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노동’,
1분 1초까지 탈탈 털렸다
#애슐리
‘쨍그랑!’ 손가락 사이를 통과한 접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졌다. 4시간 내내 쉼 없이 빈 접시를 나른 팔목엔 힘이 없었다. 누군가 먹다 남긴 명란마요소스가 유니폼을 타고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아, 짜증 나.’ 한숨을 내쉬며 냅킨으로 바닥을 닦고 있는 내게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까이 오면 위험한데…’라고 생각하던 찰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안 돼, 가지 마~ 지지야 지지!” 손님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아이를 바라보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아니겠지. 내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보고 지지라고 했겠지.’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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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부터 3주간 나는 애슐리·파리바게뜨·이디야커피에서 각각 11시간, 15시간, 12시간씩 ‘초단시간 노동자’로 일했다. 초단시간 노동자란 1주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노동자로, 15시간 이상 36시간 미만을 일하는 일반 단시간 노동자와 구분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고용 동향’ 통계를 보면, 1시간 이상 17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 취업자는 2017년 136만 5000명으로 2016년(127만 3000명)에 견줘 7.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초단시간 노동자의 연평균 증가율이 9.2%로 나타났다. 일반 단시간 노동자(7.6%)나 전일제 노동자(2.2%)보다 증가폭이 컸다. 초단시간 노동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한국 노동시장의 한 축을 구성하는 셈이다.
하지만 초단시간 노동은 법과 제도 앞에서 ‘초단시간’만 도드라질 뿐, ‘노동’의 의미는 퇴색되어 초라하다. 주 15시간 미만 노동이 근로기준법이나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서 예외 사유로 분류되는 탓이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주휴수당이나 연차수당을 받지 못하고, 2년 넘게 일해도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 한국에서 가장 취약한 노동 집단, 청년·여성·노인층의 노동력은 이처럼 ‘노동인 듯 노동 아닌 노동 같은’ 초단시간 노동으로 부유한다.
월화수목금 2시간씩 일하실 분
초단시간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①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한다, ②근무 요일을 고르는 ‘상세 검색’ 칸에서 ‘주 2일’ 또는 ‘주 3일’을 선택한다, ③근무시간 중 ‘오전’ 또는 ‘저녁’을 선택한다. 검색 단추를 누르니 구인 공고 목록이 줄지어 나왔다.
구인 공고에는 ‘사장님’들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는 평일(주 5일) 오픈시간대(아침 7~9시, 주 10시간)에 일할 파트타이머를 구하고 있었다. ‘근로조건’에 명시된 조건들의 이유는 명확했다. “출근시간대 바리스타를 도와줄 보조 아르바이트생 구합니다.” 정확한 업무 범위 등을 지정하지 않고 바쁜 시간대 인력이 필요한 모든 업무에 투입하겠다는 뜻이었다.
제시된 노동시간 역시 의도가 명확했다. 주 2일(월, 화) 근무할 파트타이머를 구한다는 한 음식점의 근무시간은 오후 4시 40분부터 자정(7시간 20분)까지였다. 주당 노동시간 14시간 40분,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이다. 15시간 이상이면 의무 사항이 되는 ‘주휴수당’과 ‘4대보험 가입’(산재보험 제외)은 20분 차이로 의무에 없는 일이 됐다.
나는 프랜차이즈 중에서 ‘시장경제의 대세’를 골랐다. 베이커리·커피전문점의 경우 전국 매장 수 기준으로 파리바게뜨와 이디야커피가 부동의 1위인데, 일부 직영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점주가 운영하는 위탁 가맹점이었다. 위탁 가맹점에서는 점주가 직접 노동시간을 쪼개놓은 구인 공고를 내는 일이 많았다. 4월 11일 기준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 누리집에서 △서울 지역 △주 3일 △오전 파트타임(06~12시) 혹은 저녁 파트타임(18~24시) 조건으로 검색해보면, 초단시간 노동자를 구하는 이디야커피와 파리바게뜨 매장은 각각 40곳, 21곳에 달했다.
이랜드파크의 뷔페 브랜드인 ‘애슐리’는 2016년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아르바이트 노동자 4만 4360명의 임금 83억여 원을 체불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된 바 있다. 연차수당·야간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거나, 노동시간을 15분마다 기록해 1~14분에 해당하는 초과 노동의 수당을 미지급하는 이른바 ‘꺾기’ 방식으로 체불한 임금의 총액이다. 비판이 제기되자 애슐리는 미지급된 수당을 지급하고,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1년 6개월 남짓 지난 애슐리의 노동환경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궁금했다. “애슐리 홀서빙 헬입니다. 제발 하지 마세요.” “최저임금 주면서 일 겁나 시킴. 시간 낭비하고 싶은 사람한테 추천.” 구인·구직 누리집에 올라온 애슐리 알바 후기를 애써 모른 척하며 공고에 나온 번호로 구직 문자를 보냈다. “애슐리 홀근무 지원합니다/황금비/여/28/주말 디너.” 3시간 만에 답문자가 왔다. “오늘 오후 5시에 면접 가능하세요?” 구직에서 취직까지 속전속결이었다.
테트리스 블록 같은 알바의 스케줄
매장에서 만난 알바 노동자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청년층이었따. 숙박·음식점업에 청년층 노동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2016)를 보면 초단시간으로 일하는 청년층(15~34세) 가운데 숙박·음식점업 종사 비율이 40.3%로 가장 높았는데, 이는 2002년보다 24.9%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청년층이 서빙 아르바이트 같은 초단시간 노동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업종이 숙박·음식점업이고, 이런 경향이 2000년대 초반보다 더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초단시간 알바 노동자들의 스케줄은 매장의 필요에 따라 모양을 돌려가며 끼우는 ‘테트리스’ 게임의 블록처럼 조절됐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업주가 필요한 시간엔 들어갔고, 필요 없는 시간엔 손쉽게 빠졌다. 이디야커피에서는 주3일(월, 화, 수) 저녁 7시부터 밤 11시(주 12시간)까지 일했는데, 같은 시간대에 함께 일했던 지환(26)이는 나보다 한 시간 이른 저녁 6시에 출근했다. 면접 때 매장 스케줄표를 보며 ‘6시부터 출근하면 되느냐’는 내 질문에 점주가 말했다. “6시부터 7시까지는 손님이 적어서 알바 한 명만 있어도 돼. 너는 마감 때 정리해야 하니까 7시부터 끝날 때까지 있으면 되고.”
강남의 파리바게뜨 매장에서는 주 3일(월, 수, 금)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주 15시간)까지 오픈조에서 일했다. 면접 때 물었다. “혹시 화목은 알바 안 구하시나요?” 매니저가 말했다. “화목은 같은 시간대에 일하는 알바가 따로 있어요. 이번에 월수금 알바생이 그만두게 되어서 새로 뽑는 거예요. 매장 손님들이 주로 직장인이어서 출근시간이랑 점심시간이 가장 바쁘거든요.”
애슐리도 마찬가지였다. 홀서빙 알바의 1주일 근무표에는 그날의 단체 예약 상황이 함께 적혔다. ‘4/21, 12시, 80, 초등 단체’, ‘4/28, 12시, 88, 초등 단체.’ 매장 상황에 따라 근무표도 조절됐다. 4월 16일 오후, 근무하는 날이 아닌데 매장 매니저는 내게 전화해 “혹시 다음 주 토요일 근무를 목요일로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함께 홀서빙을 했던 재영(20)이가 말했다. “저도 제 스케줄을 잘 몰라요. 매장 상황에 따라 그날그날 스케줄이 바뀌니까….”
‘짧은 시간’ 고용된 알바들의 업무 교육은 자연스럽게 생략됐다. ‘바닥에 있는 물기 때문에 미끄러울 수 있으니 넘어지지 말고, 무거운 것 들면서 다치지 말라’는 애슐리 점장의 안전교육은 5분 만에 끝났다. “원래 새로 사람을 뽑으면 안전교육 8시간을 해야 하는데 서로 피곤하잖아. 그냥 제가 간략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점장의 설명이 끝나고 8시간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확인서와, 주말(토, 일) 오후 4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겠다는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회사의 명예와 역사를 존중하며 품위 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근무 중 취득한 회사의 노하우와 각종 정보 및 회사 자료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도 서명했다. ‘주 11시간 일하는데 무급으로 8시간 안전교육까지 받으라니….’ 5분 만에 안전교육을 끝내준 점장이 고마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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