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은, 전통 문화에서는 임금 노동만큼이나 주변적이며 확인하기가 어렵지만, 산업사회에서는 관행으로 여길 만큼 흔한 일이다. 하지만 완곡어법 때문에 뚜렷한 형체를 잡기가 어렵다. 강력한 금기가 그것들을 하나의 통일된 실체로 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의 필요성과 범위,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산업 생산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산업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감춰져 있다. 이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모든 활동 ― 주로 사회적 수단을 통해 강요된다 ― 은 노동이라기보다는 필요 충족 행위로 간주된다.
(중략)
임금 노동을 하려면 그 일에 지원을 하거나 자격을 인정받아야 하지만, 그림자 노동은 나면서부터 정해지거나 부여되는 것이다. 임금 노동을 하려면 발탁되어야 하지만, 그림자 노동은 배정받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 노고, 수모에 대해서는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림자 노동은 이런 무보수의 자기 규율성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임금 노동보다 더 중요성을 띠게 된다.
선진 산업경제에서 이런 무보수 노동은 경제 성장에 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가장 만연해 있으면서도 가장 문제시되지 않는 억압적 차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림자 노동은 이름도 없고 연구되지도 않은 채로 모든 산업사회에서 대다수 사람을 차별하는 주된 영역이 되었다. 더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오늘날 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그림자 노동의 양은 차별을 판단하는 데 있어 직업상의 불평등보다 훨씬 더 정확한 기준을 제공한다. 나아가 생산성 향상에 따른 실업의 확대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을 그림자 노동에 편입시켜야 할 필요성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여가의 시대’, ‘자조의 시대’, ‘서비스 경제’ 등은 커져가는 이 유령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들이다. 그림자 노동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임금 노동과 나란히 발전해온 그림자 노동의 역사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 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 사월의책2015, 177~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