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의 글
/ 팀 플래치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나는 지구상에서 멸종될 위험이 가장 큰 몇몇 종種을 촬영했다. 이 중에는 상징성을 지닌 녀석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종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면서 영화나 책 속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침대 머리맡에 올려진 봉제인형으로 등장하는 이 상징적인 동물들이 멸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언제나 자연 세계에 대한 경이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산책을 하거나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성적이고 사색을 즐기던 소년이었달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나는 옥수수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던 나는, 벌 한 마리가 내 앞을 날아가는 순간 마치 내 손에 있던 연필이 종이를 긁으며 지나가는 것처럼 벌의 에너지가 하늘로 뻗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에 완전히 몰입된 그 느낌은, 내가 사진작가로 일하면서 늘 다시 발견하고 교감하고 싶은 것이다.
자연 세계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이상하거나 신비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인간은 가이아 가설과 같은 이론을 통해, 놀라울 정도의 항상성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하고, 생명을 지속시키며 번성할 수 있게 하는 완벽한 균형 상태을 지닌 지구에 존재하는 믿을 수 없는 복잡성을 설명해 보고자 했다. 물론, 지구가 생명체의 번성에 필요한 환경을 유지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비가역적인 손상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임계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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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인류세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가 자연적인 힘의 흐름에 의해 형성된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 대부분이 인류에 의해 만들어지는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탄탄한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며 오늘날 여러 학문 분야에서 통용되는 이론이다.
현대인의 마음에 자연 세계가 취약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한 건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역사를 통틀어 자연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고 무한히 풍요로운 자원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힘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자연 세계는 우리가 자연에 의존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사라져 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대상은 과연 누굴까?
사라지는 얼음
북극곰이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바다얼음이 있어야 한다. 북극곰은 얼음 위에서 먹이가 나타나기를 조용히 기다리다가 물범이 숨을 쉬기 위해 숨구멍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위에서 덮치거나, 이들이 얼음 위로 올라와 햇볕을 쬐고 있을 때 몰래 접근해 사냥한다. 하지만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얼음이 녹아 없어지자 북극곰은 먹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2003년 이후 13번의 겨울 동안 해마다 북극의 바다얼음 면적이 감소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사냥할 수 있는 계절이 점점 짧아지고 겨울철에도 북극의 얼음이 계속해서 유실되면서, 북극곰의 지방층은 7kg가량 감소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2020년이 되기 전에 북극의 여름에는 얼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얼음은 태양 복사solar radiation를 반사하기 때문에 얼음이 사라지면 바닷물이 열을 흡수해 지구 온난화가 가속된다. 2015년, 국제 사회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2℃ 미만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합의하는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협약에 서명한 194개국 모두 이를 비준한다면, 이는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위험으로부터 북극곰과 인간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조치일 것이다.
동굴영원
동굴영원은 지금으로부터 6600만 년 전, 지구 생명체 대부분의 멸종을 가져온 운석 충돌에서도 살아남은 녀석이다. 이들은 약 8000만 년 전 현재의 동유럽 지역에 위치한 캄캄한 동굴 안에 출현했는데, 햇빛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이곳은 지구에서 일어난 다섯 번째 대멸종 사건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동굴영원은 눈이 퇴화해 짝짓기 상대에게조차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촌지간인 열대 지방의 양서류처럼 화려한 무늬가 발달하지 않았고 색소도 없다. 이들은 시력을 잃은 대신 후각과 청각이 극도로 발달했으며, 전기 자극을 느낄 수 있어서 지구 자기장도 감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굴영원은 최대 100년까지 살 수 있는데, 먹이를 먹지 않고도 10년 정도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깨끗한 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식지지하동굴 위에 있는 숲이 정화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숲이 농지로 전환되면서 오염물질이 지하로 스며들고 있다. 동굴영원은 이들이 살아온 길고 긴 역사 가운에 처음으로 위기에 빠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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