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세상을 위한 제언
저는 올해 서른세 살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책의 서문을 쓰는 나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지난 몇 년간 극적인 경험들을 하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으니까요. 하지만 제게 그런 운이 왔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나 같은 1980년대생도 역동성으로 인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더 늘어나도록,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태어난 후배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기도록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거대 정당 2개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마치 ‘정치적 내전’ 상태처럼 분열되어 있습니다. 2개 정파를 지지하는 덩어리들 내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분오열이 되어 있습니다.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 매체는 그런 이들에게 제각기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살 수 있는 정보를 알고리즘으로 배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문제이지만 미래가 더 걱정입니다.
지금까지는 한국 사회가 추격자였기 때문에 그래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선진국의 무엇과 무엇을 쫓아가야 했으니 거기에 깃발을 꽂으면 정치와 담론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해도 큰 폐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일관성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고속 추격자였던 시절에는 현실이 너무 빨리 변했기 때문에 일관성을 중시한 사람들이 금방 더 이상한 얘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정치인과 먹물의 시대 진단이 어제와 달라도 굳이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사실상 선진국에 대한 추격을 완료하고 추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각 선진국에서 우리보다 잘 작동하고 있는 부문을 참조하여 대안을 검토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이제 한국도 갖춰진 제도가 많기 때문에 단지 그것을 복사해서 붙여놓는 것만으로는 예전만큼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태도를 견지한다면 예전에 없었던 파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사회비평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역량 자체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짧게나마 정치권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대단한 한국 사회의 역량을 정치권과 담론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습니다. 저희의 생각을 ‘맹목적인 낙관론’과 구별하기 위해 ‘현명한 낙관론’이라 칭해도 좋겠습니다. 낙관론이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비관론이 ‘선진국의 이상형과 한국 사회의 모자람을 대비해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웃자란 한국 사회는 이제 그런 식으로 진단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어떤 방식으로 자라났는지, 성과를 먼저 진단하고 본인의 체형과 체질에 걸맞은 해법을 도출해내야 합니다.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문제가 된 의료정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족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직도 보수는 ‘미국식 영리의료’를 도입해서 해결하자고 하고, 진보는 ‘유럽식 주치의제’를 도입해서 해결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체계는 나름대로 발달한 방식으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객관적으로 자긍심이 상승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그러한 분위기가 체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코로나19로 인해 내수경제에 큰 어려움이 있고, 정치적 갈등도 극심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결국 한국 사회에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서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은 기본적으로 모든 문제의 책임을 상대 당파에 떠넘기는 것인데, 최근에는 도가 지나친 듯합니다. 비판자들은 전 지구적 현상이라 볼 수 있는 뉴미디어 문제와 양극화 문제 등을 특정 당파와 특정 세대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런 작업에도 일말의 의미는 있겠으나 한국 사회의 전망을 제시하는 문제에서 충분한 비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정국은 어떤 의미에선 1980년대 초반을 연상케 합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암울한 군부독재 시기가 연장됐다는 점과는 별도로 경제성장의 측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사회운동 세력은 ‘외채망국론’이라 하여 한국 경제가 한순간에 주저앉게 되는 시나리오를 학습했습니다. 생활인들은 그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불안해했습니다. 8퍼센트의 성장률이 발표되어도 정부의 통계가 왜곡됐을 거라고 의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회 일각에서 ‘망국론’과 ‘민주주의의 죽음’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1980년대의 사회운동 세력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믿지 못했던 것처럼, 2020년의 보수파 일각에선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의 성숙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방역정책과 독감백신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신뢰가 없어 음모론이 횡행합니다. 저희는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담론적 비관론은 ‘성장통’도 아니며 ‘너무 급속히 성장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문화지체’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이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적어도 이 ‘문화지체’는 벗어던져야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비평이 가능할 것입니다.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롤로그: 열등감 이후의 한국 사회,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는 한국 사회가 선진국에도 눌리지 않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조망하고, 기존의 정치적 내전을 극복하는 ‘80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았습니다.
〈1장 포퓰리즘과 피드백 사회: 한국 사회의 독특한 진화 방식〉은 한국에서는 거의 정치적 욕설처럼 사용되고 있는 포퓰리즘이 엘리트 정치보다 잘 기능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은 상위 1퍼센트, 유럽과 일본은 상위 10퍼센트가 닥월한 역량을 발휘하는데, 한국은 그 아래 중간층의 역량이 탁월하기에 그들에게 키를 맡겨야 한다는 한윤형 작가의 통찰을 살펴볼 것입니다. 거기에 한국 사회의 특성을 ‘피드백 사회’로 파악한 양승훈 교수의 통찰을 덧대어, 한국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의 핵심을 다른 방식으로 파악하고, 이것이 ‘책임 있는 포퓰리즘’의 조건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가 드러나고 포개졌습니다.
〈2장 중도파의 나라: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 속에 가려졌던 것〉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사건들을 관통하면서 그 사건들을 가능하게 한 잊혀진 주체를 탐색합니다. 임경빈 작가와 한윤형 작가가 공들여 만들었습니다.
〈3장 뉴라이트: 역사의 백년전쟁과 자학사관〉은 뉴라이트뿐 아니라 인터넷 일각의 역사적 혐한 정서까지 함께 다뤘습니다. 뉴라이트 관련해서 한윤형 작가가 그간 축적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김시우 크리에이터와 협력해서 만들었습니다.
〈4장 뉴노멀: 한국의 청년세대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는 양승훈 교수가 총괄 작업한 온라인 여론조사 작업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일반적인 정치 성향의 여론조사와는 매우 다른 방식의 문항 설계를 하고 답을 받은 결과물입니다. 읽어보시면 통념과는 다른 결과에 놀라실 겁니다.
〈보론: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는 한국 사회와 청년세대가 당면한 크나큰 문제인 저출산 문제에 관한 짧은 논의를 담았습니다. 백승호 작가와 임경빈 작가의 통찰을 중심으로 작업했습니다.
〈5장 ‘86’세대 전쟁: 기득권 규탄을 넘어서]〉에는 저희 팀의 오랜 토의 결과가 집약되어 있으며, 저 역시 정치권에서 겪은 것들을 나누면서 참여했습니다. 세대론을 기득권 타파론으로 봐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공로를 동시에 인정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퇴장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6장 포스트코로나 시대: 추격의 시대에서 추월의 시대로〉는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팀이 작년 12월 말부터 유튜브 세상에서 분투한 코로나19 관련 콘텐츠들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133개국 중국인 입국 금지’라는 기사가 ‘가짜 뉴스’였다는 사실을 지적해낸 임경빈 작가의 작업을 포함하여, 너무 숨 가쁘게 지나쳐서 이제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국면국면의 긴장감과 한국 방역 당국의 성과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7장 ‘선망국’의 역설: 한국, 매를 먼저 맞고 미래로 가다〉는 백승호 작가가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시절 작성한 기사를 토대로 하여, 양승훈 교수의 산업정채에 대한 논평을 추가해서 만들었습니다. ‘선망국’이라는 단어는 인류학자 조한혜정 선생님이 제시한 개념입니다. 이 책에서는 한국 사회가 변화의 조류를 먼저 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여타 선진국들보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활용했습니다.
〈8장 공정의 재정의: 공채공화국을 타파하라〉는 말 그대로 공채 영역을 줄여나가는 것이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구조개혁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역시 저희 팀의 오랜 토의 결과의 집약이며, 특히 백승호 작가가 노래처럼 부르던 제안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진보파의 해법과 ‘시험선발의 능력주의’라는 보수파의 해법을 넘어서자는 주장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지를 직접 평가해주십시오.
〈9장 기적의 재구성: 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양승훈 교수와 한윤형 작가가 함께 작업하면서 한국 산업화의 성공 원인을 특정 인물, 시기, 세대에 국한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탐색해보려고 한 결과물입니다. 선행 연구들을 조합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조합은 흔치 않은 것입니다.
〈10장 한국은 아직도 약소국인가?〉에서는 한윤형 작가가 조금 욕심을 부려 한국의 전근대사까지 동원해서 분석해 한국의 문화적 특질이 어떻게 현대사회에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적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중 대결 시대라는 한국으로서는 고통스러운 위기의 국면이, 역설적으로 ‘북한의 친미국가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아갔습니다.
〈에필로그: ‘단순한 비관론’에서 ‘현명한 낙관론’으로〉는 이 책에서 보여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를 ‘현명한 낙관론’이라는 말로 정리하였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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