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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체험센터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오렌지를 들고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202호에는 어제까지 있던 노인 사진이 치워지고 젊은 여자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잠시 고개를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 뒤 접객실 한쪽의 주방에 들어가 팀장이 주문한 음식을 체크했다. 음식 신선도까지 체크하고 났을 때 울긋불긋한 치마를 입은 팀장이 들어왔다. 요사이 팀장은 살이 쪄 입던 옷이 맞지 않는다며 날마다 새 옷을 입고 왔다. 상조회사 유니폼이 든 종이 가방을 들고 팀장이 화장실로 간 사이 마리가 왔다.
나는 마리에게 오렌지를 주고 상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상 한가운데에 소주와 생수를 하나씩 놓은 뒤 술을 마시지 않는 조문객을 위해 음료수도 갖춰놓았다. 그때 상주가 서대문화원 사장인 김 씨 아저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고 온 팀장이 상주에게 조문객이 얼마나 올지 물었다. 상주는 팀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김 씨 아저씨를 붙잡고는 빈소 제단을 국화로 꾸며달라고 했다.
잠시 후 김 씨 아저씨가 신문지에 싼 국화 다발을 양손에 들고 와 오아시스 스펀지에 하나씩 꽂았다. 가위로 밑동을 자를 때마다 국화 냄새가 났다. 20여 분 만에 빈소를 장식한 김 씨 아저씨는 종이 박스에 담긴 편육을 하나 집어 먹고는 밖으로 나갔다. 연이어 근조 화환이 들어와 부의함 앞까지 놓였다.
다섯 시가 넘자 10여 명의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여자들은 부의함에 봉투를 넣은 후 빈소에서 절을 하고 나와 상 앞에 둘러앉았다. 마리가 담아놓은 반찬을 나르는데 야구 모자에 허벅지 부분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 누군데 저런 옷차림으로 빈소에 올까?
나는 쟁반을 내려놓고 주방 배식대에 기댄 채 마리를 향해 턱짓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 애인이야.
― 애인?
― 난 척 보면 알아. 눈빛이 다르잖아.
고인에게 절을 한 남자는 조문객이 대기하고 있는데도 영정 사진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평상시 보는 조문객과 달리 눈빛에 슬픔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가족이나 친척 같지는 않았다. 정말 죽은 여자의 애인일까. 상주가 다가가 눈치를 주고 나서야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빈소를 나갔다. 얼마 안 있어 20여 명의 여자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이 한꺼번에 와. 짜증 나.
급하게 상을 세팅한 후 마리에게 미리 육개장을 퍼놓으라고 당부했다. 여자들이 빈소에서 나와 상에 앉자마자 식사 여부도 묻지 않고 밥과 육개장을 날랐다. 빈소에서 대표로 절을 한 여자가 육개장은 질린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여자는 육개장엔 손도 대지 않고 편육만 젓갈에 찍어 먹었다. 가장 먼저 편육이 동날 것 같아 접시에 담아놓은 걸 하나씩 덜어 한 접시를 더 만들었다. 이런 방법으로 세 접시를 만들고 있는데 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뉴욕 양키스 야구 모자에 가려 얼굴의 반은 보이지 않았다.
― 저건 또 누굴까.
나는 턱짓으로 방금 들어온 남자를 가리켰다.
― 저 사람도 애인이네.
마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순간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엄마가 죽는다면 아버지도 저 남자처럼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조문을 올 것 같았다. 아버지의 영원한 애인은 엄마일 테니까.
남자는 멍하니 영정 사진을 바라보다 죽은 여자의 얼굴을 만지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때 대여섯 살짜리 아이가 영정 사진 앞으로 달려가며 엄마, 하고 부르다 남자를 보고는 멈칫했다. 남자는 뻗은 손을 거둬 아이를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아이는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다 울음을 터뜨렸다.
상주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아이를 빼앗고 빈소를 장식한 국화를 뽑아 패대기쳤다. 놀란 남자는 상주의 품에 안긴 아이를 한번 돌아보고는 서둘러 빈소를 나갔다. 편육을 먹던 여자가 남자를 보더니 어머, 어머, 하며 탄성을 질렀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저 남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길 와. 맞은 편 여자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이거 맞지, 하고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측하게 이게 뭔 일이래. 보라가 그런 여자였다니…… 난 그렇게 안 봤는데. 보라는 죽은 여자의 이름이었다. 근데 애인이 하나가 아니야. 하나가 아니면? 여자들의 머리가 일제히 상 한가운데로 모였다. 땅콩을 까먹으며 여자들은 방금 나간 남자와 죽은 여자의 애인들에 대해 찧고 까불었다.
상주의 통곡과 아이의 울음소리로 여자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이내 여자들은 상주 눈치를 보다 남은 땅콩을 한두 개씩 집어 들고 슬금슬금 일어나 나갔다. 팀장이 부러진 국화를 다시 꽂아놓고 상주를 위로하는 사이 나는 빗자루로 떨어진 꽃잎을 쓸어 담고 상을 치웠다. 새들이 음식을 쪼아 먹고 간 것처럼 상 위에는 땅콩 껍질과 귤껍질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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