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제제가 발견된 곳은 종로의 한 가라오케였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열 명 남짓 되는 단체 손님과 제제 일행이 전부였다. 푸른 조명이 설치된 무대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테이블은 여전히 궁상맞고 가난해 보였다. 칠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대 뒤쪽 화면에서 수영복을 입은 남자들이 해변을 달리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남자들이 뛸 때마다 커다란 성기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나는 화면을 등진 채 플로어를 가로질렀다. 바닥에 뭘 쏟았는지 걸을 때마다 슬리퍼가 쩍쩍 달라붙었다. 제제의 테이블에 가까이 다가서자 한 남자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제제가 다니는 숍의 매니저라고 했다. 제제는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고 그 옆에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더 앉아 있었다. 그들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집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전화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화장이 하얗게 뜬 남자가 영수증을 들고 왔다. 매니저와 마사지사들은 숍 오픈 시간이 지났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나는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제제를 부축해 일으켰다. 바닥에 나뒹구는 백팩에 손을 뻗는 순간 제제가 갑자기 내 몸을 밀쳤고 우리는 함께 넘어졌다. 요란한 소리가 났고 맞은편 테이블의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욕을 하며 일어셨다. 인사불성이 된 제제를 일으켜보려 했지만 제제가 계속 내 손을 뿌리쳤다. 예약해놓은 노래를 부르고 가야 한다고 했다. 몇 번이고 어르고 달래봤지만 취한 사람과 말이 통할 리 없었다. 그래, 그 노래 얼마나 대단한지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넘어진 제제를 끌어다 자리에 앉힌 뒤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 알바에게 과일 안주와 보드카 한 병을 시켰다. 알바가 토니라는 이름이 적힌 보드카 병을 들고 왔다. 제제가 맡겨놓은 술이라고 했다. 나는 바닥에 뒹구는 백팩을 의자에 올려두었다. 무거웠다. 무대에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자가 임재범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화면을 보니 열다섯 곡이 예약되어 있었다. 엎드려 있는 제제의 어깨를 흔들며 무슨 노래를 예약했는지 물어보았지만 대답할 리가 없었다. 나는 오래된 참외를 안주 삼아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 달았다. 건너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이 서로 술잔을 기울이다, 벌칙을 수행하듯이 무대에 올라서서 노래를 불렀다.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많은 남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술 번개 테이블인 것 같았다. 그들을 바라보며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보드카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제제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
제제가 우리집에 살기로 했을 때 내가 말한 조건은 하나였다.
하루에 한 번, 잠들기 전까지 웃긴 얘기를 해줄 것.
*
제제는 떠날 때 들고 갔던 리모와 알루미늄 캐리어를 그대로 끌고 돌아왔다. 새것이었던 캐리어는 여기저기 찌그러진데다 온갖 나라의 수하물 스티커가 붙어 있어 그간 제제의 행보를 짐작케 했다.
삼 년 전,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78년생 남자와 눈이 맞아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나는 제제가 영영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출국도 하기 전부터 뉴욕주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므로 바로 혼인신고를 할 거라느니, 센트럴 파크에서 결혼식을 열 거라느니, 호들갑을 떨어 나를 질리게 했던 제제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오던 전화도 갈수록 뜸해졌기에 나는 제제가 미국에 아예 눌러앉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왜 갑자기 돌아왔냐고 따지듯 묻자, 제제는 특유의 작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망했어.
*
제제에게 패리스 박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은 나였다.
같은 옷을 두 번 입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패리스 힐튼과 제제는 공통점이 아주 많았는데 우선 술과 명품, 남자를 좋아한다는 점이 그러했고 나아가 남자에게 비싼 술을 즐겨 사준다는 것까지도 비슷했다. 나 역시 과거, 제제에게 숱하게 술을 얻어먹은 남자 중 하나였다. 그 시절 제제는 마르지 않는 지갑과도 같았다.
그 많던 돈이 어떻게 한 번에 없어질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건 제제 자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제제는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제제의 부모님은 소수의 합법적인 사업체를 기반으로 다수의 불법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서류상으로 그들의 회사는 시 외곽에 위치한 소규모의 숙박업체 ― 나란히 지어진 세 개의 모텔 ― 에 불과했으나 실은 업소 내부에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파친코와 불법 환전소, 성매매업소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다. 업무의 특성상 큰돈이 오가는 터라 제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현찰을 회수하곤 했는데 어느 날 조선족 직원이 금고를 갖고 도망쳐버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강원도 모처에 숨어 있던 직원을 찾아냈으나 거처를 급습하기 직전, 그가 제 발로 경찰서에 가 자수해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는 사업주의 인색한 처우와 잦은 폭력을 견디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 고백했다. 고혈압과 알코올 중독, 느슨한 윤리의식은 제제 집안의 가족력이었다.
제제를 한국에 불러들인 것은 경찰이었다. 제제는 귀국하자마자 곧장 경찰서로 인도되어 열네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제제는 그간 자신이 누려왔던 부의 실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제제의 부모님은 중국으로 도피한 뒤 행방불명 상태이며 재산의 대부분이 압수되거나 공매에 부쳐졌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 제제가 살았던 대형 아파트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급품은 헐값에 팔려나갔다. 제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들 중 일부를 챙겼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었다.
카드도 막히고 갈 데는 없는데 떠오르는 건 너밖에 없었어.
내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제제는 마치 제집에 온 듯 짐을 풀기 시작했다. 제제의 캐리어에서 디스퀴어드 진 세 장과 제냐 슈트 두 벌, 돔 페리뇽 한 병과 필립스 트리머, 프라다 구두 한 켤레와 바비리스 고데기가 나왔다.
그것이 엉망이 된 아파트에서 제제가 건진 모든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바비리스 고데기를 챙겨 나온 게 참으로 제제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
붕가붕가 파티가 뭔지 알아?
제제가 나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고 나는 눈을 반쯤 뜬 채 대답했다.
지금 몇시야?
붕가붕가 파티 뜻 아냐고.
눈을 찌푸린 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새벽 다섯시 반이었다. 제제가 옷을 입은 채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노란 스탠드 조명 아래로 제제가 바지를 벗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한쪽 눈만 뜬 채 제제의 청바지를 벗겼다. 제제의 성기가 보였다. 제제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팬티는 어디 갔냐?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헛소리를 해댔다.
붕가붕가는 이탈리아 난교 파티의 은어였는데 미슐랭이나 콜라처럼 그냥 대명사가 된 거래.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붕가붕가 파티가 열리고 있을 거야. 놀랍지 않냐?
놀랍지 않았으므로 나는 제제의 이마를 때렸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나를 깨운 것에 대한 벌이었다. 제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해댔다. 눈을 감은 채 조잘대는 그의 몸에서 익숙한 향이 풍겼다. 이솝 제라늄 리프의 냄새, 파크 하얏트의 어메니티로 사용되는 제품이었다. 그곳은 제제의 단골 고객인 유부남 변호사가 자주 데려가는 호텔이었다. 그는 섹스할 때마다 팬티 위로 애무를 해 제제의 팬티를 침 범벅으로 만들었다. 유난히 깔끔을 떠는 제제는 종종 젖은 팬티를 버리고 오곤 했다. 붕가붕가 파티에 대해 떠드는 제제의 입에서 계속 술냄새가 풍겼다. 혀가 점점 더 꼬이기 시작했다. 졸린 것 같았다.
오늘의 웃긴 얘기 끝.
제제가 베개를 베고 눕더니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제제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다섯시 사십팔분. 다시 잠을 청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시간이었으므로 눈을 반쯤 감은 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새로 바꾼 전동칫솔은 잇몸 손상을 일으키는 것 같았고 일주일 동안 밀지 않은 턱수염이 어느새 무성해져버렸다. 팀장이 턱수염에 대해 한마디라도 싫은 소리를 하면 당장 회사를 그만둘 작정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사건건 부하 직원의 트집을 잡곤 하던 그에게는 좀체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회사에 더 다니라는 운명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거품을 뱉자 피가 섞여 나왔다. 거울 속에는 입꼬리가 처지고 뺨이 부어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면도기를 들어 턱수염 대신 음모를 정리했다. 성기가 조금 더 커진 것처럼 보여 기분이 좋았다.
욕실 밖으로 나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제제의 슈트는 내게 조금 작아 재킷 단추가 잘 잠기지 않았다. 오래된 화장대 위에 십만 원짜리 수표 일곱 장과 못 보던 박스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태그호이어 시계였다. 아마도 고객 중 하나가 선물로 줬거나, 제제 본인이 충동적으로 산 물건인 것 같았다. 망하고 난 후에도 제 버릇 개 주지 못한 제제는 툭하면 고가의 물건을 사곤 했다. 등뒤로 제제가 요란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제제의 시계를 손목에 차고 조용히 방밖으로 나왔다. 현관으로 가 제제의 프라다 정장 구두를 신었다. 사이즈가 커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구두코가 조금씩 접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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