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등은 매우 귀여웠다. 토끼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나무 부분은 그다지 사실적이지 않았지만, 토끼는 한껏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토끼의 양쪽 귀 끝과 꼬리 끝, 그리고 눈은 검었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새하얀 색이었다. 딱딱한 재질인데도 보드라운 분홍 입술과 복슬복슬한 털의 질감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전등에 불이 들어오면 토끼의 몸체가 하얗게 빛났고, 그 순간만은 마치 살아 있는 토끼 같아서 귀를 쫑긋 세우거나 코를 벌름거리기라도 할 것 같아 보였다.
모든 물건에는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저주에 쓰인 물건이니 이 토끼 전등에도 물론 사연이 있다. 할아버지는 전등 옆 안락의자에 앉아서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를 또 몇 번이고 다시 들려주시곤 하는 것이다.
전등은 할아버지의 친구를 위한 것이었다.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업으로 만든 물건을 개인적인 저주에 사용해서도 안 된다. 대대로 저주 용품ㅇ르 만드는 우리 집안의 불문율이다. 토끼는 단 한 번의 예외였다.
“친구네 집은 술도가였어.”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리고 꼭 덧붙여 물으셨따.
“술도가가 뭔지 아냐?”
물론 안다. 한두 번 들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이어서 설명한다.
“요즘 말로 하면 양조장이지. 그 일대에서 제일 큰 양조장이었어. 요즘은 양조장 하는 집 찾기 힘들지만 그때는 말하자면 술 공장이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다 그 집에서 일했지. 그래서 술도가 하면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지였다.”
그런 유지의 아들과 저주 용품을 만드는 집의 자식인 할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되었는지는 할아버지도 잘 모른다. 잘 모르겠다고,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집은, 그러니까 우리 집안은 공식적으로는 ‘대장간’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실제로 농기구와 여러 가지 쇠붙이 도구들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고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본업이 무엇인지는 동네 사람들도, 동네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저주토끼
요즘에 쓰는 점잖은 말로 ‘무속인’이라고 하는 무당이나 점쟁이, 그리고 시체 염습해주는 사람은 그 시절에 모두 천민 취급을 받았다. 그런 종류의 차별이 결코 옳은 일을 아니지만 하여간 그 시절에는 그랬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집안은, 아니 우리 집안은 명확하게 천민 취급조차 받지 못했다. 굿을 해 주는 무당도 아니고 점을 봐 주는 것도 아니며 시신 염습이나 장례와도 원칙적으로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분명하게 무속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지만 절대로 아무도 내놓고 말하지는 않고, 농기구 수리나 대장장이 일도 분명히 해주고, 그래서 뭐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게다가 잘못 건드리면 저주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돌았다. 물론 우리 집안 사람들은 절대로 개인적인 원한 관계에 저주 물품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런 우리 집안 불문율을 알 리가 없었고 안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쨌든 우리 집안은 그냥 기피의 대상이었다.
다만 그 친구는 그럴 걸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고,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동네에 떠도는 소문도, 남들의 수군거림도, 반쯤은 겁에 질리고 반쯤은 호기심에 찬 이웃들의 시선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술도가의 아들에게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자라고 같이 학교에 다니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은 전부 친구였고, 부모님의 직업이 어떻거나 집안에서 하는 일이 어떻다는 이유로 어울려 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돈도 있고 땅도 있고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양조장 집 아들이 친하게 놀아주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점차 또래 집단에도 친구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 집 부모님이 참 깨어 있는 분들이셨어.”
할아버지는 몇 번이고 말했다.
“돈 있고 힘 있다고 남한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동네 사람들 누구한테나 허리 숙여 인사하고 경조사 있다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도와주시는 분들이었거든.”
그리고 할아버지 친구의 부모님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유능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끼리 대충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끼리 사 마시는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생산방식을 표준화하고 공정을 현대화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능하다면 전국적으로 판매망을 늘리려고 시도했다. 전쟁이 일어났고 남쪽으로 피난도 다녀왔고, 피난 갔다 와 봤더니 양조장을 비롯하여 온 동리가 다 초토화된 모습도 봤으나 할아버지 친구의 부모님은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불타버렸으니 아예 처음부터 현대화되고 표준화된 공정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할아버지의 친구도 그런 부모님의 뜻을 이해하고 가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대학도 우리는 그 녀석이 사장님이 될 테니까 당연히 상과를 갈 줄 알았는데 공과를 갔어. 손으로 고두밥 지어서 술 빚던 시절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량 생산을 하겠다는 거야. 고등학교 갓 졸업한 열아홉 살짜리가 자기 집안 술맛으로 전국을 제패하겠다고, 아주 야심만만했지.”
그 야심에 제동을 건 것은 정부의 식량정책이었다. 농업정책의 핵심은 쌀을 자급자족하는 것이라 공표하고 정부에서는 특정 종류의 술을 발효할 때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물을 붓고 발효시키던 전통 방식은 정부의 이런 정책 때문에 사라지고 대신 주정酒精, 즉 99% 에탄올에 물을 붓고 이 역겨운 액체를 사람이 마실 수 있게 하려고 감미료를 억지로 섞은 싸구려 술이 시장에 대량으로 풀렸다.
할아버지의 친구는 낙심했다. 그러나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대대로 술을 빚어온 장인 집안의 아들이었고 관련 분야의 지식도 갖춘 전문가였다. 쌀은 소중한 자원이고, 술 마시는 것보다야 아무래도 밥 먹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납득하고 그는 일단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친구는 쌀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지 말라는 정부의 정책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손으로 술 빚던 전통의 유산, 원재료의 비율과 알코올 도수와 옛날 그 맛을 최대한 되살릴 수 있는 생산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이 부분에서 극적으로 이야기를 멈추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 것 같냐?”
이야기를 멈추고 나서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물었다.
“친구가 그 기술 개발에 성공했을 것 같냐, 못 했을 것 같냐?”
몇 번이나 되풀이해 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하듯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성공했지. 똑똑하고 뚝심 있는 친구였거든.”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리고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망했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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