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신앙이 지배한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쇼펜하우어는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와 같은 사람들은 역사의 진보를 믿으면서 역사에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고 보았지만,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역사에는 아무런 목표도 의미도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허덕거리는 인간들 간의 무의미한 투쟁과 갈등뿐이다. 인류의 역사는 외면적인 형태는 바뀔지 몰라도 삶의 이러한 진실이 영원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순환과정일 뿐이다.
― 박찬국,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21세기북스2016, 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