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머리부터……
1
어젯밤 발카르카의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비로소 나는 내 가족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실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점점 커 가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정확하지 않은 믿음들과 잡스러운 독서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지만 언제나 나는 혼자였으며 믿고 의지할 부모도, 인생의 답을 내려 주는 신도 내 곁에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어제 화요일 밤에 달마우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맞으며 나는 이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행복과 불행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 그저 나에게 달려 있었다. 이를 깨닫는 데 무려 육십 년이나 걸리다니. 나는 버림받았고, 고독하고, 당신을 너무나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당신은 나의 정신적인 지주다.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표류하지 않기 위해 떠내려가는 뗏목을 억지로 붙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 몇몇 징후가 벌써 눈에 띄기 시작했지만 나는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는 믿음도, 성직자도, 합의된 규율들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늙어 버렸고, 낫을 든 사신이 따라오라고 손짓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검은 비숍을 움직였고, 정중한 몸짓으로 게임을 계속하자고 재촉하는 중이다. 나에게 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내 일은 아니기에 나는 무엇을 움직일 수 있을지 살핀다. 내 마지막 기회라고 할 이 원고 앞에 나는 홀로 섰다.
나를 무턱대고 믿지는 말기를. 단 한 명의 독자만을 염두에 두고 쓰인 기록물은 거짓으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다만 언제나 네 발로 안전하게 착지하는 고양이처럼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나는 항상 그래 왔고, 더할 때도 있었다. 당신에게 진작에 말했어야 하는데.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고, 지금은 대체 어디부터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것은 그 비탄에 빠진 남자가 500년 전 성 페레 델 부르갈 수도원에 입회를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거나 수도원장 조제프 데 산바르토메우가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 좀 힘드니까 훨씬 나중의 일부터 이야기하겠다. 훨씬 나중.
“네 아버지는…… 그러니까 아들아, 아버지는…….”
아니, 아니다. 여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재에서, 당신의 눈부신 초상화 앞에서 시작하는 게 낫겠다. 이 서재로 말하자면 나의 세계이자 인생이며, 내 모든 것이 담긴 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사랑만 빼고 말이다. 가을과 겨울 동안 동상에 걸린 손을 하고서, 혹은 반바지를 입고서 집 안을 뛰어다녔을 때 나는 이곳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몰래 숨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서재의 구석구석을 꿰고 있었고, 몇 년 동안 소파 뒤쪽에 비밀스러운 요새를 만들어 두었었다. 작은 롤라가 걸레질을 할 때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공간을 해체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정당한 이유로 들어갈 적에도 아버지가 베를린의 한 허름한 가게에서 발견한 최근의 문서들을 보여 주었을 때 손을 뒤로 숨긴 채 방문객 행세를 해야 했다. 이것 봐,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조심하고. 잔소리하기 싫으니까. 그러면 아드리아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 문서를 유심히 들여다보곤 했다.
“독일어로 쓰인 거죠?” 무의식적인 것처럼 손을 내밀며 물었다.
“어이! 손가락을 어디다 두는 거야!” 그의 손을 때리며 말했다. “뭐가 궁금하다고?”
“독일어로 쓰인 거 맞죠?” 아픈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그래.”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요.”
펠릭스 아르데볼은 자긍심이 가득 찬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 곧 배우게 될 거다, 아들아.
사실은 어떤 원고가 아니라 다 해어진 고문서 뭉치였다. 첫 번째 장에는 고문체로 ‘촛대의 전설’이라고 쓰여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누구예요?”
아버지는 손에 돋보기를 들고 첫 번째 문단 가장자리에 적힌 메모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들아, 작가란다. 이렇게 말하는 대신에 십 년 전인가 십이 년 전인가 브라질에서 자살한 어떤 남자야. 그 후 오랫동안 슈테판 츠바이크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십 년 전인지 십이 년 전인지 브라질에서 자살한 남자라는 사실뿐이었다. 그 원고를 읽게 되었을 때서야 비로소 그가 누군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서재 방문을 마친 아드리아는 나올 때 조금도 소리를 내지 말아야 했다. 아버지가 돋보기로 고문서들을 검토하거나, 그러지 않을 때는 중세의 지도 묶음을 살펴보거나 언제나 손가락에 전율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골몰해 있었기 때문에 집 안에서는 절대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를 내거나 재잘거려서는 안 되었다. 허용되는 소리는 오로지 ― 그것도 내 방에서 ― 바이올린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활 긋기 연습 교본』의 13번 아르페지오만 하루 종일 연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책 때문에 트루욜스를 정말 싫어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바이올린이 지겹지는 않았다. 사실 트루욜스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좀 짜증 날 뿐이었고, 특히 13번을 연주하게 할 때면 더욱 그랬다.
“네가 지겨워할까 봐 그러는 거야.”
“이 부분을 한번 해 보렴.” 활 끝으로 악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기법은 이 페이지에 다 모여 있어. 굉장한 연습 곡목이지.”
“하지만 저는…….”
“금요일까지 13번을 완벽하게 해 오도록. 27번 마디를 포함해서 말이야.”
가끔 트루욜스는 정말 미련스러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성격이 그렇게 모나지 않았다. 어떨 때는 더없이 친절했다.
베르나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내가 『활 긋기 연습 교본』에 매진하고 있을 때는 베르나트를 몰랐다. 그러나 트루욜스에 관한 한 같은 생각이었다. 물론 역사책에 등장하는 연주자가 아니지만 내 생각에 훌륭한 스승이 틀림없었다. 아, 좀 더 차분히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할 모양이다. 지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물론 당신에 관한 이야기라면 당신이 잘 아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분명히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영혼의 어떤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한들 한 사람을 완전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가게의 외관은 훌륭했다. 그러나 나는 집의 서재만큼 가게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게를 들를 때면 누군가가 나를 감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갈 때마다 눈부시게 예쁜 세실리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진작에 사랑에 빠졌었다. 그녀는 혜성처럼 빛나는 금발에 늘 단정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톰한 입술은 약간 달아오른 붉은색을 띠었다. 카탈로그와 가격표를 정리하고 상품 태그를 붙이느라 항상 바빴다. 얼마 안 되는 손님을 맞이할 때 언제나 미소를 지었고, 그때 보이는 치아가 정말 가지런했다.
“혹시 악기가 있을까요?”
신사가 모자도 벗지 않고 말을 건넸다. 세실리아 앞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갖가지 조명, 샹들리에, 조각이 세밀한 체리나무 재질의 가구,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2인용 의자, 다양한 크기와 시대의 화병들……. 그는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조차 못했다.
“그렇게 많지 않지만 저를 따라오시면…….”
그렇게 많지 않은 악기란 바이올린 몇 점과 소리는 좋지 않지만 놀랍게도 끊어지지 않은 거트현이 붙은 비올라 한 점을 가리켰다. 찌그러진 튜바, 상태가 아주 좋은 플뤼겔호른, 그리고 그 작은 동네의 순찰관이 파네베조 숲이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동네 주민에게 알리기 위해 다급하게 불어 댔던 트럼펫도 하나 있었다. 파르다크의 주민들은 불과 얼마 전 화재로 고통받은 시로르, 산마르티노, 심지어 벨시노펜 사람들, 서기 1690년 발생한 대재앙의 우려할 만한 냄새를 이미 맡았을 모에나와 소라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는 이미 거의 대부분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았고 정체 모를 질병, 신을 믿지 않는 야만족이나 바다, 육지의 짐승, 세찬 눈보라 혹은 비바람만 아니면 서쪽으로 사라졌던 배들이 여전히 한밤중의 악몽에 시달리는 한층 수척하고 초췌하고 초점 없는 시선을 한 선원들을 싣고 동쪽으로 돌아오던 때였다. 서기 1690년 여름 잠에서 덜 깬 몇몇을 제외한 파르다크, 모에나, 시로르, 산마르티노의 주민들은 졸린 눈을 한 채 자신들의 삶을 집어삼키고 있는 재앙을 지켜보았다. 피해의 정도는 조금씩 달랐다.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위력적인 화마는 이미 질 좋은 나무의 상당 부분을 태워 버렸다. 마침 구세주처럼 내린 비 덕분에 불길이 사라졌을 때 무레다 데 파르다크의 넷째 아들이자 가장 수완이 좋은 자키암은 불이 휩쓸고 간 숲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불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 혹시라도 쓸 만한 나무 밑동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곰 협곡을 절반쯤 내려간 그는 용변을 보기 위해 숯덩이로 변해 버린 전나무 옆에 다리를 쭈그리고 앉았다. 그런데 그때 무언가를 발견하고 몸이 바짝 긴장했다. 좀약과 어떤 다른 물질의 냄새를 풍기는 천 조각이 송진을 잔뜩 머금은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망쳐 버린 불길에 타다 만 천 조각을 아주 조심스럽게 살살 풀어 헤쳤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그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송진에 전 나뭇조각을 감싸고 있던 가장자리가 굉장히 꾀죄죄한 누런색인 지저분한 녹색 천은 바로 모에나의 뚱보 불사니 브로치아가 즐겨 입던 몸에 딱 달라붙는 상의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타버린 옷 더미 두 개를 더 찾아냈을 때 그는 무레다 집안과 파르다크 마을 전체를 파멸시키고 말겠다던 악마 불사니의 협박이 실행에 옮겨진 사실을 알았다.
“불사니.”
“나는 개들하고 말을 섞지 않아.”
“불사니.”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그를 멈칫하게 했다. 불사니의 배는 몹시 튀어나와 만일 더 오래 살면서 충분히 먹어 댄다면 팔걸이로 쓰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윗옷은 어디다 두었지?”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인데?”
“어째서 그 딱 붙는 상의를 입고 다니지 않아? 보여 줘 봐.”
“꺼져. 네 운이 다했다 싶으니까 이제 모에나 사람들에게 함부로 굴려고? 그런 거야?” 증오에 차서 그의 눈을 가리켰다. “너에게 보여 줄 생각 없어. 그러니까 그만 꺼져, 해를 다 가리고 있잖아.”
무레다의 넷째 아들 자키암은 차가운 분노로 가득 차 나무껍질 벗기는 칼을 칼집에서 꺼내더니 마치 단풍나무 기둥인 양 모에나의 뚱보 불사니 브로치아의 배에 내리꽂았다. 불사니의 입이 벌어졌다. 눈은 아파서라기보다 파르다크가 꺼낸 빌어먹을 물건이 자신을 겨냥했다는 사실에 놀라 오렌지만하게 커졌다. 자키암 무레다가 칼을 다시 뽑자 끈적한 피가 부글부글 솟았다. 불사니는 상처를 입어 힘이 빠졌는지 의자에 주저앉았다.
자키암은 황량한 거리의 위아래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순진하게도 그는 파르다크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 내려왔다. 모에나의 마지막 집을 지났을 무렵 풍차 근처에 사는 곱사등이 여자가 젖은 옷을 입고서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자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나무 감별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으며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은 갑자기 뜻밖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비교적 잘 대처했다. 곧 산마르티노와 시로르에 사람을 보내 불사니가 악의를 품고 숲을 불태웠다는 사실을 증거를 대며 설명해 보였다. 그러나 모에나 사람들은 정상을 참작해 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키암 무레다의 죄를 끝까지 처벌하려 했다.
“아들아.” 노쇠한 무레다가 평소보다 무거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떠나거라.” 그는 파네베조의 나무를 만지며 삼십 년간 일하고 저축해 모은 금의 절반을 아들에게 내밀었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자키암의 모든 형제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다소 딱딱하게 말하기를 사랑하는 아들아, 아무리 네가 악기용 목재를 찾아내는 데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지만, 아들아, 이 저주받은 집안의 넷째 아들아, 우리가 절대 팔지 않을 가장 훌륭한 재질의 단풍나무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너의 목숨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앞에 닥쳐올 고난으로부터 너를 지킬 수 있는 길이야. 모에나의 불사니가 숲을 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는…….”
“어서 가거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벨시노펜 쪽으로 가거라. 아마 시로르에서 너를 찾을 게다. 네가 시로르나 토나디크로 간 것처럼 소문을 내마. 이 계곡에 머무르기에는 위험이 너무나 커. 아주 긴 여행을 해야 할 거야. 아주 긴. 파르다크로부터 아주 멀리 가야 한다. 떠나거라, 아들아. 신이 보살펴주실 거다.”
“아버지, 떠나고 싶지 않아요. 숲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숲이 모두 불타 버렸잖니. 그런데 무슨 일을 하겠다는 말이냐?”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곡 밖의 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밤 떠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죽일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아버지…….”
“모에나의 그 누구도 내 아들한테 손대지 못할 거다.”
자키암은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모든 형제들의 볼에 작별의 입맞춤을 했다. 아그노, 옌, 막스와 그 아내들에게도 인사했다. 에르메스, 조세프, 테오도르, 미쿠라. 일세, 에리카와 그 남편들. 카타리나, 마틸데, 그레헨, 베티나한테도. 떠나는 그에게 조용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그리고 그가 문에 다가섰을 때 어린 베티나가 불렀다. 자키암. 그는 뒤돌아서 베티나가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동생의 손에는 어머니가 죽기 전 건넨 성 마리아 다이 시우프 데 파르다크의 목걸이가 늘어져 있었다. 자키암은 말없이 형제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린 베티나에게 다가가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베티나, 내 사랑스러운 막내, 죽을 때까지 이 보물을 간직하마. 그 말대로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베티나는 울지 않고 두 손으로 자키암의 양 볼을 쓰다듬었다. 자키암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집을 나섰다. 그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짧은 기도를 올리고 끝없는 눈보라를 향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삶을 바꾸고 그의 역사와 기억을 바꾸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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