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인포데믹 시대에 북한 뉴스 읽기
전 세계가 〈가짜 뉴스fake news〉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허위 왜곡 정보가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 일어났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말, 그해를 대표하는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탈脫진실 현상은 사람들이 판단을 할 때 객관적 사실이나 분명한 증거를 중요하게 여기기보다 주장이나 의견에 좌우되는 현상을 말한다. 탈진실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탈진실 현상〉이 반짝하고 사라지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니라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오히려 폐해가 커진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 사회도 허위 왜곡 정보의 폐해를 실감하고 있다. 2020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고 간 글로벌 감염증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는 가짜 뉴스의 위험을 일깨운 계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야외에선 감염되지 않는다〉, 〈소금물로 입을 소독하면 된다〉는 등의 갖가지 허위 정보로 인해 한국 사회는 큰 혼란과 많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허위 정보가 심각하다며 〈인포데믹infodemic〉을 경고했을 정도이다. 〈인포데믹〉은 〈정보〉를 의미하는 information과 〈전염병〉을 의미하는 epidemic이라는 두 단어를 합쳐서 만든 말로, 〈정보 전염병〉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거짓 정보가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져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감염원 차단과 개인위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동시에 미확인 정보와 황당한 거짓말이 난무하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피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와 싸워야 할 세계보건기구가 〈정보 전염병〉과 싸워야 한다고 경고에 나선 것이다.
정보화 세상은 〈탈진실의 시대〉가 되었고, 이런 정보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보 전염병과 싸워야 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정보화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학력 수준이 높아졌고, 누구나 모든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지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무슨 정보든지 미심쩍으면 그 자리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인데, 허위 왜곡 정보로 인한 피해는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일찍이 예상하지 못한 정보화 사회의 역설이다.
한국 사회에서 허위 왜곡 정보 사례와 그로 인한 피해가 유난히 많은 분야는 북한 관련 정보이다.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휴전 상대국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일반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지만 정보는 부족한 상태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북한 정보라고는 폐쇄적 사회인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정보가 대부분인 환경에서, 북한 사회의 감춰진 진실에 대한 정보 욕구는 매우 크다. 정보 수요는 있지만 믿을 만한 정보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은 신뢰성 낮은 정보가 유통되기 좋은 환경이다. 이것이 북한 관련 허위 정보와 오보가 난무하는 배경이 된다.
신문과 방송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언론들은 북한 보도와 관련해 유난히 신뢰성이 낮다. 언론사들이 여러 차례 〈특종 보도〉라면서 주요 정치 지도자의 처형과 숙청 사실을 자신 있게 보도했지만, 그 인물이 다시 살아난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두 언론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에 구조적인 요인이나 관행이 있음을 알려준다.
〈왜 북한을 대상으로 한 언론의 잦은 오보는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라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북한 관련 보도 분석과 대응책이 책의 핵심이지만, 북한 관련 오보가 오늘날 디지털 정보 사회와 관련이 깊다는 인식과 진단은 정보화 사회에서의 가짜 뉴스 현상으로 문제의식을 확장시킨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북한 대상 오보와 허위 정보의 사례 및 유형,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 현상을 다룬다. 2장에서는 왜 북한 대상 오보가 발생하는지, 그 원인 되는 구조적 요인들과 언론계의 보도 관행 및 배경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인포데믹 환경에서 이용자가 오보와 허위 왜곡 정보를 식별해 내는 방법을 전달한다. 4장에서는 북한 관련 오보가 단지 언론 보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허위 정보에 취약한 인간의 인지적 성향과 관련이 깊음을 논증한다.
이를 통해 북한 관련 오보와 허위 왜곡 정보를 식별하는 실질적인 팩트 체크사실 확인 방법을 확인하고, 나아가 디지털 정보 환경에서 비판적 사고력과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새로운 시민적 역량으로 요구되는 이유를 살펴본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지배적 미디어가 되고, 인터넷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무한한 정보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정보가 희소하던 시기에 형성된 인식 체계, 사고 구조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허위 왜곡 정보를 유통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현대인의 문화 지체 현상과 인지적 틈을 노려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 있다.
인터넷과 인공 지능 환경은 활자와 매스 미디어 시대의 문해력literacy과 다른 차원의 문해력을 요구한다. 디지털 미디어의 구조와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주체는 기본적으로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정보의 속성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을 갖추고, 지능 정보 사회의 정보 유통 구조와 영향력을 악의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집단이다. 이에 비해 가짜 뉴스를 소비하고 영향을 받는 집단은 정보 기술과 소셜 미디어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낮은 디지털 리터러시 취약층이다.
북한 관련 오보에 빠지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관심은 많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고 검증할 방법이 부족할 때 헛소문을 퍼뜨리고,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한 간 평화 공존과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북한 관련 보도도 사실 확인을 중시하는 보도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부디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디지털 정보 사회에서는 허위 왜곡 정보를 식별해 내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음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2020년 12월
구본권
1장
북한 보도의 현실
1
북한 관련 다양한 가짜 뉴스와 오보
주요 오보의 사례
2020년 4월 중순부터 보름 가까이 한국 사회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건강 이상설〉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다. 처음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대북 소식통〉의 전언 형태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긴급 수술설이 보도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탈북자 출신 정치인들의 사실 확인성 발언이 이어지고, 이내 사망설로 둔갑해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건강 이상설〉은 2020년 5월 2일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이하 조선중앙 TV이 순천린(인) 비료 공장 준공식 현장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영상을 15분간 방영하면서 반전을 맞았다. 그동안 한국 언론들의 수많은 추측성 보도가 근거 없는 가짜 뉴스와 오보로 확인되며, 〈북한 보도 오보의 역사〉에 또 한 건의 부끄러운 기록을 보태고 마무리되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안위를 둘러싸고 열흘 가까이 진행된 루머와 오보, 가짜 뉴스는 어떻게 온 나라를 흔들었을까.
〈김정은 건강 이상설〉 오보의 전개 과정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김 위원장이 4월 15일, 조부인 김일성 주석의 생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이 포착되지 않은 데서 시작되었다. 김 위원장이 2012년 집권 이후 김 주석 생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에 대해 여러 관측이 나왔다. 통일부는 이틀 뒤인 4월 17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참배) 관련 보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의도를 예단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만 밝혔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불거진 것은 ○○연구소가 4월 17일 오후 언론에 보낸 분석 자료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나 신변에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면서부터이다. 국내 일부 매체들이 ○○연구소의 주장을 보도하면서 신변 이상설이 증폭되었다.
〈김 위원장 신변 이상설〉은 며칠 뒤 국내 모 언론이 4월 20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취재원으로, 〈김 위원장이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의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향산특각에서 치료 중〉이라고 구체적 정보를 담아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요 뉴스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국내 일부 매체는 해당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4월 21일 자 지면에 〈김정은 위원장 수술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북한 전문가의 추정 ⇒ 대북 소식통을 통한 인터넷 언론 보도 ⇒ 신문·방송 등 주요 언론 보도〉 순서로 국내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던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4월 21일에 미국 ○○언론이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 위중설〉을 보도하면서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주요 뉴스로 확산되었다.
4월 22일에 일본 언론들도 소식통을 인용해 〈작년 말 김여정 대행설〉 등을 보도하며 해당 언론 보도에 신빙성을 보탰다. 일본 언론은 〈(한미일 협의 소식통을 인용해) 북, 작년 말부터 긴급 상황 발생 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최고 지도자 권한을 대행하는 준비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언론들이 김정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을 확정적으로 보도하는 것과 달리, 각국 정부는 미확인 사실에 대해서 신중한 태도를 취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일본 정부는 4월 21일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의 정례 기자 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 관련 보도 내용을 알고 있으며, 평소 북한을 둘러싼 동향에 관심을 갖고 정보 수집 분석에 힘쓰고 있다〉고만 밝힌 채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날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 중태설에 대해 출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북한과 소통하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관계자도 로이터 통신에 김 위원장 중태설을 부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 중태설과 관련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이어 갔다. 4월 21일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안위에 대해) 〈우리는 모른다〉, 〈나는 그가 잘 있기를 바란다〉고 발언했고, 22일에는 〈해당 보도는 부정확한 허위 보도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에 〈나는 김 위원장이 어떻게 지내는지 비교적 알고 있다〉,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여러분은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라고 미묘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일에도 〈김 위원장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할 말이 있을 것〉이라며, 〈아직은 김 위원장의 건강 등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해 자신은 뭔가를 알고 있지만 현재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발언했다.
한편, 한국 정부 당국의 발언은 일관되었다. 청와대는 김정은 위원장 신변 이상설이 제기된 시점인 4월 21일에 〈특이한 동향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고, 4월 23일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개최 뒤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통일부 장관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답변하고 언론과 인터뷰할 때도 〈특이점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되게 대응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와 관련해 가장 풍부한 정보와 분석 능력을 지닌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정부는 김정은 건강 이상설에 대해 유보적이고 전략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한편, 4월 21일경 소셜 미디어에서는 〈신문사에 북한 전문 소식통이 투고한 정보〉라는 제목으로 김 위원장의 뇌사설과 평양 계엄령 선포설을 담은 사설 정보지지라시가 유포되었다. 이 지라시는 2014년에 이미 한 차례 유포된 바 있는 허위 정보인데, 날짜와 서술만 현재형으로 바꿔 다시 만들어진 〈가짜 뉴스〉였다.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등에는 〈김정은 사망〉 조작 동영상도 만들어져 유포되었다.
4·15 총선 직후 유포되기 시작한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은 정치권 인사의 발언 등을 통해 증폭되었다. 4월 21일에는 〈김정은, 심혈관 질환 수술 맞는 듯〉이라고 신변 이상설이 공개적으로 제기되는가 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 서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는〉 거동 불가능 상태이며 〈심혈관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을 99퍼센트 확신한다〉고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가 하면, 〈후계 구도는 김여정 쪽으로 힘이 실릴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미국 ○○ 언론 보도에 이어 4월 25일 ○○ 통신이 〈북한 요청으로 중국 의학원 소속 인민해방군 301병원 등 50여 명의 의료진 등 급파〉 보도를 내보냈다. ○○ 통신을 인용한 국내외 언론들의 보도가 쏟아졌다.
한편, 미국의 한 북한 전문 분석 매체는 4월 26일 상업용 위성 사진 분석을 토대로, 김정은 위원장 전용 열차가 원산에 정차에 있는 것을 확인해 공표했다. 그동안 일부 언론이 제기해 온 〈코로나19 피신설〉에 무게가 실리는 팩트였다.
북 최고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확정적 뉴스로 보도되자 국내에 불안 심리가 커졌고, 금융 시장에도 충격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미국 ○○ 언론이 건강 이상설을 보도한 4월 21일, 국내 금융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안보 불안 심리가 금융 시장을 위축시킨 이날 한때 조합 주가지수는 3퍼센트 가까이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20원 가까이 급등하며 원화 가치가 추락했다.
숱한 의혹 보도의 대상이 되었지만 북한은 〈김정은 건강 이상설〉 보도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남한 언론과 일부 외신들의 보도가 쏟아졌지만 북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적인 국정을 수행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보도를 내보냈을 따름이다. 현지 방문과 사진을 통한 보도는 없었지만, 김정은 위원장 명의로 축전을 보내고 감사 편지가 전달되었다는 보도는 평상시처럼 이어졌다. 이는 1986년 11월 〈김일성 피격 사망설〉이 유포되었을 당시에 북한 당국이 보인 대응 방식과 유사한 장면이었다.
총살형당했다는 인물들 버젓이 공개 석상 등장
〈김정은 건강 이상설〉 이전에도 국내외 언론은 북한 주요 인사의 신변에 대해 숱한 오보를 해왔다. 공개 처형되었다고 보도된 인물이 〈부활〉해 버젓이 공개 석상에 등장하고, 숙청되었다는 당 간부가 변함없이 자리를 유지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북한 방송에 보도된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사회적 파장이 유난히 컸던 〈대형 오보〉들이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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