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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는 고기가 되는 게 무서워 시장에서 도망쳤다.
누군가에게 고기로 먹히는 것보다 배고픈 떠돌이 생활이 낫다고, 나한테도 되도록 빨리 시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송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시장을 떠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지는 않았다. 어떤 미련이나 책임감 때문이라고 하면 송이는 분명 비웃으며 말할 것이다.
“너는 아직도 사람에 대한 희망이 있구나.”
송이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 나도 시장을 떠날지도 모른다. 스스로 떠나지 못한다면 아마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장을 지켜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은 없었다. 숨 쉬고 있는 것부터 죽은 나무까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있었다. 사람들은 필요하거나 필요치 않은 물건까지 양손이 넘치도록 사들고도 시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장사치들의 수완과 입담에 혹하거나 새로운 물건에 넋이 빠진 사람들, 기어이 미로에 갇히고도 벗어나길 원치 않은 사람들로 인해 오일장은 언제나 사월의 논바닥처럼 시끄러웠다.
시장의 형태는 급조된 슬레이트집과 간이 천막, 파라솔로 이루어졌다. 무질서하게 자리 잡은 노점상들이 만든 길들은 좁고 질척하고 비슷해서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 없어 단골이 아니라면 헤매기 쉬웠다. 그러나 종일 입과 지갑 열리는 소리로 시끄러운 시장에도 나름의 질서는 있었다. 시장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과 가게 형태를 갖추고 있는 천막의 상인들은 거의가 시장의 터줏대감인 실세들이었다.
난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시장 경력에 따라 자리권이 보장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오일장마다 일찌감치 나와 좋은 자릴 맡거나 새로운 자리를 개척해야 했다.
가끔은 시끄럽고 냄새나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 이 시장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지만 나를 끔찍이 아끼는 명진, 그러니까 내 아빠 때문에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빠와 내가 비록 전혀 닮지 않았고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관계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애틋한 운명임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아빠와 내게 시장은 가혹하고 무서운 곳이면서도 풍요롭고 따뜻한 두 얼굴을 한 곳이었다.
아빠는 오늘따라 더 우울해 보였다. 할머니가 가져다준 점심도 거르더니 뭔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다가 응급약을 먹고서 잠에 빠져들었다. 응급약은 의사가 특별히 처방해준 것으로…… 이틀 이상 잠을 못 잤을 때만 먹는 약인데, 엊저녁 코까지 골아가며 잘 잔 아빠가 그 약을 급하게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큰 고민이 있다는 뜻이었다. 약을 빼앗을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가능한 일이라면 내가 아빠의 아내 또는 자식이 되어 아빠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나누고 싶지만, 나는 아빠가 아끼는 애완견일 뿐이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눈빛으로 말하고 위로하는 것만이 가능한, 다른 종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구의 생명체라는 것만 분명했다.
아빠와 나, 둘이 산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모란시장의 가장 깊숙한 속살을 보았고, 덕분에 시장에서 우릴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장의 힘은 시장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나눠 가졌다. 아빠만 예외였다. 아빠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기에 시장에서 견제받지 않았다. 아무도 아빠를 경쟁자로 바라보거나 실세라고 생각지 않았다. 시장의 구성원에서 전혀 필요치 않은 사람이고 게다가 오래전부터 정신질환자로 알려져 누구도 아빠한테 말을 걸거나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빠와 나는 이 시장에서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죽은 나무보다 못한 존재였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그러나 영원히 열어보고 싶지 않은 창고 속의 손대기 불편한 물건과 같았다.
어쨌거나 아빠는 초저녁에 약을 먹고 잠이 들었으나 밤 열 시가 넘어야 깨어날 것이었다. 나는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시장을 내다보다가 결심했다. 아빠가 혼자서는 절대로 시장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종일 방 안에만 갇혀 있었더니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밖에서 똥을 누고 싶었다. 요즘은 아빠의 마사지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 시원하게 똥을 눈 지 오래되었다. 시장 가운데로 흐르는 탄천으로 가 뛰어다니면 시원하게 볼 수도 있을 듯싶었다. 그러려면 혼자라도 나가야 했다.
나는 죽은 듯 잠을 자는 아빠를 한번 쳐다보고는 방문을 밀었다. 문은 다행히 꼭 닫혀 있지 않아서 쉽게 열렸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쏜살같이 삼층에서 내려갈 수 있었다. 아빠와 나에게 하루 세 번 밥을 가져다주는 할머니는 문을 꼭 닫으라는 아빠의 잔소리를 매번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주 일층까지 내려갔다가 생각이 난 듯 다시 헐떡거리며 삼층까지 올라와 방문을 닫고 내려갔다. 그럴 때는 시장의 소음이 계단을 타고 올라와 낮잠을 방해하기도 했다.
오늘은 할머니 덕분에 아빠 몰래 혼자 저녁 산책을 나올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워해야 했다. 아빠 없이 혼자 하는 저녁 산책이라 약간의 무서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서움이 다섯 평 방 안에 종일 갇혀 사는 지루함에서 탈출하는 설렘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도 어쩌면 할머니의 깜박하는 버릇을 반가워해야 할 일이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빠의 병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고 수면제를 먹는 양도 점점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층으로 내려선 뒤 잠깐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살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만 보면 무조건 ‘큰일 나! 얼른 올라가!’ 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삼층에서 그것도 아빠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꼴을 못 보았다. 물론 내가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몰라서 그런다는 것은 알지만, 할머니의 그 쉬어 터진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영 언짢았다. 그럴 때면 심술이 나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오줌을 싸놓고 도망치곤 했다.
사실 아빠가 나 말고 가장 믿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어두컴컴한 반지하에서 가족들과 살았다.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빠와 나의 끼니를 챙겼다. 어찌나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오는지 할머니가 정말 지하실에서 만든 음식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할머니 주방을 본 적은 없지만, 그 시커먼 지하실에서 만든 음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림새 또한 조화로웠다.
그러나 아빠는 할머니 음식에 대해 이렇다 할 표현을 하지 않았다. 비닐봉지 속에서 꺼내주는 맛도 향기도 없는 내 밥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데, 아빠는 밥을 먹을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먹었다. 아빠는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이지 배가 고프거나 음식을 탐해서 먹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그런 표정으로 밥을 씹을 때마다 불안했다. 아빠는 분명 서너 숟갈만 뜬 뒤 밥상을 물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남긴 음식은 모두 쓰레기가 되었다. 같은 음식은 두 번 다시 먹지 않는 아빠의 식성 탓이었다. 아까운 생각이 들어 가끔 아빠의 밥상을 기웃거려보지만, 아빠는 기껏해야 고기 몇 점 내 밥그릇에 놓아주고는 밥상을 문 쪽으로 밀어놓았다. 내게 주는 것이 아까워 그런 게 아니라 비만이 걱정되어 그런다고는 하지만, 아빠가 남긴 그 많은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걸 보면 아빠는 애당초 음식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먹는 것이라면, 아빠에게 밥은 한 주먹의 약과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 아빠랑 밖에서 내 또래 친구들을 본 적 있었다. 그때는 아빠가 웬일로 시장을 벗어나 산 쪽을 향해 한참 동안 걸었는데, 가는 중에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산에서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빠와 나를 보고는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렸다. 나하고 비슷하게 생긴 그들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이상하고 무서웠다. 아빠는 그들이 떠돌이 개이고 배가 몹시 고플 것이라고 했다. 이빨을 드러내며 무섭게 짖는 것은 사람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 때문이라고, 떠돌이 개의 운명은 이미 누군가의 손에 달려 있어 곧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고도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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