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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발달장애인들의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
책날다
모이는 곳
서울 마포구 망원로
모이는 사람들
청년
추천 도서
① 『오 헨리 이야기』 오 헨리 지음 / 피치마켓 옮김 / 피치마켓 펴냄
②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 지음 / 김선영 옮김 / 새움 펴냄
③ 『갑신년의 세 친구』 안소영 지음 / 창비 펴냄
④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지음 / 염명순 옮김 / 비룡소 펴냄
⑤ 『아무튼, 계속』 김교석 지음 / 위고 펴냄
독서동아리 ‘책날다’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 사무실로 향했다. 대부분의 동아리는 주로 카페나 도서관에서 모이는데,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성미산좋은날협동조합은 발달장애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 만든 협동조합으로, ‘책날다’ 회원 중 한 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한 달에 한 번, 이 사무실은 독서 모임을 위한 장소가 되었다. 다섯 명의 청년과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발달장애인이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
‘책날다’는 청년 발달장애인 열 명으로 구성된 독서동아리다.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대안학교를 졸업한 동문이다. 부모를 중심으로 교류가 형성되어 있었고 독서동아리를 통해 자식들의 모임도 결성됐다. 청년들이 건강하게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안을 모색하다가 책 모임을 추진했고, 올해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인원이 많아지면 개별 소통에 불편이 있기에, 시간대를 나눠서 다섯 명씩 독서 도우미 선생님과 함께 모임을 진행한다. 동아리 대표 청년의 어머니가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생님이 되어주기를 부탁했다. 현재 어린이 청소년 독서 수업도 따로 진행하는 전문가라 동아리 결성 초기에 큰 힘이 됐다.
모임에 참여하려면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모임 당일에는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나 자신의 삶과 연관된 점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보는 활동을 한다. 정일가명 씨의 부모님은 “발달장애인이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야기 전후 관계 파악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매월 한 명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동아리 모임에 참가한다. 모두 처음부터 책을 좋아했던 걸까? 어떤 회원은 직접 교보문고에 가서 둘러보고 책을 살 만큼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원도 있다. 성미가명 씨는 “평소에 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독서 모임을 하면서 책 읽기에 흥미가 생겼어요”라고 답변했다. 함께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책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삶의 큰 원동력이 됐다.
한 달에 한 권을 읽다 보니 아무래도 책 선정에 더 신중하다. 청년들, 부모님들, 그리고 독서 도우미 선생님이 함께 토의하여 책을 결정한다. 분량이 길고 내용 파악이 어려운 책은 읽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재는 초등 고학년~중학교 수준의 책을 선정해 읽고 있다.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회원들은 “교훈을 주고 스토리가 재미있는 책”이라고 답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독서동아리의 힘
“일상이 너무 무료하게 지나가요.”
요즘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남정가명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회원들 대부분은 주로 집과 직장만 오가는 일상을 보내는데, 이는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지만 발달장애인으로서의 다양한 맥락이 존재한다. 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기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상처를 받아 집 밖에 나오지 않기도 한다. 특히 가족 외에는 타인과의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어떻게 보자면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독서동아리를 계기로 회원들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날마다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으며 모임 날짜를 기다리고, 참석하는 일이다. 책 모임이 삶에 또 다른 활기를 불어넣는 존재가 된 것. 사실 회원 열 명 중 두 명은 아직 모임에 참석하는 자체도 힘들어하지만, 빠지지 않고 나오려 노력하고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모임이 장기적으로 잘 운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아직 운영한 지 1년이 넘지 않은 동아리라 지금은 적응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이후에는 시너지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인터뷰를 위해 동아리를 방문했을 때는 『아무튼, 계속』을 읽으며 독서기록장을 정리하는 활동이 있었다. 독서 도우미 선생님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책 속 목차와 맞닿은 여러 질문을 던졌다.
-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피해야 할 세 가지는?
- 내가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것이 있다면?
- 나는 나의 하루 일정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을까?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고 지나갔을 질문들이지만 책 모임을 통해 사유의 시간이 생긴다. 각자 자신의 독서기록장에 빼곡하게 답변을 써 내려가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나누고 공감한다. 사고의 틀을 넓히고,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상처를 내보이기도 한다. 회원들이 글을 쓰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서사를 담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모님들은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통해 “언젠가 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사회 밖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생긴다”고 이야기했다.
‘책날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예매가 취소되긴 했지만,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은 후 뮤지컬도 보기로 했었다. 10월에는 책 소풍으로 김유정의 책을 읽고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도 방문할 예정이라는 들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책 여행 이후 전화 인터뷰로 “레일바이크를 함께 타고 맛있는 닭갈비도 먹었다”는 후기를 들었다. 김유정 문학촌 내 정자에서 작가의 책을 주제로 토의하며 인상적인 시간을 보냈단다. 좋은 경험이었기에 앞으로도 책 여행 일정이 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독서동아리가 진행되는 동안 대기실에서는 청년들의 부모님들이 둘러앉아 서로의 근황을 나눈다. 두런두런 모여서 마포구 맛집에서 사 온 크로켓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장소 섭외부터 청년들을 태우고 사무실에 오는 일까지, 쉬운 일은 없겠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인터뷰 내내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책날다’는 채 1년이 되지 않은 신생 동아리다. 올해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에 도전하며 좋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기에, 내년에도 모임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천천히 일상 속 변화를 느껴갈 ‘책날다’를 응원한다.
★ 취재단 이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