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돌봄인문학'
모이는 곳 _ 서울 강남구 카페
모이는 사람들 _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
추천도서
1. 엄마의 말뚝 (박완서 지음, 세계사 펴냄)
2.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지음, 경당 펴냄)
3. 그림 형제 민담집 (그림 형제 지음, 현암사 펴냄)
4.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진 시노다 볼린 지음, 또하나의문화 펴냄)
5.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 심리학적 이해, We (로버트 A. 존슨 지음, 동연 펴냄)
6. 부모와 다른 아이들 (앤드루 솔로몬 지음, 열린책들 펴냄)
처음 아이를 양육하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미혼이기에 결혼과 임신, 그리고 양육이 주게 될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가까운 지인 중에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육아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지하다.
일반적으로 양육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양육’이라는 단어와 연관 지어 ‘즐거움, 행복, 책임감’과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닮은 생명의 탄생은 일상에 즐거움과 행복함을 불어넣을 것이고 책임져야 할 식구가 늘었기에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질 것이다.
그러나 양육을 해본 사람은 ‘즐거움, 행복, 책임감’ 외에 한 단어를 더 떠올린다. ‘충격’. 처음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 사람을 돌보고 키우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초중고 12년간의 학교생활을 떠올려보자.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와 같은 과목은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까지 다니며 학습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정작 인생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양육의 기술은 하나의 과목, 하나의 단원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니 초보 부모들은 그간 터득하고 배워온 지식이 아이를 돌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는 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여름의 불볕더위가 가시고, 산뜻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모임 장소인 카페 ‘마이북’을 찾았다. 새 계절을 맞이해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있는 나무들과 양재천을 둘러싼 채 핀 코스모스를 보니 ‘설렘’을 형상화하면 이런 모습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 앉은 ‘돌봄인문학’ 대표 김희진 씨의 미소에서도 가을을 맞이한 설렘이 스쳐 지나갔다. 그에게 독서 모임의 시작에 관해 물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양육과 돌봄의 어려움과 보람, 괴로움과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어 깜짝 놀랐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좋은 학생,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되기를 늘 요구받았고, 대부분 그것은 경쟁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는 일에 관한 것이었어요. 부모가 되면서, 난생처음으로 남을 돌보는 것 또한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보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 사회학적인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김희진 씨도 아이를 양육하는 매 순간이 기쁨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양육하며 느끼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 때문에 힘겨운 순간도 많았다고 했다. 그녀는 본인과 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있을 초보 엄마들과 본격적으로 양육, 궁극적으로 돌봄에 대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장인 양육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단순히 보육 기관 부족 등의 문제가 아니에요. 돌봄의 ‘사회적’, ‘공적’, ‘인간적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는 조직과 사회의 분위기가 가장 큰 적입니다. 우리는 육아 경험이 조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조직과 사회가 그런 수량화할 수 없는 효과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육아가 조직에 방해되는 핸디캡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근본적인 적과 싸우기 위한 무기로서, 돌봄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돌봄의 사회적 가치와 인문학적 가치를 직접 공부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갈고 닦으려고 합니다. 부모 인문학 공부는 우리의 경험과 이를 통한 통찰을 사람들과 수월하게 나눌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보통의 부모들은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양육 서적을 읽는다. 그러나 ‘돌봄인문학’의 엄마들은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녀들은 단순히 양육기술을 나열해 놓은 일반적인 양육서보다 인문학 서적을 통해, ‘돌봄’이 가진 가치와 의미를 잘 음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봄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인문학적 통찰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가치는 더할 수 없이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돌봄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효과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학, 역사, 철학, 예술 텍스트를 공부하고 음미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더 분명하게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편적인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양육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일과 양육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 성취와 돌봄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작년까지 아이들도 매번 독서 모임에 동참했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딱딱한 분위기의 강의실을 벗어나서 엄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청계산으로 향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고, 엄마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책을 읽는다. 회원들은 독서 모임이 공부를 위한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한 해 동안 읽을 책을 한꺼번에 주문하므로 연초에 회원들의 집에는 십여 권의 책들이 배달된다. 아이들은 묵직하고 큰 상자가 배달오니 자신들의 장난감이나 동화책일 줄 알고 처음에는 좋아하지만, 상자를 열고 어려운 책들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실망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엄마가 이렇게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는 사람이야’하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또 엄마가 책을 읽으면 옆에 자연스럽게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이 모임을 통해 바쁜 일상 속에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분들과 여성, 그리고 보살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차 마시는 시간이 행복했어요. 특히 우리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육아서가 아닌 다양한 책들을 접하며,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와 아이 돌봄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경험들을 함께 공유하니, 마음이 더욱더 풍요로워지는 것도 참 의미 있었어요.”
“어느 엄마나 마찬가지겠지만 첫 아이를 기르는 직장맘에게 육아는 하루하루가 도전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힘들고 외로웠던 적이 많았어요. 그런 저에게 이 모임은 무엇보다 제 마음을 위로해주고 돌봐주었고, 저는 용기를 얻었어요. 작은 생각들이 모여 큰 힘을 내듯, 이런 모임들이 활성화되어 더 많은 아이가 미래에 바람직한 돌봄을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육아는 육아, 인문학은 인문학, 별도라고 생각해왔어요. 이 모임이 육아와 인문학 사이에 접점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줬어요. 이 접점은 육아로 인해 나 자신이 소모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따뜻한 위로가 되어줘요. 육아는 나 자신을 방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저를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이 모임이 정말 좋아요.”
많은 사람은 살아가며 누군가를 혹은 어떤 것을 돌보게 될 것이다. 또는 이미 돌보는 중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쩌면 ‘돌봄’이라는 행위는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며, 인간이라면 필수적으로 겸비해야 하는 덕목이 ‘돌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돌봄인문학’의 엄마들은 ‘돌봄’이 더는 사회에서 괄시 되고 멸시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그 의미를 모두가 되새겨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들의 독서 모임은 사회변화의 신호탄이며,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아이들이 더욱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의 시작점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서초동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작성자: 청년취재단 정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