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알기만 해도 의미 있는 일
처음 가는 장소로 길을 나설 때, 스마트폰으로 경로를 확인하고 교통수단을 선택한다. 걸어갈 만한 거리일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합리적일지, 이도저도 아니어서 차를 가지고 나서야 할지. 경로를 정하면 시간을 계산한다. 버스로 20분, 도보 10분, 도합 30분. 지도 앱이 알려 주는 예상 시간에 여유 시간 10분을 더해 40분 전에 길을 나선다. 그럼 거의 예외 없이 예상한 시간에 그 장소에 도착한다. 도착하면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보거나 sns를 살피거나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나 예정된 일정을 기다린다. 대체로는 비슷하다. 혼자 가든, 동료와 함께든, 친구와 함께든.
그런데 이 당연한 일이 남편과 함께면 달라진다. 가장 먼저 약속 장소의 건물 구조를 파악한다. 건물 입구의 문은 충분히 큰가. 자동문인가, 당기거나 밀어서 여는 유리문인가 아니면 회전문인가. 진입로가 경사져 있다면 얼마나 경사져 있나. 혹시 계단이 있나, 어느 높이로 몇 개나 있나. 약속 장소는 몇 층인가.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있나.
다음으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지 파악한다. 지하철을 탄다면 어느 역에서 타고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지. 타는 역과 내리는 역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환승역내 환승 통로에 계단이나 경사로는 없는지.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와 약속 장소까지 가는 길에 턱이나 계단, 경사로는 없는지. 도착하면 화장실을 확인한다. 이 건물에 장애인화장실은 어디에 있나. 있기는 한가. 층마다 있나 1층에만 있나. 청소 도구로 가득차 있나 아니면 이용이 가능한가.
이동 시간은 지도 앱이 일러 준 것보다 보통 1.5~2배 더 걸리고 도중에 예상 못한 일도 종종 일어나니, 충분히 일찍 나서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우면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는데, 그러면 이동 시간은 사실상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1년에 한두 번, 특별한 날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겪는 일상이다.
장애인이동권운동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본격화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중요하고, 기본권으로서의 이동권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얼마나 보장되어야 하며, 보장되지 않았을 때 장애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불편을 겪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량한 시민으로서 막연히 옳은 일에 동의하는 것과 장애인의 동료이자 가족, 친구로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불편을 어느 빈도로 얼마나 겪는지 알기 때문에 필요한 일을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일은 같은 결과를 향하더라도 많이 다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이들이 장애인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장애감수성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장애인 한 명 한 명의 일상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이동권 투쟁을 하는 장애인과 장애인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모습은 더 자주, 더 다양한 형태로 보이게 되었지만 장애인의 일상은 여전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생활할 만한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 거리와 공공장소는 변함없이 장애인에게 불편한 장소이다. ‘불편하지만 옳은 일이니’ 마지못해 배려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윤리의 수준이 향상되는 건 좋아도 나까지 적극적으로 당신의 삶을 알고 싶지는 않다’는 비장애인의 마음은 장애인의 일상을 더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낼 것이다.
15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일터에서 수많은 장애인을 만나고, 장애인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8년 전 척수장애인 남편과 결혼하며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 시절 내가 직접 경험해서 쌓은 모든 지식은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비장애인의 태도로 장애인을 돕는 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편과 함께 살며 너무나 당연해서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고, 비장애인의 무지가 장애인의 일상 유지를 얼마나 방해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동시에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사회는 모두에게 더 좋은 사회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장애인권의 중요성이나 장애감수성의 필요성보다 집과 직장, 그 외 개인적 공간에서 장애인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 소소한 이야기와 크고 작은 문제 속에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지점들도 물론 있을 테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알기만 해도 의미 있을 사실이 수두룩하다.
이해해 보려는 마음 없이 선량함으로 순간의 불편함을 ‘참는’ 이들은 종종 이야기한다.
“그 사람 장애인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다수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비장애인도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고. 나도 공공장소 불편해. 뭐가 얼마나 더 필요하다는 거야?”
“집에서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각자 원하는 대로 사는 거 아냐? 그걸 어떻게 지원한다는 거지?”
장애인 중 약 10퍼센트만이 선천적 장애인이고 90퍼센트 이상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장애인이 된 중도 장애인이다. 거의 모든 장애인이 준비 없이 장애인이 된다. 학교나 직장에서 장애에 대한 교육과 논의 기회는 늘 부족하기에, 장애인이 되거나 장애인 가족이 되면 일상에서 겪는 거의 모든 불편이 개인의 문제가 된다. 수많은 장애인이 함께 겪는 일임에도 말이다. 내가 겪고 본 소소한 일상과 개인의 이야기가 장애인에 대한 미안한 거리감과 소극적 의문을 품고 사는 비장애인의 마음을 두드리길 바란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를 좀 더 알아 가는 일은 결국 서로를, 사회 전체를 돕는 일이 될 것이다.
책 제목을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으로 정했지만 나도 가깝지 않은 사람들의 삶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삶들을 ‘장애인의 삶’과 ‘비장애인의 삶’으로 가르고 뭉뚱그릴 수도 없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는 전체 장애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가까운 일부 발달장애인, 일부 척수장애인의 이야기만 주로 담았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더 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더 자주 만나며 서로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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