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행복백서’
모이는 곳 _ 경기 고양시 대화동 ‘행복한 책방’
모이는 사람들 _ 함께 일하는 병원 직원들
추천도서
1.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지음, 비룡소 펴냄)
2. 사자가 작아졌어! (정성훈 지음, 비룡소 펴냄)
3. 눈물바다 (서현 지음, 사계절 펴냄)
4. 두더지의 고민 (김상근 지음, 사계절 펴냄)
5. 알사탕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6. 영(zero) (캐드린 오토시 지음, 북뱅크 펴냄)
7. 나의 엄마 (강경수 지음, 그림책공작소 펴냄)
8. 나의 아버지 (강경수 지음, 그림책공작소 펴냄)
9. 엄마가 달려갈게! (김영진 지음, 길벗어린이 펴냄)
10. 아빠가 달려갈게! (김영진 지음, 길벗어린이 펴냄)
나른한 오후, 낮은 주택들 사이 푸른 하늘이 맑게 비추는 대화동 ‘행복한책방’에 도착했다. 갈림길 사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책방의 모습이 산뜻하다. 시곗바늘이 다섯 시를 가리키자 ‘행복백서書’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문한 그림책 도착했나요?” 책방에 들어오자마자 하는 일은 주문한 책이 도착했나 책장을 확인하는 것. 제 주인을 찾은 책들의 얼굴이 밝고, 명랑하다. 책방의 단골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책장에는 회원들의 이름이 층층이 적혀있다.
이내 한 두어 권의 그림책을 손에 안은 회원들이 모두 모이고, 가져온 그림책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귀와 눈은 금세 그림책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인공의 작은 시련과 불안함에 숨을 죽이고, 다음 장을 넘기는 낭독자의 손을 응시하는 모습들이 꼭 어린아이 같다. 낭독을 마치고 각자 그림책이 불러일으킨 기억 조각들을 꺼내놓는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동생을 맡기고 나가시면 동생에게 밥을 주기 위해 옆집 아주머니에게 가서 분유를 타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아주머니께서 분유를 타주시면 가져다가 동생에게 먹였죠. 『빈집에서 온 손님』의 금방울을 보니 어렸을 때가 떠올라요”
“저는 어렸을 때 『알사탕』의 동동이처럼 여러 사람을 배려하느라 하고픈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적이 많아요. 그래서 어렸을 때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동동이가 느낀 감정이 더 마음에 와닿는 거 같아요.”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엄마가 언제 오실까 하는 불안감,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을 다시금 직면한다. 그림책을 읽으며 겹겹이 묻어둔 감정의 기억을 수면 위로 꺼내놓는 것이다.
“그림책 동아리에 처음 와서 『눈물바다』라는 책을 접했어요. 글밥도 적고, 아이들을 위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읽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림책이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니까 덜 자란 어른들에게 유아적으로 남아있는 결핍들을 만져줍니다. 단순하게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감동이 있어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요.”
‘행복백서’ 회원들은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책을 읽으며 오히려 자신이 감동하고, 치유 받는다며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그림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행복백서’ 그림책 모임은 함께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구성되어있다. 동시에 이들은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일과 육아 사이에서 ‘행복백서’ 모임을 꾸준히 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한다는 고성아 씨가 말문을 열었다.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것은 물론 힘들지만 여기 나와 있는 시간이 힐링이에요.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을 통해 반성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니까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도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읽은 책을 한두 권씩 집에 가져가는 경우도 있는데 책을 가져가면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그날 밤에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죠.”
그림책은 길이가 짧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부모들이 읽기에 편하고, 전달하려는 바가 명료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기 좋다. 이렇게 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마음의 짐을 하나 덜어놓고, 집에 돌아가 아이들의 그림책 소믈리에가 된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금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들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점도 좋은 것 같아요. 『두더지 고민』 같은 책들을 읽으며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볼 수 있고, 『엄마가 달려갈게』와 같은 책들을 읽으며 제 진심을 전달할 수 있어 좋아요.”
그림책을 통해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언젠가 힘든 시간이 찾아올 때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책방에서 책들과 만남을 통해 행복했던 순간들을 꺼내 위로받으면 좋겠다는 최나진 대표의 마음이 뭉클하다.
“재활치료를 하러 오는 환자분들은 장기 치료로 몇 년을 지속적으로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분들께 그림책을 선물해주고, 그림책을 읽어 드리기도 했는데 무척 기뻐하셨어요. 직원들도 나눔에 보람을 느끼곤 했죠.”
“병원에서 그림책 저자의 강연을 여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통해 치유하자는 생각으로 시도해보게 되었죠. 저희가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이 나누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환자들과 직원들이 함께 그러한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좀 더 개선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육체의 병은 사람의 마음마저 지치게 한다.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마음도 메말라간다. 환자들의 어두운 표정을 봐오던 직원들은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터. 그림책 모임이 형성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 병원에서 그림책 저자의 강연이 열렸고, 직원들은 그림책을 함께 읽고 묵은 감정을 풀어낼 수 있었다. 그림책의 따듯한 향기는 병원에서도 은은히 퍼지고, 밝게 피어나는 얼굴들이 선하다. 병원을 맑고 깨끗한 공기로 정화하려는 ‘행복백서’ 회원들의 마음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림책은 한 번 읽을 때랑 두 번 읽을 때 느낌이 달라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그림과 글자 곳곳에 숨어있거든요. 첫 번째 보다 두 번째 읽을 때 그림에 담긴 섬세한 표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죠. 이전에 읽었을 때 발견하지 못한 점들을 찾아내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행복백서’가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충분히 느끼는 방법은 ‘여러 번 읽기’와 ‘그림 감상하기’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누군가가 읽어주기 때문에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감성적으로 볼 수 있지만, 어른은 혼자서 읽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여러 번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글을 읽고 나면 대부분 내용이 머릿속에 저장되기 때문에 다음에 읽을 때는 그림도 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책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림책을 접했을 때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이유로 내용이 가볍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행복백서 회원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함께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그림책에서 받은 사랑을 일터에도 내리 전달해주려는 행복백서 회원들의 마음이 따듯하다. 행복백서가 추천하는 그림책들을 부모님과 아이들과 함께 읽기를 권해보고 싶다.
★ 작성자: 청년취재단 육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