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식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법
주변을 둘러보자. 봄이면 싱그러운 연둣빛을 자랑하던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다. 겨울이면 잎이 다 떨어지고, 잎이 없어 더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나뭇가지에는 다음 봄을 준비하는 잎눈이 돋아 있다. 콘크리트로 가득한 도시 서울에서 내가 계절을 깨닫는 방식은 은행나무와 그 주변의 식물들이었다. 영춘화로 시작해 개나리, 진달래, 철쭉, 라일락, 수국, 장미 등으로 이어지는 봄꽃의 향연은 봄과 여름을 이어주는 큰 즐거움이었다. 가을마다 색색으로 물드는 잎사귀들은 떠나며 추위를 몰고 왔지만, 그 추위 속에도 가지 위에 돋아난 잎눈과 꽃눈은 늘 희망찼다.
주변을 조금 더 자세히 둘러보면, 우리 생활에 식물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매일 먹는 밥과 반찬, 종이와 책들, 매일 입는 옷과 침구류까지, 모두 식물에서 나왔다. 심지어 우리는 수백만 년 전에 묻힌 식물의 잔재인 석유와 석탄까지 끌어내어 공장을 돌리고, 플라스틱 제품들을 만들고, 도로를 만드는 데 쓴다. 사실상 우리의 삶은 식물에 전부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식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식물이라는 우주》는 식물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번식하며, 끊임없이 침입을 시도하는 병원균을 어떻게 물리치고,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곳에서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과학자들이 생명현상을 유전자로 설명하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식물이 빛을 받을 때 필요한 유전자遺傳子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 유전자는 부모가 가진 특징을 물려주는 매개체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입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입자가 세포 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완두콩을 연구하던 멘델Gregor Mendel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표현형이 전달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바로 생물학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노란 완두콩과 초록 완두콩 실험이다. 노란색 콩이 열리는 완두와 초록색 콩이 열리는 완두를 교배하면 그 자손은 언제나 노란색을 띤다. 하지만 이 자손 완두콩을 심어 서로 교배하면 그다음 자손첫 노란 완두와 초록 완두의 손자은 정확히 3 대 1의 비율로 각각 노란색과 초록색을 띠게 된다. 이는 노란 완두콩과 초록 완두콩 유전자가 서로 섞이지 않고 독립된 인자로 존재함을 증명하는 실험이었다. 그는 1865년에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19세기 후반은 다윈의 진화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전heredity 이론이 등장하던 시기였지만, 그 가운데 멘델의 논문이 참고된 것은 없었다.
1900년, 휘호 더프리스Hugo de Vreis와 카를 코렌스Carl Correns, 그리고 에리히 폰 체르마크Erich von Tschermak가 멘델의 실험 결과를 재현한 논문을 몇 달 간격으로 연달아 출간했다. 이들은 모두 육종가였고, 멘델과 마찬가지로 식물을 이용해서 유전물질이 섞이지 않고 독립된 인자로서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재발견했다. 하지만 이들이 멘델의 연구를 참조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코렌스는 이미 1896년 멘델의 논문을 읽었고, 더프리스와 체르마크의 논문에도 실험 이전에 멘델의 논문을 읽은 흔적이 보인다.
더프리스는 다양한 식물의 잡종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 붉은 양귀비와 흰 양귀비를 교배하면 두 번째 세대에서 22.5퍼센트의 확률로 흰 양귀비가 나오는 현상을 관찰했다. 멘델의 결과와 동일했다. 그가 처음 논문을 냈을 때는 멘델의 논문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카를 코렌스가 완두콩과 옥수수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남을 발표한 논문을 낸다. 그는 1900년 더프리스의 논문에 멘델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본인이 재현한 실험 결과를 포함해 3 대 1의 법칙을 ‘멘델의 법칙’이라고 칭하며 논문을 발표했다.
그 뒤, 20세기 이후에는 세포 내 어떤 물질을 통해 유전이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발견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세포유전학을 통해 세포가 분열하면, 세포핵에 있는 염색체가 멘델의 대립인자와 똑같은 규칙을 통해 두 세포로 나뉘어 이동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어 토머스 모건의 팀이 초파리를 모델생물로 이용해 유전자가 염색체에 있음을 증명했다.
염색체는 단백질과 DNA의 혼합물이다. 이 가운데 단백질이 아니라 DNA가 유전을 매개한다. 그리고 1953년에는 DNA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DNA가 유전정보를 함유하고 있고 어떻게 정확히 똑같이 2개의 복제본을 만들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DNA의 정보가 어떻게 생명현상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DNA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에는 세포 내에서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정보가 있으며, 이 정보의 흐름은 DNA에서 단백질로, 한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이 가설은 중심이론Central Dogma이라고 불린다.
옥수수를 연구하던 바버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현미경을 이용해 세포분열 하는 옥수수 염색체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 변화가 옥수수의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보았다. 옥수수는 낟알마다 다른 대립인자 조합을 가져서 한 번에 많은 표현형을 관찰할 수 있다. 매클린톡은 옥수수 낟알 색깔을 관찰하면서 각각의 세포 내 염색체에 일어난 변화와 색깔의 변화를 대응시켜나갔다. 그러던 그녀는 염색체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혹은 다른 염색체로 ‘점프하는’ 유전자를 발견한다. 매클린톡은 이를 전위transposition 현상이라고 불렀다. DNA가 DNA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는 트랜스포존의 발견은 중심이론을 반박하는 증거였다.
이렇게 유전의 매개체로서 유전자가 염색체에 있고, 그 실체가 DNA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유전자의 정의가 많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현대 생물학의 흐름 또한 크게 바뀌었다. 유전자가 DNA에 포함된 정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DNA를 바꿔 돌연변이를 만드는 실험이 여러 생물을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이런 실험을 통해 유전자의 정의가 점점 세분화되어왔다. 그 결과 유전자는 ‘생명에 필요한 고분자에 관한 정보가 담긴 DNA 사슬의 서열’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정의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유전자’의 정의는 계속 진화 중이다.
돌연변이를 기반으로 생명현상을 역추적하여 연구하던 시대를 거쳐, 최근에는 그렇게 발굴된 유전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찾아가는 시스템생물학 연구로 발전하고 있다. 생물은 여러 개의 유전자가 동시에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개의 유전자를 동시에 관찰할 필요가 있다. 생물의 DNA에 포함된 모든 정보를 읽어내는 유전체학의 발달은 작디작은 박테리아 대장균 유전체부터 인간의 유전체까지 수많은 생물의 유전체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식물학 또한 분자생물학의 발전과 궤적을 함께하며 발전해왔다. 식물분자생물학은 전 세계 수만 명의 과학자들이 몰두하는 식물학의 대표적인 분야다. 1965년 서너 편에 지나지 않았던 애기장대 관련 논문은 2015년에 이르러 해마다 수천 편이 출간되었고, 1980년대 얼마 되지 않던 연구실 개수는 오늘날 셀 수 없이 많아졌다. 하지만 식물도 유전자의 상호작용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전자가 하나의 물리적인 단위일 수도 있다는 근거가 된 그레고르 멘델의 연구, 유전자가 움직일 수 있다는 바버라 매클린톡의 연구 등 생물학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여러 발견이 식물에서 이루어졌지만, 식물은 연구보다는 심미적인 대상으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동물과는 달리 움직이지 않으니까 평화로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식물은 동물과 달리 환경의 악조건을 피해 도망갈 수 없어 동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똑같은 햇빛을 쬐어도, 강한 햇빛은 피해야 하지만 약한 햇빛은 최대한 받아들여야 한다. 햇빛을 가리는 그늘이 생겼을 때, 이 그늘이 바로 옆에 자라는 식물 때문인지, 구름이 낀 것인지를 가늠하여 생장 방식을 바꿀지 구름이 걷힐 때까지 기다릴지 등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햇빛이라는 하나의 환경조건에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배아가 발달할 때부터 팔이 될 세포, 다리가 될 세포 등의 운명이 결정되는 동물과 달리, 식물은 모든 부분이 모든 부분으로 자라날 수 있다. 모든 세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줄기세포가 뿌리 끝과 줄기 끝에 있고, 줄기 끝에 있는 세포는 어떤 신호를 받느냐에 따라 잎이 될 수도, 줄기가 될 수도, 또 꽃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잎이나 뿌리를 잘라 영양배지에 키우면 그 잎이나 뿌리 또한 온전한 식물체로 자라날 수 있다. 어떤 신호가 잎으로 자랄 세포의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신호가 줄기 끝 세포를 잎으로 자라게 하거나 꽃으로 자라게 하는지, 그 세세한 내용이 식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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