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할머니가 좋아하는 대추를 사 가자며 나는 앞서가는 엄마를 불러 세웠다. 우리 할머니보다 열 살은 족히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대로변 인도에 자리를 깔고 앉아 대추와 깐 마늘, 쪽파 등을 팔고 있었다. 대추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엄마는 대춧값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대추를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게 나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네. 집에 넘쳐 나는 게 대추였는데.”
외가는 동네에서 대추나무 집으로 통했다. 마당 한편을 차지한 커다란 대추나무는 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 외가 식구들 손을 많이 타고 자란 나 역시 대추나무 집에 대한 추억이 많다. 내부 생활공간은 현대식으로 고쳤지만, 서까래와 기와지붕 등을 남기고 집의 뼈대는 옛것 그대로 살려 둔 운치 있는 고택이었다. 할머니는 그 집 마루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마당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우곤 했다. 나는 할머니처럼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도 반드시 저 자리에서 같은 포즈로 담배를 피워 보겠다는 다짐을 몰래 품었다. 하지만 재작년 경매에서 집을 낙찰 받은 사람이 구옥을 헐고 2층짜리 양옥을 지으면서 그 꿈은 물거품이 됐다. 가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내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남의 손에 집을 넘긴 외삼촌이 원망스러웠다. 담장 위로 비죽 솟은 대추나무만은 그대로라 괜히 더 부아가 치밀었다.
할머니는 5인 병실 제일 구석진 자리에서 침대 등받이를 절반쯤 올리고 앉다시피 한 자세로 우리를 맞았다. 제대로 누울 수 없는 건 중증 폐암 증상 중 하나였다. 못 본 사이 머리숱도 많이 줄고, 낯빛도 나빠져 있었다. 올케언니 어디 갔느냐는 엄마의 질문에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복도 쪽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보며 “석이는?” 하고 물었다.
“나도 몰라요.”
실은 알았지만 모른다고 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고, 좀 전에 소정이 내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ㅋㅋㅋㅋ’라고 답장을 보냈다. 소정은 영석을 좋아했다. 영석을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소정 외에도 많았다. 영석과 나는 집 근처 남중과 여중을 각각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같은 곳으로 배정받았다. 1학년 학기 초, 여자 반 교실 앞을 지나던 영석이 복도로 난 유리창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자 아이들이 몰려와 무슨 사이냐고 물었다. 영석과 나는 사촌 사이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랐다. 영석과 나는 열흘 차이로 태어났지만 할머니는 영석의 태몽만 꿨다. 꿈에서 앞마당에 나갔는데 나무에서 알이 굵은 대추가 우수수 떨어져 치마 폭을 벌려 대추를 한가득 받았다고, 그게 영석의 태몽이라고 했다. 내 태몽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아니면 대추가 여러 알이니 그중에 하나는 나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할머니를 붙들고 떼를 쓰듯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추는 아들이다. 이건 석이가 나중에 큰 인물 된다는 꿈이야.”
할머니는 늘 그렇게 좋은 건 죄다 영석의 앞에 갖다붙였다.
외숙모가 칫솔을 손에 든 채 병실로 들어왔다. 얼굴에 살이 많이 내려 보였다. 외숙모와 인사를 제대로 나누기도 전에 할머니가 외숙모에게 손짓했다.
“석이한테 전화해 보거라. 희영이가 여기 있으니 석이도 학교 마쳤을 텐데, 석이는 왜 안 오냐.”
영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계속 외숙모를 채근했다.
“석이 못 본 지 일주일이 넘었다. 애비도 얼굴 비춘 지 사흘이 지났다. 최씨 남자들 인정머리 없는 거야 내가 제일 잘 알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다.”
할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폐의 절반 이상을 잘라 내는 수술을 했다. 외숙모는 할머니 병간호 때문에 마트 캐셔 일을 그만뒀고, 1년 내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할머니를 챙기느라 엄마도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석이는 지금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하는 중이라 전화를 못 받을 거라고 말했다. 내 말에 외숙모는 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애비가 지금 학교 가서 석이 데리고 오겠대요.”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병실 세면대에서 대추를 한 알 한 알 깨끗이 씻었다. 할머니는 틀니를 끼지도 않은 채 내가 씻어 온 대추를 하나 입에 집어넣었다.
“엄마, 틀니를 끼고 드셔야지. 잇몸으로만 드시면 까끌까끌할 텐데.”
할머니는 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추를 입 안에 한참 머금어 퉁퉁 불린 후 혀와 잇몸으로 그걸 으깨려 했다. 나와 엄마, 그리고 외숙모까지 세 여자가 할머니의 오물거리는 입 모양만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휴지 좀 다오. 못 먹겠다.”
엄마는 티슈를 한 장 뽑아 손바닥 위에 펴 올렸다. 엄마가 입 앞에 손을 갖다 대자 할머니가 퉤퉤 소리를 내며 대추 조각들을 뱉어 냈다. 나는 어서 집에 가고 싶어졌지만, 영석과 외삼촌이 오고 있다는 말에 혼자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영석이 땀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자 할머니의 얼굴이 일순간 환해졌다. 할머니는 영석의 등을 두드리며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먹으라고, 집에 갈 때 몇 병 챙겨 가라고 했다. 영석은 비타500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내가 씻어 놓은 대추를 한 웅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우, 완전 맛있는데요? 엄마, 이거 어디서 났어요?”
“고모가 사 오신 거야. 할머니는 별로 안 좋아하셨는데.”
“할머니, 대추 진짜 달고 맛있어요. 보자, 우리 할머니 틀니를 안 하셨구나. 그래서 맛을 못 느낀 거예요. 틀니 끼고 다시 한번 드셔 보세요. 제가 입에 넣어 드릴게요.”
영석은 태어나서부터 할머니와 계속 한집에 살아 스스럼이 없었다. 저 정도면 인정머리가 있는 편 아닌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인정머리가 아니라 자신감이 넘치는 쪽인지도 모르겠다. 영석은 본인이 잘 생긴 걸 알았고,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는 걸 잘 알았다. 영석의 조근조근한 설득에 할머니는 못 이기는 척 틀니를 끼었다.
할머니는 대추 두 알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다시 퉤하고 뱉었다.
“떫구나. 못 먹겠다.”
“항암제 때문에 입맛이 없으셔서 그래요.”
외숙모가 할머니의 입 앞에 손을 갖다 대 씹다 만 대추를 받으며 말했다.
“내가 대추 맛도 모를까 봐. 저런 건 대추도 아니다. 우리 집 대추 먹다가 다른 대추는 못 먹는다. 돌아가신 너희 할아버지가 집 마당에서 가장 양지바른 곳에 심은 대추나무야. 지금쯤이면 한창 실하게 대추를 열릴 때다. 우리 집 대추가 먹고 싶구나.”
우리 집이 아니라 이제 남의 집이죠, 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외삼촌은 가족들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나 역시 대추를 잘못 사 왔다는 타박을 들은 기분이었다.
“에미야, 소피 좀 봐야겠다.”
“네, 어머님.”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숙모가 침대 밑에서 플라스틱 간이 변기를 꺼냈다. 암세포가 골반뼈까지 전이되면서 얼마 전부터 외숙모가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낸다는 말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회색 간이 변기를 직접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기에 오줌을 눈다고?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석이랑 애비는 나가 있거라.”
영석과 외삼촌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외숙모가 할머니의 침대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커튼을 쳤다. 침대 모서리에 붙어선 내 어깨에 커튼이 걸렸다. 한쪽 어깨에 커튼이 걸쳐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엄마가 밖으로 잡아끌었다.
“얘, 이리 나와.”
할머니 발치에서 한 걸음쯤 떨어져 서 있던 엄마는 자연스럽게 커튼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커튼 속에서 쪼르르 하는 소리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할머니의 소변이 플라스틱 용기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괜히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폐암에 걸린 것도, 화장실을 혼자 못 다니게 된 것도 결코 할머니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 순간 나는 앞으로 절대 담배 같은 건 피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엄마는 내 옆에서 무덤덤한 얼굴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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