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전 저희 이야기, 그러니까 전 안 괜찮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다들 몰라요. 모르는 게 맞아요.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 다 포장해놨으니까. 취직할 때도 괜찮은 척할 수밖에 없어. 괜찮은 척 되게 잘하게 되는 거야. 제가 천안함 생존자라고 하면 이젠 괜찮냐고 이야기해요. 괜찮다고 대답해요. 그럼 대단하다고. 실은 괜찮은 척하는 거야. 다들 똑같을 거야. 다들. 생존장병 C
천안함 사건은 제게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주제였습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그 사건을 활용하고 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하건 ‘너는 어느 편이냐’부터 묻는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 첨예한 ‘정치적’ 사건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천안함 사건을 과거의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생존 장병들이 모두 치료와 보상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요. 천안함 사건을 이용하는 정치인과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생존장병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괜찮은 척 스스로를 포장해야 했지요. 그렇게 해야만 생계를 위한 직장을 구할 수 있었고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2018년 한겨레 신문과 함께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전역한 36명의 생존장병 중 24명이 설문 조사에 참여해주었고 7명이 심층 인터뷰에 응해주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8년이 지났지만 생존장병들은 고통과 고립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생존장병 83.3%20명/24명가 ‘천안함 폭침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라고 답했고,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나는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지내고 있다’라고 답한 이도 45.8%11명/24명에 달했습니다. 그렇게 생존장병들의 삶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아직도 진행중이었습니다.
연구를 마무리하자 그제야 시작되는,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들
천안함 생존장병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저는 2016년 4·16 세월호 참사 특조위에서 발주한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연구 과정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고통에 연대하려는 이들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고통을 심도 있게 연구하길 바라지 않았으니까요. 충실한 연구를 하기에는 일정도 촉박했고 비용도 터무니없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웠던 점은 참사 생존자들이 가지고 있던 연구자들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2016년 1월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년 반이 넘게 지난 때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참사 피해자들은 정부에 대한 믿음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피해자들을 생떼를 부리며 자기 이권을 더 챙기려는 탐욕스러운 집단처럼 취급했습니다. 생존학생과 그 부모들에게 그런 정부가 발주한 용역 연구 책임자인 제가 믿음직스러울 리 없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보며 그동안 뭐하다가 이제 와서 연구를 하겠다고 하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일면 당연했습니다.
연구를 시작하고 첫 한 달간 단원고 후문 근처에 원룸을 얻고 살면서 매일같이 피해자들과 그 주변 사람을 만나려 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생존학생과 그 부모를 만나 그 목소리를 기록하고 정리한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신뢰를 쌓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해보려 했던 것이지요. 놀라울 만큼 헌신적이었던 공동 연구원 교수님들과 연구 보조원 학생들의 힘으로 겨우 최종 보고서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연구를 끝내고 나자, 그제야 시작되는 정말로 중요한 많은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현장에서 피해자와 연대하던 사람들이 느끼고 배웠던 경험들, 공식적인 보고서로 담기 어려운 그 암묵지를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깊은 슬픔과 분노가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는 근본적인 힘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기록과 분석을 통해 대안을 내놓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그 힘은 더 나은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시적인 사건에 불과한 것이 될 테니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한겨레 21』에 연재했습니다. 안산 지역에서 참사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의 가족들과 함께 활동했던 사회복지사분을 만나고, 세월호 참사 사망자 신원 확인을 위해 시신을 부검했던 법의학자를 찾아가고, 단원고에서 스쿨닥터로 일했던 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경험과 노력을 기록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2018년 초여름 연재 작업을 함께하고 있던 정환봉 기자가 제안을 했습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연구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월호 연구가 끝나고 마음이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그 제안으로부터 도망갈 마땅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천안함 사건은 무엇인가요
천안함 생존장병 연구를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2020년 11월이었습니다. 한 천안함 생존장병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상이연금을 받기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는데 자신의 상태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없기에 제가 책임 연구원으로 2018년 진행했던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 보고서를 받아보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런 재정적 지원 없이 사비로 급하게 연구를 진행해야 했고, 그 연구 결과를 담은 공식 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생존장병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죄송하다고, 신문기사 외에 보고서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장을 쓰며, 이 연구를 담은 책이 세상에 나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에 대해 책을 쓴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떤 말을 하건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다가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았습니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 후, 밤늦은 시간 이렇게 4월 16일을 보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다가 갑자기 어떤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4월 세월호 생존학생과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형제자매가 증언을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때 참사로 오빠를 잃은 한 여학생이 소극장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저희 오빠가 죽은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 2018년 실태조사 당시 심층 인터뷰에 응했던 7명의 생존장병들에게 메일을 보내 제가 쓰는 책에 인터뷰 내용을 사용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에 흔쾌히 동의해준 5명의 생존장병이 있어서 이 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설문 조사 결과와 심층 인터뷰를 분석하고 계속 책과 논문을 읽었지만 제 공부로는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이 계속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18년 실태조사를 진행할 당시에는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저를 포함한 연구팀에 신뢰가 없었기에 중요하지만 예민한 질문들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생존장병에게 진보 진영은 ‘천안함 좌초설’ 같은 당황스러운 주장에 동조할 뿐, 자신들이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생존장병들이 한겨레 신문사는 물론이고, 세월호 참사나 성소수자 건강같이 진보 진영의 관심사로 분류되는 사안을 주로 연구했던 저를 신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당시 연구팀은 생존장병에게 연구팀의 진심과 목적을 설명하고 편지를 쓰는 일을 반복하고 나서야 분석에 필요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2021년에는 상황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2018년 실태조사가 널리 알려지면서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생존장병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경험을 통해 천안함 생존장병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세상과 나누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러 모임이 진행되었고, 저 역시 2020년 11월에는 천안함 생존장병의 국가 유공자 지정과 PTSD 치유에 대한 국회 포럼에 초청되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최원일 천안함 함장의 전역도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021년 2월 전역한 그는 “나는 정권도, 진보·보수도 아닌 천안함 생존장병 편”이라고 말하며, 그동안 숱한 오해의 대상이 되었던 천안함 사건을 두고 인터뷰와 기고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5월 최원일 함장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3년 전 연구에서 묻지 못했던 것들을 질문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인터뷰 자리에 함께하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생존장병 2명의 이야기도 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안종민 천안함 전우회 사무총장은 같은 해 8월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어주었고, 덕분에 상이연금과 국가유공자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더욱 정확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한국 사회의 ‘태도’를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떠올리면, 2010년 3월 26일 9시 22분 서해바다에서 폭침으로 가라앉은 배와 순직한 46명의 군인을 먼저 떠올립니다. 수많은 언론기사와 책들은 그날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가라앉은 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에는 살아남은 58명의 군인도 타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폭침에서 살아남은 생존장병들이 그 이후 10여 년 동안 겪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저는 천안함 사건이라는 렌즈로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의 취약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쉽게 답할 수 없지만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해줍니다. 저는 우리가 그 예민한 질문들을 직시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