준을 요구하는 사람, 제주를 여행지로 경험하는 사람과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 다양한 경험과 의견이 부딪힙니다. 토박이도 이주민도 이러한 갈등을 일상적으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가 속한 마을, 공동체, 학교, 직장에서 갈등을 뛰어넘는 회복과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만, 막상 서로 교류를 끊거나 없는 셈 치고 살아가게 됩니다. 서로를 향해 쌓아 놓은 ‘담’을 ‘넘어’ 회복의 길을 찾고자 우리는 ‘담너머’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모임
‘담너머’는 특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전업주부, 귤 농사를 짓는 농부, 기념품가게 매니저, 김밥집 사장 등 제주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 토박이들과 이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는 모임입니다. 국내에서 ‘회복적 생활교육’ ‘회복적 사법’으로 적용되고 있는 ‘회복적 정의’를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비폭력대화’ ‘서클’ 같은 ― 회복과 평화를 근간으로 하는 ― 주제를 병행하며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동아리원들은 한국회복적정의협회Korea Association for Restorative Justice, KARJ에서 진행하는 3단계의 회복적 정의 전문가과정을 수료해서 실제 경찰서나 학교 같은 현장에서 갈등조정을 할 수 있는 전문가로 훈련받고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전문가과정까지 수료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책을 읽고 나눠온 독서모임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담너머’는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2020의 이재영 작가를 초청해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행사로 새로운 구성원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모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대안학교 교사, 퇴직한 법조계 공무원, 학원 강사, 예술 작가 등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이들이 합류했으며 나이도 20대부터 60대까지로 넓어졌습니다. 새로운 동아리원들은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을 잘 모르지만 첫 모임부터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개념을 알지 못할 뿐 갈등과 회복에 대한 고민은 지금 제주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가득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담너머’로
초대합니다
모임은 늘 가벼운 대화로 시작합니다. 그날의 기분이 어떤지 서로 묻습니다. 책을 읽는 날에는 짧게 읽은 내용을 나누는데 보고 겪었던 일들까지 얽히면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책 읽는 날 외에 ‘서클’을 진행할 때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제주에서의 삶 이야기, 갈등에 대한 이야기 등 토킹 스틱이라는 막대기를 하나 들고 돌아가면서 주제에 따라 이야기합니다. 모임의 마지막에는 늘 그날의 모임에서 새롭게 알게 되거나 느낀 것을 나눕니다. 최근 모임에서는 아주 재미난 일이 있었는데 모임에 오랫동안 참여한 멤버들이 모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전보다 대화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침없이 내뱉던 말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정제하고, 내 기준에 맞춰 해석하고 평가하며 듣던 상대의 말도 있는 그대로 들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말하기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자발적 불편함으로 다함께 소통하는 것이 편해지는 경험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담너머’는 제주에 사신다면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모임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겪고 있는 이야기가 우리의 연구주제입니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야트막한 담부터 넘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모여 책을 읽습니다.
회복적 정의란? 회복적 정의 운동은 서구의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족한 점을 바로잡기 위해 등장했다. 적절한 처벌로 정의가 성취된다고 보는 응보적 정의의 관점을 넘어서 피해가 최대한 치유될 수 있도록 당사자와 공동체 모두의 책임과 의무를 규명하여 잘못을 바로잡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