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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 책을 더해 새로운 인연 만들기
몰리노
모이는 곳
부산대 근처의 모임 공간 및 카페
모이는 사람들
직장인과 대학생대학에서 같은 연극동아리를 했던 사람들
추천 도서
①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리 배지트 지음 / 김현경, 한빛나 옮김 / 민음사 펴냄
② 『어른이 되면』 장혜영 지음 / 시월 펴냄
③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지음 / 민음사 펴냄
④ 『아무튼, 비건』 김한민 지음 / 위고 펴냄
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펴냄
‘몰리노’는 스페인어로 ‘풍차’라는 뜻이다. 운영자 윤휘찬 씨는 스페인 고전소설인 『돈키호테』를 상징하는 풍차에서 독서동아리 이름을 따왔다. “『돈키호테』에서 풍차를 괴물로 보고 무찌르려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바보 같지만 우직하게 노력하는 모습, 열정 있게 나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을 닮고자 ‘몰리노’로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몰리노’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2년. ‘몰리노’는 다른 독서동아리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보통 독서동아리가 서로 낯선 상태로 만나 책을 매개로 관계가 형성된다면, ‘몰리노’는 대학교 연극동아리로 인연을 쌓아오던 다섯 명에서 출발하였다. 연극동아리에서 연극도 했지만, 토론동아리도 하다가 지금의 독서동아리 ‘몰리노’가 된 것.
“지역별로 독서동아리가 많이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도 한다. 보통 온라인 공지 등을 통해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지인끼리 독서동아리를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몰리노’는 지인, 동문이라는 장점을 살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알아가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인의 지인이 또 지인이 되어 함께 책을 만나다
평소 친구들과 만나 함께 책을 보거나 책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독서동아리에서는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평소에 나눌 수 없는,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게 된다. ‘몰리노’는 지인 모임에서도 독서동아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인과의 독서동아리라 더 좋은 것 같다”는 이혜인 씨는 “보통 친구나 선후배 사이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몰리노’에서는 편하게 할 수 있다. 다른 독서동아리에서는 망설이게 되는 이야기도 지인이라 과감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몰리노’에는 대학교 연극동아리 부원으로 활동하는 대학생 회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와, 지인의 지인이 또 지인이 되는 과정에서 책이 더해져 더 깊고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규칙이 있다. 독서동아리 안에서만큼은 각자의 닉네임을 정하여 불러주는 것. 매 모임마다 본인의 기분, 상황에 맞춰 닉네임을 바꿀 수도 있다. ‘수기’ 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하는 김효진 씨는 “수기는 물그릇이란 뜻이다. 물이 그릇에 따라 달라지듯 물그릇처럼 살고 싶어 닉네임을 그렇게 정하게 되었다”며 “이름이나 호칭보다 닉네임을 부르니 좀 더 편해지고, 닉네임을 통해 선후배, 친구라는 관계성에서 벗어나 독서동아리 모임 시간만큼은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닉네임의 장점을 알려주었다. 또 그때그때 달라지는 닉네임을 통해 회원들의 기분이나 상황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10월 마지막 주에 만난 ‘몰리노’의 32번째 모임에서 나눌 책은 『디브리프 vol.2 ─ 포스트 코로나 시대 달라지는 우리 삶』이었다. 최근의 사회적 현상을 나열하고 분석한 뒤 미래의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할 부분을 조명하는 책이었다. 박소연 씨는 “프리랜서 요가 강사를 4~5년째 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휴강과 개강이 반복되면서 수입이 0원일 때도 있었다. 최근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앞날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며 “이 책을 읽으며 제 상황과 매치되어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고, 각자 직업의 변화부터 앞으로의 상황에 맞게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이야기했다.
코로나19 이후 ‘몰리노’에도 변화가 있었다. 책과 관련된 공연을 보러 가거나 독서 기행 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온라인 독서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전은희 씨는 “아쉬운 마음에 여러 차례 화상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했는데, 가상의 공간을 통해 각자의 공간을 공유하고 시공간을 넘어 편하게 접근하는 장점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면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어색하고 이야기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 확실히 오프라인 독서 모임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전은희 씨. 박소연 씨도 “코로나 이후 혼자 묵언수행 하듯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몰리노’에 오면 꼭 집에 온 느낌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존중받고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며 “앞으로도 안전하게 그리고 천천히 오래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몰리노’는 연극동아리에서의 인연 위에 책을 쌓고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후배들이 들어와 때론 아지트 같은,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몰리노’.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의 세계가 좁아지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모르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새로운 후배, 회원이 들어오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교감하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좀 더 많은 사람이나 새로운 인연도 중요하지만, 구성원들이 모여 사회에 또 다른 긍정적 영향력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목표도 전했다.
첫 시작은 지인이었지만,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좀 더 특별한 사이가 된 그들. 책과 함께 서로의 인생에 발전적인 이야기를 더해가며, 이미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몰리노’가 앞으로 더욱 멋진 커뮤니티로 성장해갈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몰리노’를 방문했을 때 인상적인 것은 바로 운영자 윤휘찬 씨가 모임마다 준비해 오는 발제문이었다. 작가 소개부터 책 소개, 배경 지식, 책을 읽고 나눠볼 질문까지 세심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전은희 씨는 “가끔 책을 못 읽어 올 때도 발제문이 있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책이 더 궁금해져 모임 후엔 꼭 다시 책을 읽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매회 차곡차곡 쌓여가는 발제문은 운영자의 블로그blog.naver.com/cartoonmade1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몰리노’가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함께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취재단 임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