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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대한 환상과 기대
책방은 다양한 테마로
나를 이끄는 공간이다
가까운 중대형서점에 들어가보면 참 다양한 책 코너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책을 주문했거나 꼭 필요한 책만 구입하러 갔다 하더라도 시간만 있다면 더 둘러보고 싶은 곳이 책방이다. 들어서는 순간 풍기는 종이 냄새는 그 어느 비싼 향수의 향기보다도 마음을 안정시킨다. 정리가 잘되고 분류가 잘되어 있는 대형서점 같은 경우는 코너마다 신간이 빨리 노출된다. 물론 주력하고 있는 출판사의 책이나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만 올라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중대형서점은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좋은 곳이다.
시집과 에세이 코너에 가면 마음을 파고드는 한 줄의 제목이 설레게도 하고 책을 열어보게도 한다. 에세이 코너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는 내용의 책과 중·노년의 쓸쓸함을 털어놓는 책이 눈에 띈다. 시집 코너에는 꾸준히 시집을 내는 시인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요즘은 인터넷으로 미리 시를 공개해 반응이 좋으면 나오는 시집도 있다. 또 오래도록 국민 시인으로 자리 잡은 윤동주, 김소월의 시집은 별도로 초판 디자인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소설 쪽으로 가면 문학의 세계로 빠져든다. 여행서는 떠나고 싶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어 좋고, 실용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중대형서점은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손님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다양한 테마로 사람들을 이끈다.
반면 동네책방은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색깔로 우리를 책 속으로 안내한다. 대개 책방 내부는 책방 주인과 잘 어울리는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신간 위주가 아니다. 구간이라도 그 지역이나 계절과 잘 어울리는 책들이 꽂혀 있어 숨은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게 된다. 중대형서점에서는 내가 이미 필요하다고 여기는 책을 찾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동네책방은 그곳에서 추천하는 책들이 뭘까 하는 기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더 신선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책을 추천받아 사게 되면 지적 호기심이 더 많이 생긴다. 책방 주인들이 읽어본 검증된 책들이 많고 설명을 들을 수 있기에 더 좋다.
출판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 형식의 책방도 있다. 이는 한 출판사의 책만으로 책방을 꾸릴 정도의 출간 종수 규모가 되는 출판사여야 가능한 일인데, 자신의 건물이 있는 출판사는 1층에 이런 장소를 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은 꼭 대형출판사가 아니더라도 북카페 겸 책방을 하는 곳이 늘어서 출판 경향과 색깔을 알 수 있다.
이런 책방은 그 출판사만이 지닌 고유의 색깔과 방향을 볼 수 있어 좋다. 다른 출판사 책은 거의 없기에 그동안 여러 출판사 책을 고루 볼 때 느끼기 어렵던 한 출판사만의 맛과 깊이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출판사의 맛이 궁금해질 때 들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방을 들러보는 재미가 느껴지면 책을 고르는 범위가 넓어지고 내 정신세계도 더 풍요로워진다. 책방에 거는 기대도 조금씩 커진다. 다시 그 책방을 방문했을 때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도 보고 싶고 추가로 서가에 꽂힌 책이 있는지 꼼꼼히 보게 될 것이다. 책방은 이제 필요한 책만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 개개인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만남의 장소
종로서적은 한때 우리나라 서점 규모 1위인 곳이었다. 대학생 시절 나는 사람들과 약속을 할 때 만남의 장소로 종로서적 2층 시집 코너를 자주 이용했다. 종로2가 보신각종이 있는 종각에 5층 건물로 우뚝 서 있던 종로서적은 비좁고 불편했지만 위치가 좋은 덕에 만남의 장소로 적당했다. 특히 시집 코너는 짧은 시간에 좋아하는 시인의 시도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종로서점 2층 시집 코너는 사람에 대한 추억과 책에 대한 추억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호응하지 못하고 95년의 역사를 갖고도 부도를 맞게 되었다.2002년 폐점 나처럼 그 장소를 책과 사람을 만나는 장소로 생각했던 전 종로서적 직원들이 후원을 받아 다시 되살리기도 했다.2016년 개장 그러나 그때 그 장소는 아니고 지하에 있는 서점으로 다양한 문구류와 팬시용품을 함께 판매하고, 지점도 운영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신촌역 앞에 잇는 홍익문고였다. 종로보다는 자주 가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만나기로 하고 미리 가서 사고 싶었던 책을 사가지고 나오곤 했다. 한때 이 지역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학생들과 주민들이 반대 서명 운동을 펼쳐서 겨우 살리는 등 풍파도 겪었지만, 지금은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
책이 있는 곳은 참 낭만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구입한 책에는 앞면에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구입했는지 손글씨로 적혀 있다.
자본력이 있어 위치가 좋은 대형서점은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고 여러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덕분에 볼 게 많아서 책을 꼭 사지 않아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더구나 앉을 수 있는 장소가 구석구석 많아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본다. 요즘은 문구, 팬시용품까지 있어서 참고서를 사러 간다거나 친구랑 아이쇼핑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책방을 하는 나로서는 대형서점이 들어온다면 경계해야 하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다양한 코너들이 있으니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가족들이 함께 가서 각자 자기 책을 골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시간 약속을 할 때 위치가 좋은 서점에서 만나기로 하면 조금 늦어도 책을 보면서 기다릴 수 있으니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된다.
대도시 좋은 위치에 있는 큰 서점과는 달리, 몇 년 전부터는 동네마다 작은 책방들이 생겨 다양한 볼거리·먹을거리가 늘고 있다.
위치도 불편하고 비좁을 수 있지만 동네책방에서의 경험은 대형서점과는 다르다. 친구한테 신선한 만남의 장소도 알려주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고 살 수 있는 책을 서로에게 선물한다면 그 장소는 더욱 빛날 것이다.
예를 들면, 통영 책방에서 친구를 만난다고 해보자. 통영 친구가 나에게 그곳 출신의 작곡가 윤이상이나 백석 시인, 유치환 시인에 관한 책을 선물해 주면 추억은 더 오래 남게 된다. 요즘은 독립출판과 동네책방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어서 특정 동네책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귀본이 있다.
범위를 좀 더 넓힌다면, 다락방이나 게스트룸이 있어 북스테이가 가능한 동네책방에서의 만남도 꿈꿀 수 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여행하는 장소로 책방을 선택한다면 친구와 색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다. 간단한 간식과 차도 준비하고 책방에서 만나 그동안 사고 싶고 읽고 싶었던 책을 골라보자. 책 이야기도 하고 서로 살아온 이야기도 하면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책방 운영자와 아침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면 더욱 뜻깊은 만남이 될 테다. 책방 운영자와 친해지면 친구와 함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도 부탁해 보자. 그렇게 되면 다음에 다른 친구를 그 동네책방에서 만나더라도 낯설지 않고 재방문의 여유도 가지게 된다.
좋은 커피와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만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책이 있는 곳도 근사한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책방은 운영자의
마음이 보이는 곳
책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책을 좋아하여 책방에 계속 드나들다가 그 공간의 매력에 빠져 직접 책방을 차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방을 열기까지 책과의 인연이 있었기에 책방 운영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내 경우는 어린이책을 계속 봐야 했다. 그런데 인터넷이 없던 시절 동네책방에서나 중대형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어린이책이 있어서 아예 어린이·청소년 책방을 열게 되었다. 당시에 어린이책 출판사들은 어린이 책방만 유통을 했는데, 책방 운영자가 되면 좋은 어린이책을 도매상을 통해 하루만에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책방을 차릴 결심을 했다.
남편과 6개월간 전국 책방들을 둘러보고 다녔다. 책방은 위치가 참 제각각이었는데, 위치가 좋더라도 서가에 꽂힌 책이 알차지 못하면 참고서나 사러 가는 우리 동네 서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반면 위치가 안 좋아도 책방이 갖춘 목록이 알차면 다음에도 또 들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책방 운영자의 철학이 담긴 곳이 책방이라는 공간인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책방 이름이다. 강화도에 있는 책방 ‘국자와 주걱’은 김현숙 대표가 운영하는 북스테이 책방으로, 음식을 나누는 국자와 주걱처럼 책과 마음을 나눈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와서 쉬면서 책을 보는 편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책방지기의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한다.
소박하면서도 부르기 좋은 정겨운 이름이 있는가 하면, 좀 근사해 보이는 외국어나 외래어에서 이름을 따와 그 뜻을 꼭 물어보게 하는 책방도 있다. 전국 책방 이름들을 보면 책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 많다. 이름마다 운영자의 성향이 보여 특색이 있다.
간판이나 입구도 운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작게 팻말 정도로 책방 이름을 써놓은 곳도 있고, 어떤 운영자는 크게 알리고 싶어 잘 보이도록 간판을 달고 안내 문구까지 설치해 놓기도 한다.
위치가 주는 매력도 다 달랐다. 지하인 경우는 빛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입구부터 아늑한 느낌이 있고 아지트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햇빛에 책이 바랠 경우는 없으니 안심이 되지만, 환기에 신경 써야 하고 조명과 책장·동선이 고려되어야 불편함을 덜 느낄 수 있다.
1층에 위치한 책방은 거리에서 책방 안이 보이는 장점이 있다. 지나가는 길에 부담 없이 들르기 좋아 독자를 늘여나갈 수 있다. 거리 풍경과 잘 어울리게 창가와 입구에 책 홍보 문구와 포스터를 게시하고 커피나 음료까지 판매하는 책방이라면 그 어느 곳보다 경쟁력은 있을 것이다. 다만 햇빛에 책등이 변색될 수 있고 차도와 가까우면 소음 때문에 책에 집중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그래도 1층은 책방 운영자 입장에서는 가장 열고 싶은 층일 것이다.
그런데 1층에서는 사소한 듯하지만 신경 써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책방 청소와 서가 정리다. 특히 밖에서 보이는 유리창이나 엘리베이터, 출입문 앞 등은 자주 살펴보고 깨끗한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또 베스트셀러 코너나 작가별, 주제별 코너의 책들이 잘 배치되었는지 보고 늘 서가에 그 책들을 갖추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책방에는 분리수거가 되는 쓰레기통이 깨끗하게 비치되어 있어야 하고 정수기와 휴지가 잘 보이는 곳에 있어야 책방지기가 수시로 관리할 수 있다. 식물이나 키우는 동물이 있다면 물도 주고 사료도 따로 챙겨주면서 손님이 불편해 하지 않는 위치에 두는 것이 좋다.
책방지기는 신간과 구간을 구분해서 위치를 빨리 파악하고 되도록 책을 다 읽고 추천하면 더욱 좋다. 책방에서는 책 읽을 시간이 없기에 퇴근 후 고정적으로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해서 한 권씩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
책방이 2층 이상 올라가게 되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1층과는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조금 다르다. 책방이라는 생각보다는 도서관이나 북카페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나름 독자가 찾아 올라갈 때는 그만큼 그 공간과 그곳의 책이 궁금한 것이기 때문에 서가 관리를 더 고민해야 한다. 일단 올라가게 되면 창문이 있어 내려다보는 맛도 있을 것이고, 1층보다다는 소음이 덜해 조용할 것이다.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서 운영을 한다면 더 좋을 수도 있다. 1층은 책방과 카운터가 있고, 2층은 책을 구입하거나 사람만 만나러 가는 손님이 있을 것이다. 이때는 휠체어와 유아차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도 체크해 봐야 한다.
위치 선정이 끝나면 다음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책방 입구와 내부다.
나는 책방 운영자라 그런지 입구에 전시된 책 코너와 전체 동선을 비롯해 책장, 탁자, 카운터, 의자의 재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원목이나 철제, 아니면 벽돌과 나무판으로 만든 간이 책꽂이가 보이고 어떤 색인지 보게 된다.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로 내부를 장식하는 경우도 있고, 따뜻한 분위기에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운영자 취향이 반영될 수도 있다. 이때 조명의 형태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내부 분위기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공간 운영자의 마음도 보인다.
그런 다음 책방 운영자가 서가에 진열해 놓은 책들을 살펴보게 되는데 운영자의 마인드와 책방 큐레이션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책방 안팎에는 눈에 띄는 글귀들이 있을 것이다. 책방 안팎에는 눈에 띄는 글귀들이 있을 것이다. 책방 안내 글과 책 소개 글이 있기도 하고 재미있는 어록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기도 할 것이다. 그 책방만이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베스트셀러와 신간 코너, 스테디셀러나 주제별·작가별 소개 코너도 있을 것이다. 책방 주인이 마음껏 차린 부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그 덕에 새로운 책의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다. 주기적으로 드나들면 조금의 변화도 알아챌 수 있고 차나 식물·동물이 있다면 그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책방 운영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부지런해야 한다. 그러면 책방을 드나들면서 운영자의 정성과 손길을 책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공간 운영자가 책방에서 책으로, 차로, 소품으로, 우리에게 사계절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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