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누군가가 2019년 12월에, 앞으로 10년 뒤 괴질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외출을 못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고, 수업도 비대면으로 실시하며,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나올 정도로 전대미문의 대사건이 발생할 거라고 했다면 아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달 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코로나19처럼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인 차원에서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사건은 일찍이 없었다.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에도 개인적으로는 별 상관없이 지내던 사람들이 많았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환경계획UNEP은 코로나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이 기후변화, 숲의 파괴, 생물다양성 상실, 야생동물 밀거래, 공장식 축산, 지구화, 도시화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코로나를 질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태환경의 전체적 맥락과 연결시켜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만큼 인간이 처한 객관적 상황을 잘 드러낸 경우도 없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발달한 지성과 기술, 우주와 가상현실로까지 확장된 최고의 ‘복잡성’을 대표하는 인간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선상에 있는 최저의 ‘단순성’을 대표하는 바이러스 앞에서 전전긍긍하게 된 그 참담한 역설이라니!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는 기후위기의 시간이기도 했다. 2020년 6월 20일,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장소 중 하나인 북극권 내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기온 ― 최저 영하 69.8도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 이 영상 38도까지 올라가 유엔 세계기상기구WMO의 ‘날씨·기후 극한기록 아카이브’에 공식적으로 등재되었다. 2021년 7월에는 캘리포니아 데스밸리의 온도가 54.4도까지 올라가 세계 기상관측사상 최고기록을 깼고, 2022년 1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에서 50.7도의 기록적 폭염이 발생했다. 2021년은 역사상 다섯 번째로 더웠던 해였고, 2015년부터 2021년까지는 역사상 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7년이었다. 2021년에는 또한 전세계 해양 온도가 역사상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1년은 전국 연평균 기온이 13.3도로 1973년 기상 관측 이래 두번째로 높았다고 한다. 최고기록은 연평균 13.4도의 2016년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남유럽, 인도, 방글라데시, 중동은 산불, 폭염, 혹한, 사이클론, 토네이도 등 아비규환의 재난을 당했다. 캐나다에서는 산불로 타운이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따뜻한 텍사스주에서 246명이 동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 허난성에서는 ‘천년 만의 폭우’가 쏟아져 398명이 사망·실종했다. 2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독일과 서유럽의 물난리로 장애인 12명이 거주시설에서 익사하는 비극도 일어났다. 2021년 12월, 슈퍼태풍 라이가 필리핀을 강타하여 400여명이 숨지고 450여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2021년 전세계 상위 10대 기상재난만 따져봐도 재산 피해가 약 1700억 달러201조 8000억원 넘게 발생했다.
코로나 한복판에 한국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발표했다. 유엔은 2030년까지는 ‘생태계 회복 10년’ 기간으로 선포했다. 2021년 10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사상 최초로 ‘건강한 환경권’을 정식 인권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10월 중국 쿤밍에서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개최되었다.
숨 가쁘게 이어진 움직임들을 연결시켜보면 지금 이 순간이 기후, 생태, 보건, 경제, 사회 문제가 총수렴되고 있는 문명사적 위기 상황 ― 진부한 상투구가 아니라 ― 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문제가 유의미하게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30년, 짧으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명백해졌다. 이 작은 기회의 창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내가 이 책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만 국한하여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2050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우리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업이지만, 이것을 지구행성이 처한 총체적 난국생물다양성 상실, 생태계 붕괴, 6차 대멸종, 담수 부족, 토지훼손, 산림파괴, 유해 화공물질 등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그중에서 수치로 표현하기가 용이하고 체감도가 높은 위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후문제와 생태문제가 얽혀 있는 ‘기후―생태 복합위기’를 함께 극복하겠다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2050 탄소중립’과 ‘2030 생태계 회복’ 및 ‘2050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탈탄소 에너지 전환과 함께,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 삶의 방식과 경제운용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와 친환경제품에 필요한 광물자원을 대규모로 채굴하면서 전세계 빈곤국들의 환경이 크게 훼손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이미 생물다양성 상실과 자연훼손 문제를 놓고 탄소중립과 같은 차원의 책임을 국가와 기업에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생물다양성 상실과 관련된 투자, 조달, 개발, 생산, 복구, 재생 등에 대해 기업이 수행한 실적을 공개하고 실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과 실행들이 논의되고 있다. 조만간 국가와 기업은 탄소중립을 하라는 압력만큼이나 강력한 자연보전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둘째, 기후―생태위기가 한쪽에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불평등, 인권박탈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함께 커지고 있다. 기후―생태위기와 불평등―인권악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으로 맞물린다. 세계 인권학계는 환경과 인권의 심층적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에코사이드생태살해와, 인간계를 대규모로 극심하게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가 그물망처럼 연계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에코사이드를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차원에서 다스려야 한다는 인권―환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노사이드,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에 이어 에코사이드 범죄 역시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생태위기를 인간과 자연의 파멸에 관한 최악의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환경문제를 자연과학, 경제활동, 환경정책, 개인 실천의 차원에서 보는 방향과는 결이 다른 시각이다.
인권과 환경을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 문제로 보거나, 심지어 이 둘을 상반되는 가치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생태환경과 인권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권, 사회정의, 기후정의, 환경정의, 생태정의는 큰 틀에서 함께 이해해야 하는 개념들이다. ‘중첩된 불의’를 모두 포괄하는 ‘지구행성 정의’planetary justice라는 개념도 나와 있다.
셋째, 인간의 권리가 기후―생태위기를 악화시킨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는 비판을 공정하게 검토한다. 특히 재상권이나 인간중심적 관점이 생태환경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추적한다. 그것을 통해 인권개념을 재구성하고, 그것에 더하여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론을 긍정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말은 권리의 범위를 비인간 실체로까지 확대하고, 인간의 권리 중 일부를 과감하게 축소·조정한다는 뜻이다. 기존의 인권개념에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권리가 존중될 때 인권도 보호될 수 있고, 인권이 있어야만 자연의 권리도 보호될 수 있다. 나는 인권학자로서 반성문과 변호문을 함께 제출할 것이다.
넷째, 기후―생태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 시스템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작금의 위기는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갈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사회―생태전환을 위해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측면들경제성장, 불평등, 소비, 지속가능, 노동, 녹색복지 등을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풀어내고, 그 과정에서 인권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제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생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시민들이 문제의 본질을 알아야 하고, 토론해야 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을 위해 필요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제공하려 한다. 나는 전작 『탄소 사회의 종말』에서 사회 모든 구성원들 사이에 ‘거대한 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한 대화의 마중물로 이 저작이 활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 ‘사회·인권·정의’ 담론과 ‘생태·환경·녹색’ 담론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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