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술의 힘
우리의 발명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재발명된 세상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인간의 삶은 불과 한세기 전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이유의 많은 부분은 그사이에 발명된 기술들 때문이다. 한때 확고하게 지상에 묶인 존재로서, 육상에서는 다리와 바퀴로 이동하고 물을 가로지를 때는 배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 이동하고 있고 매일 8백만명 이상이 공중에 떠서 몇시간을 보내며 종횡으로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다. 만약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의 창업자인 리처드 브랜슨이 세계 최초의 상업적 “우주항공사spaceline”를 만드는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면, 조만간 보통 사람들은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신 역시 시간과 거리의 족쇄를 깨뜨렸다. 내가 인도를 떠난 1950년대 중반에, 내가 태어난 콜카타에서 가족이 정착한 뉴욕주 스카스데일까지 편지를 보내고 받으려면 3주가 걸렸다. 우편은 안정적으로 도착하지 않았다. 우표가 뜯겨나가고 소포가 분실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미국 동부에서 밤에 전자우편 메시지를 보내면 유럽이나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되는 아시아의 친구에게서 즉각 답장이 날아온다. 페이스북은 한두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전세계적으로 10억명이 넘는 사용자들을 연결해준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으로, 우리는 인간 유전체의 해독과 새로운 인공재료의 세계를 창조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생물과 무생물의 비밀을 알아냈다.
속도, 연결성, 편리함은 중요한 것이지만 지구상의 70억 인구 대다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다. 여기서도 한세기 동안 가속화된 기술적 발명이 우리를 변화시켰다. 노동은 더 안전해졌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기와 물은 눈에 띄게 더 깨끗해졌다. 사람들의 수명은 현저히 길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세계적으로 “1955년 출생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48세에 불과했지만 1995년에는 65세로 늘어났고 2025년에는 73세에 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술혁신이 이러한 경향을 설명해준다. 위생 개선, 식수, 백신, 항생제, 더 풍부하고 건강에 좋은 식품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여행, 오락, 다양한 식품, 그리고 무엇보다 향상된 보건의료를 점점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단지 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더 즐기고 있다. 만약 사람들에게 1916년에 살고 싶은지 2016년에 살고 싶은지를 물어본다면, 오늘날 백년 전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설사 백년 전의 세계가 전쟁으로 유린당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일각에서 2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에 더해, 지난 세기의 기술진보는 부유한 국가들을 지식사회의 지위로 밀어올렸다. 우리는 사람들의 유전자 구성, 사회적 습관, 구매 행동에 관해 전례없는 양의 정보를 갖고 있거나 가질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러한 데이터는 새로운 형태의 상업과 집단행동을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의 인구조사국은 더 이상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가 아니다. 구글이나 야후 같은 검색 엔진 역시 데이터를 열렬히 탐하는 수집가로서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심지어 개인들도 핏빗Fitbit이나 애플워치 같은 장치를 써서 자신의 일상활동에 관해 많은 양의 정보를 추적하고 기록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예전에는 비교가 불가능했던 형태의 데이터를 결합할 수 있도록 했고, 물리적·생물학적·디지털 기록들 간의 유용한 수렴을 창출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사람에 관해 알고 있는 내용은 더이상 키, 몸무게, 인종, 머리색 같은 신체적 기술자技術者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사람들을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몇가지 고정된 표지로만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생물 측정 정보가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여권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모든 사람에게서 수집된 지문과 홍채 스캔으로 얻어진 정보와 연결될 수 있다. 애플은 2010년대 들어 숫자 비밀번호를 대신해 좀더 큰 보안을 제공하고자 자사의 스마트폰에 디지털 지문센서를 포함시켰다.
컴퓨팅 능력의 기하급수적 성장이 촉발한 정보의 폭발은 이제 경제적·사회적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 인터넷은 사람들이 전례없는 정보자원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여러 층위에서 민주주의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새로운 약과 치료법을 탐구하려는 환자, 안정적 시장에 판로를 개척하려는 소상공인, 지역 문제에 관한 지식을 모으고 당국에 조치를 취해달라고 압박하려 애쓰는 시민들 등이 그런 예다. 첨단기술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이 정보의 흔적을 남기며, 이를 통합하면 사람들의 인구통계학적 특징이나 심지어 그들이 암암리에 품고 있는 욕구에 대해서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상을 그려낼 수 있다. 의료 환경에서 상업적 환경에 이르기까지 ‘빅데이터’ 개념은, 사람들이 무엇을 학습할 수 있고 정보가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거나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상상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많은 정부들이 당장 깨닫고 있는 것처럼 이 시대에는 지식 자체가 점점 더 귀중한 상품이 되었다. 다른 희귀한 천연자원과 마찬가지로 채굴되고 저장되고 개발될 필요가 있는 상품 말이다. 빅데이터 시대는 사업 기회의 새로운 지평이며, 젊은 기술기업가들은 새로운 골드러시를 추동하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은 새롭고 풍족한 데이터 원천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놀라운 기회를 제공한다. 에어비앤비Airbnb나 우버Uber는 개별 가정이나 자동차의 미활용 공간을 이용해 이런 자산의 소유주들 중 자발적인 이들을 호텔 경영자와 택시 운전사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공유경제가 작동하면 모두가 이득을 본다. 미활용 공간이 실제로 쓰이고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좀더 낮은 비용으로 더 효율적으로 충족되기 때문이다. 호텔 숙박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가족들은 은행계좌를 거덜내지 않고도 꿈같은 휴가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우버나 집카Zipcar 같은 기업들은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수를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고, 그리하여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기체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발전 중 많은 것들은 심지어 경제가 낙후된 세계의 지역들에도 희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실로 기술과 낙관주의는 서로 잘 부합한다. 양자 모두는 열려 있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이용해 현재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약속한다.
그러나 기술문명이 그저 장미꽃밭 같은 것은 아니다. 발명의 매혹적인 약속들을 상쇄하는 세가지 어렵고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있다. 이 문제들은 이 책에서 앞으로 다룰 내용에 기본 틀을 제공할 것이다. 첫째는 위험, 그중에서도 잠재적으로 엄청난 재난을 낳을 수 있는 차원의 위험이다. 오늘날 인류가 실존적 위험 ― 지구상의 지적 생명체를 절멸할 수 있는 위험 ― 에 직면해 있다면, 이는 우리의 삶을 좀더 쉽고 즐겁고 생산적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 혁신들 때문일 것이다. 특히 화석연료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지구를 점점 더워지도록 만들었고, 날씨 패턴, 식량공급, 인구 이동에서 보이는 엄청나게 파괴적인 변화들이 불편할 정도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다. 전면 핵전쟁의 위협은 철의 장막이 무너진 이후 다소 약해졌지만, 파멸적인 국지적 핵 충돌은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에 남아 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전염병 관리 노력은 다루기 힘든 항생제 내성 미생물 균주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증식하면 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다. 1980년대에 영국이 처음으로 겪은 “광우병” 위기는 부실하게 규제된 농업 관행이 동물 및 인간의 생명활동과 상호 작용해 질병을 퍼뜨릴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방식의 심각한 예고편을 보여주었다. 건강과 환경에 대한 위험이 우리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지만, 또한 혁신은 일을 하고 사업을 운영하던 오랜 방식을 교란하면서 뒤처진 사람들에게 경제적 위험을 안겨준다. 우버에 대한 택시회사들의 격렬한 반대 ― 특히 유럽에서 볼 수 있는 ― 는 최근 내가 심야시간에 택시를 타고 가다 들은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멸종위기종이라는 우려 말이다.
끈질기게 남아 있는 두 번째 문제는 불평등이다. 기술의 이득은 여전히 불균등하게 분배되며, 심지어 발명은 일부 간극을 더 넓힐 수 있다. 기대수명을 예로 들어보자. 2013년 유엔 세계사망률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기대수명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출생할시 77세가 넘지만, 최빈국들에서는 겨우 60세에 그쳐 17년이나 차이가 난다. 유아사망률은 1990년에서 2015년 사이에 극적으로 낮아졌지만, WHO의 추산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유아사망률은 유럽보다 거의 다섯배나 높다. 자원 이용 패턴도 비슷한 차이를 보인다. 빈곤 근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정부단체 월드 파퓰레이션 밸런스World Population Balance는 2015년에 평균적인 미국인이 평균적인 인도인에 비해 17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보고했다. 인터넷과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미 인구조사국은 미국 내에서 고속 데이터통신망 접근성에 큰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매사추세츠주洲에서는 그런 연결망을 갖춘 가정이 80퍼센트에 달하지만, 미시시피주에서는 60퍼센트를 밑돈다. 동일한 기술을 캔자스에서 카불까지 세계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지, 얼마나 많이 버는지,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는지, 생업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그런 기술을 다르게 경험한다.
세 번째 문제는 자연nature, 좀더 구체적으로는 인간 본성human nature의 의미 및 가치와 관련돼 있다. 기술 발명은 연속성continuity을 뒤엎는다. 이는 우리가 누구인지뿐 아니라 우리가 지구상에서 다른 생명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도 바꿔놓는다. 이런 면에서 변화는 항상 이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한세기가 지나도록,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서 미국의 환경주의자 빌 매키번에 이르는 저술가들은 우리가 탈자연화된 세계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능력을 상실했다고 한탄했다. 기술에 의해 기계화되고 탈주술화된 세계, 그리고 진보의 중단 없는 전진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세계에서 말이다. 탈주술화의 지평은 계속 확대되어왔다. 끝이 없는 새로운 발견들, 특히 생명과학기술에서의 발견은 인류가 자연과 인간 본성을 조작 가능한 기계로 변형할 수 있는 자기형성과 통제라는 각본을 완수하도록 유혹한다. 오늘날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심층생태론자들은 자동차나 화학물질처럼 가장 널리 보급된 발명들 중 일부가 없는 시절로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생태활동가 폴 킹스노스가 설립해 이끌고 있는 영국의 다크마운틴프로젝트Dark Mountain Project는 “생태학살”ecocide의 악몽, 그러니까 산업화된 인류가 “나날이 커지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지구상의 많은 생명을 파괴하는” 것에 맞서 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작가와 창의적 예술가 집단은 인류를 덜 파괴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예술과 문학을 통해 “비문명”uncilvilization을 촉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다른 비평가들은 기술진보의 좀더 즉각적인 결과가 공동체의 파편화와 상실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인간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사회적 유대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미국이 “나 홀로 볼링”을 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사람들이 교회나 시민활동에 참여하는 대신 집에 머무르며 텔레비전을 보는 나라이고, 평등과 재정적 독립을 열망하는 여성들이 어머니 역할, 교사직, 그 외 공동체 중심의 직업들을 버리고 법률사무소나 기업 이사회의 고임금 직종들로 옮겨간 곳이다. 소셜미디어로 점점 더 다양한 공동체들과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오늘날의 20대들에게 그런 주장은 터무니 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MIT의 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오늘날의 미국 젊은이들을 “다 함께 홀로” 사는 존재로 그려낸다. 스마트폰이나 그 외 통신기기들의 개인적이고 고독한 세상에 빠져 있고, 여기에서 벗어나 의미있고 다차원적인 현실 세계와의 연결을 형성할 수 없는 존재로 말이다.
요컨대 기술은 지난 수십년 동안 엄청난 진보를 거듭해왔지만, 그러한 발전은 좀더 깊은 분석과 현명한 대응을 요청하는 윤리적·법적·사회적 곤경들을 낳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위험에 대한 책임일 것이다.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에서 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예견하거나 미연에 방지할 임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는 위해를 예측하고 방지하는 데 필요한 도구와 수단을 갖추고 있는가? 불평등 역시 시급한 일군의 질문들을 제기한다. 기술발전은 기존의 부와 권력의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혁신이 그러한 격차를 더 벌려놓지 않도록 어떤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우려들은 자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본성에 대한 도덕적으로 중요한 믿음이 허물어지고 있음에 초점을 맞춘다. 기술발전은 소중한 경관, 생물다양성, 그리고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전자변형, 인공지능, 로봇공학 같은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인간됨의 핵심 가치를 위협할 잠재력이 있다. 이 모든 우려를 가로지르는 것은 기술의 물질적·환경적 위험을 규제하기 위해 주로 고안된 제도들이 발명의 윤리를 충분히 심사숙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실용적 질문이다. 우리가 맺고 있는 기술, 사회, 제도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그러한 관계가 윤리, 권리, 인간 존엄성에 던지는 함의를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표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