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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머리 위로
떨어질 때
평소와 다를 게 없었던 중생대 백악기의 어느 날이었다. 어쩌면 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 지구에는 식물이 번성했다. 동시에 크기도, 형태도 다채로운 파충류의 일족인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파충류 가운데는 아주 작은 것도 있었지만, 육지를 지배하던 공룡과 하늘을 장악하던 익룡에 비하면 굳이 말할 필요까지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황은 곧 뒤바뀔 운명이었다.
며칠 전부터 하늘에 새로운 ‘별’이 나타나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불행히도 지금 우리가 아는 한, 그 새로운 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수준을 갖춘 생명체는 지구에 없었다. 그런 생물이 살았다고 해도 그 별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못했으리라. 하늘에 나타난 그 별은 거대한 소행성이었으며, 지구와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아니면 혜성이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확실하게 아는 게 없다.
그 순간 공룡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마지막 순간에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다. 도망을 쳤다거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을 거라는 상상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우리가 아는 것은 지름이 10~14킬로미터인 천체가 지구 충돌 경로에 진입해 멕시코에서 수역이 낮았던 유카탄반도에 충돌했다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지구에서 제일 높은 약 8.8킬로미터의 에베레스트산보다 길다. 이 천체가 지구에 충돌할 당시 시간당 약 7만 2,000킬로미터의 속도였던지라 파괴력은 대단했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약 400킬로미터 상공에서 우리 머리 위로 시간당 2만 8,000킬로미터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 충돌로 방출된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3,000배나 강력한 수소폭탄인 차르봄바Tsar Bomba보다도 수백만 배 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차르봄바는 지금까지 시험한 가장 강력한 핵폭탄이다.
이때 생긴 충돌구는 지름 200킬로미터에 깊이는 20킬로미터다. 충돌 지점에 있던 물은 증발됐고 암석까지 녹았으며, 2만 5,000톤의 잔해가 대기 중으로 튀어나갔다. 그중 일부는 지구 중력을 벗어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튕겨나가 화성과 목성, 토성의 위성을 포함한 태양계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당시에 만들어진 충격파는 지구 대기와 바다를 통과해 수천 킬로미터의 지역을 파괴했고, 파괴 반경 안에 들어간 모든 생명체를 금세 불태워버렸다. 동시에 수백 미터 높이의 파도가 만들어졌으며,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나 지구를 돌면서 모든 바다를 뒤덮었다. 육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강도가 무려 10에서 11에 달하는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다. 충돌로 발생한 에너지로 용융된 암석이 튀어올라 지구 상층 대기에서 텍타이트Tektite라는 구슬 같은 고체로 굳었다. 텍타이트는 다시 무시무시한 우박처럼 변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소행성은 충격으로 완전히 파괴됐고, 충돌로 인해 만들어진 잔해는 대기로 퍼져나가 지구 곳곳 구석구석까지 날아갔다. 처음에는 활활 타는 구름이 충격이 발생한 북반구에서, 그다음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까지 불바다로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숲의 70퍼센트가 연기로 뒤덮였고, 대기 중에 잔해와 먼지가 점점 더 늘어났다고 추측한다.
그 이후에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몇 달 동안 먼지가 대기를 뒤덮었다. 핵폭탄 투하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세대임에도 왜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핵겨울’이라고 부르는 걸까? 소행성 충돌 직후 대기를 덮은 먼지는 햇빛을 막아 하늘이 어두워졌고, 그 결과 식물의 광합성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식물은 말라 죽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먹이사슬이 무너져버렸다. 그 시기에 생명체의 형태를 갖춘 것 중 75퍼센트가 멸종됐으며, 당시에 지구에 살던 거의 모든 생명체가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600만 년 전 어느 평화로운 날 일어난 일이다. 여러 과학자에 따르면 그때 공룡이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 사건은 다양한 크기의 전체가 지구와 충돌한 것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많이 연구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백악기 말에 대량 멸종을 일으킨 것이 이 사건 하나뿐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와 관련된 다른 자연현상과 여러 화산이 동시에 분출한 것 같은 다른 중요한 사건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이 충돌 사건을 시간에 따라 재구성한 시뮬레이션 말고도 당시에 일어난 일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증거가 발견됐다. 우리는 백악기 말에 일어난 충돌에 관해 꽤 많은 정보가 있다.
가장 유명한 초창기 증거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의 구삐오 인근 보타치오네Bottaccione 협곡에 있다. 이곳에는 눈으로 보이는 지층 사이에, 지구 표면에서 상당히 희귀한 광물인 이리듐Ir이 일반 지층보다 60배 더 많이 포함된 층이 있다. 이리듐은 소행성에 다량으로 존재하는 데다 그 지층은 정확히 백악기 멸종 시기와 일치한다. 이 지층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지구가 거대한 소행성과 충돌한 결과일 거라고 가정했다.
최근에 발견된 증거도 있다. 지난 2019년 10년 동안 진행한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미국 노스다코타주와 사우스다코타주, 몬태나주, 와이오밍주 사이에 있는 고생물학 유적인 헬 크락Hell Creek을 연구한 결과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그 운명의 날, 쓰나미에 휩쓸린 동물들의 잔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어류와 식물의 잔해와 함께 충격으로 만들어진 것이 확실한,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텍타이트와 아주 비슷한 것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네이처Nature》에는 그 운명의 날이 북반구의 어느 봄날에 일어났을 거라는, 사건을 재구성한 최근의 연구가 실렸다. 과학자들이 재난이 일어난 시점에 서식하던 물고기 화석을 분석해보니 그 사건이 일어난 계절이 봄이었다는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화석을 보면 뼈는 색깔이 다른 층을 이루는데, 짙은 색을 띠는 층은 봄과 여름에 나타난다.
우리는 결국 행성 재난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관해 꽤 많이 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런 사건이 지구 역사에서 단 한 번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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