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소와 소고기 때리기는 우리가 집중해야 할 문제를 놓치게 한다.”
1970년 4월 22일, 첫 번째 지구의 날Earth Day을 맞아 200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을 계기로 미국의 풀뿌리 환경운동이 급성장했다. 미국의 대표적 환경오염 유발 산업들과 함께 목우업도 악의 무리로 지목돼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소고기를 생태계 파괴자이자 세계 기아문제의 주범으로 보는 인식이 날로 증폭했다. 진정한 환경보호론자나 인도주의자는 절대 (적어도 훤한 공공장소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이 시대정신의 일부가 됐다. 이후 30년간 《작은 행성을 위한 식습관Diet for a Small Planet》을 시작으로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와 《육식의 종말》 같은 책들이 소고기 생산으로 인한 환경문제를 설파하여 소고기가 공공의 적 제1호라는 통설을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정설로 못 박았다.
1980년대 중반, 생물학과 1학년이었던 나도 그 주장을 신봉했다. 나는 육식을 끊었고, 세상에 착한 소고기는 없다는 신념을 열정적으로 수용했다. 이후 이 문제는 내게 끝난 얘기였다. 더 이상 재고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2000년에 그 논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환경변호사로 고용된 직후였다. 그는 내게 육류산업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응할 전국적 캠페인을 전개하는 임무를 맡겼다. 처음에는 이 일이 내가 육류와 육류 생산 방식에 대해 오래 견지해온 부정적인 관점과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일로 보였다. 그런데 축산농가를 방문하고, 연구논문을 읽고,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육류와 환경의 연관성에 대한 그간의 내 이해가 미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견해는 주로 대학 때 접한 채식주의와 환경주의 팸플릿의 구호식 주장에 경도된 단순한 흑백논리에 불과했다.
다행히 그로부터 2년 후 내가 어느 잘생긴 소 목장주에게 청혼을 받을 즈음에는 푸드시스템food system ― 식품이 생산, 가공, 유통되어 소비되거나 폐기되기까지 일련의 과정 또는 식품산업 각 요소 간의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과 자연환경에서 가축이 하는 역할에 대한 내 이해가 훨씬 정교해져 있었다. 그리고 내게 그를 받아들일 분별이 생겨 있었다.
나는 지난 1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우리 목장의 목초지와 계곡을 누비며 일했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온전히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나는 소뿐 아니라 사육 칠면조와 야생 칠면조, 사슴, 코요테, 딱정벌레, 도롱뇽, 보브캣, 나비, 큰까마귀, 매, 왜가리, 땅다람쥐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동물과 식물, 곰팡이류 사이에서 살았다. 나는 인간이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 인간이 식량 생산의 터전인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는 동시에, 이곳의 진짜 주민이자 생명시스템의 근간인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포함한) 야생생물을 부양하고 심지어 증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 지구의 날 이후 수십 년이 흘렀다. 환경운동가와 동물의 식용 사육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목축과 소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여전하다. 지구온난화 우려가 이 문제에 새로이 기름을 부으면서 소고기 논쟁은 주류 담론과 정쟁에 편입됐다. 30년 넘게 채식을 고수한 이력이 있는 평생의 환경운동가로서 나는 그들의 비판에 누구보다 친숙하다. 하지만 그 비판에 대한 믿을 만한 대응은 별로 보지 못했다. 특히 당사자인 소고기산업의 대응이 가장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제 나는 엄마로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어느 때보다 우리 행성의 건강 회복에 열심인 사람으로서 성실과 열정을 다해 그 비판들에 대답할 필요를 느낀다. 이 책이 나의 대답, 소고기를 위한 나의 변론이다.
들어가는 글
적색육, 그중에서도 소고기는 우리에게 해롭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 자주 들었고, 그 결과 우리 중 다수가 반박 불가의 사실로 받아들인 서사다. 너무 흔해서 상식이 된 그 서사를 한 번 더 반복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한때 미국인은 소, 돼지, 양을 농장에서 함께 길렀다. 이런 작은 혼합농장이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었고, 각각이 치는 가축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축의 수는 적었고, 자연히 미국인이 먹는 동물성지방과 적색육의 양도 적었다. 그때 우리는 날씬했다.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 발병률은 낮았다. 영농으로 인한 환경 피해는 경미했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 모든 것이 악화됐다. 가축 무리가 풍선처럼 늘어났다. 초지가 소로 뒤덮였다. 적색육과 동물성지방이 사방에 싼값으로 넘쳐났다. 미국인은 햄버거, 버터, 아이스크림을 마구 먹어댔다. 그 결과는? 토양침식, 수질오염과 대기오염, 그리고 하늘 모르고 치솟는 비만율과 식이 관련 만성질환 발병률이다.
이 서사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허구라는 것이다.
맞는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주류 담론과 언론 보도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는 사실들이 있고, 그 사실들은 이 서사의 골자와 정반대다. 이 책에서 명백히 밝히겠지만 미국의 환경 조건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식이 관련 만성질환이 만연해지고 중증화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소, 버터, 소고기와는 마땅한 연관성이 없다. 어째서?
지구에 있는 가축의 수가 오늘날이나 100년 전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인이 전반적으로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적색육, 특히 소고기는 근래의 어느 때보다도 적게 먹고 있다. 버터 소비도 줄었고, 전지우유와 동물성 포화지방의 소비는 대폭 줄었다. 풍선처럼 늘어난 소 떼는 없다. 적색육과 동물성지방을 갈수록 많이 먹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실들만으로도 앞의 지극히 단순화한 서사는 그대로 붕괴한다.
소는 죄가 없다
여러분의 의심을 비난하지 않는다. 아직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방금 내가 한 말은 여러분이 오랫동안 다양한 출처에서 숱하게 들었던 내용과 정면을 배치될 테니까. 하지만 근거 없이 하는 말이 아니다. 내게는 많은 데이터가 있다. 모두 정부의 공식자료다. 가축소가 환경에 좋고 소고기, 버터, 치즈가 건강한 식료라는 나의 전반적 전제들은 여전히 논쟁 대상이지만, 기본 농업 데이터와 인구통계학적 사실들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요점을 미리 밝히자면 이렇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미국인의 식습관이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히 논할 예정이다. 지금의 우리가 100년 전에 비해 소고기와 동물성지방은 적게 먹는 반면 설탕, 곡물, 식물성 가공유의 소비는 폭등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반면 비만과 만성질환 급증의 책임이 적색육과 동물성지방이 아니라 설탕, 밀가루, 식물성기름의 소비에 있다는 결론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사실들을 제시할 것이다.
또한 위의 통설은 가축 수에 있어서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 실제로는 미국인의 식습관이 소고기에서 가금류와 생선으로 옮겨갔다. 1인당 소고기 소비가 감소함에 따라 미국이 보유한 1인당 가축소의 수도 동반 감소했다. 인구 증가에 따라 적색육과 유제품 총생산량이 증가한 것과 그중 일부가 수출용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수출하는 소고기와 유제품의 비중은 매우 적다. 각각 약 7%와 2%만이 해외 시장들로 나간다. 따라서 수출용 고기 제품과 유제품을 위해 사육되는 소의 수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소고기와 유제품의 생산량 증가가 딱히 고기소와 젖소가 수적으로 엄청 증가했기 때문은 아니다. 고기소의 경우 지금은 소가 예전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는 고기소가 평균적으로 생후 4~5년에 도축장으로 갔다. 오늘날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 그리고 곡물사료와 성장호르몬의 영향으로 고기소가 생후 2년도 되기 전에 도축된다. 현재 소의 평균 도축 월령은 약 14개월이다. 젖소 역시 예전보다 훨씬 이른 연령대개 생후 3년 무렵에 도축장으로 간다. 이것도 소고기 공급에 영향을 준다. 늘 그래왔듯 지금도 미국산 소고기의 상당 부분이 젖소 고기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유 생산량의 증가는 전혀 다른 문제에 기인한다. 내 전작 《돼지가 사는 공장》에서 자세히 논했다시피 우유 생산 증대를 위한 젖소 선별 육종의 결과 (젖소들의 몸집이 커지고 특히 젖통이 거대해지면서) 젖소 한 마리당 우유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20세기 초 미국의 젖소 한 마리당 연간 우유 생산량은 평균 약 1,317리터였다. 오늘날은 연간 약 1만 349리터다. 이는 흔히 인류 문명의 빛나는 성과 중 하나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가공할 증가폭일곱 배 이상은 선별 육종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다.지금의 다 자란 젖소는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내가 직접 수없이 목격한 것이고, 볼 때마다 마음 아픈 사실이다. 이 변화의 최종 결과로 지난 100년에 걸쳐 미국 젖소의 개체수가 상당히 줄었다.
이러한 요인들에 더해 과거 미국 농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던 황소, 노새, 당나귀, 말 등의 역용 가축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현재 미국에 있는 대형 가축의 수는 100년 전보다 줄었다.
아직도 못 믿는 분들을 위해 여기 구체적인 수치가 있다. 1900년 이래 고기소 수가 증가하긴 했지만 6700만 마리에서 9400만 마리로 늘어 사람들이 상상하는 증가세를 많이 밑돈다. 돼지의 수도 늘었지만 역시 많이 늘지 않았다. 1920년에는 6000만 마리였고 2018년에는 7400만 마리였다. 양의 수는 1940년 4600만 마리에서 오늘날 500만 마리로 오히려 급감했다. 마찬가지로 젖소 무리도 지난 100년 동안 3200만 마리에서 900만 마리로 대폭 줄었다. 역용 가축의 경우는 1900년에는 2200만 마리였는데 2002년에는 겨우 300만 마리만 남았다. 종합해 보면 20세기 초에는 농장과 목장에 대략 9900만 마리의 소를 비롯해 2억 2700만 마리의 대형 가축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약 1억 300만 마리의 소를 비롯해 1억 8500만 마리의 대형 가축이 있다. 가축소의 수는 4% 소폭 증가에 그쳤고, 대형 가축은 오히려 전체적으로 19% 감소했다.
쟁점은 방법이다
환경 관점에서 중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현존하는 가축수다. 더 중요한 것은 가축이 사육되는 방식이다. 주로 이 요인들이 해롭든 이롭든 우리의 생태발자국을 결정하게 된다. 우선 방금 살펴봤다시피 지난 100년 동안 가축소의 개체수는 약간 늘었을 뿐이다. 아울러 현재 환경친화성 사육법들이 대두하고 있다. 특히 무경운 윤작과 관리형방목을 겸하는 농법이 기존 농업 관행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가축효과가 점차 이 재생농업의 초석이 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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