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아우에게.
편지는 잘 받아보았다. 답신이 늦어서 미안하구나.
내 건강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치료를 받을 생각이 없단다. 나을 확률이 얼마가 되건 상관없다. 부작용이나 위험 때문만도 아니다. 내 상태는 나의 일부다. 바꿀 마음이 들지 않는구나.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신경 쓰지 마라. 그분들은 늘 내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씀하시지. 서른 해를 살아낸 뒤에도 믿음을 바꿀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다. 오히려 내가 하루 더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야말로 때가 되었다는 확신만 커지는 것 같다.
물론 특수기면증 환자들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고, 쉽게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판단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의식을 잃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이 지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생활주기를 맞추는 것이 다소 힘들 뿐이다.
이 섬에 온 뒤에도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쓰던 것과 같은 상자를 제작했다. 나무를 잘라 사람 하나 딱 누울 만한 크기로 짜고, 창문과 숨구멍을 만들어두었다. 나는 시간이 되면 상자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건다. 의식을 잃은 동안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다행히 이곳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기벽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안에서 명상이라도 하는 줄 안다. 내가 그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최소한 대여섯 시간은 깨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기면증을 전염병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기에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내 병은 전염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 중 천 명에 한 명은 이런 증상을 갖고 태어난다. 증상이 가벼운 아이들과 자신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을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기절할 때마다 영원히 다시 깨어나지 않을까봐 염려하신다. 기절하면 깨우고, 다시 쓰러지면 또 흔들어 깨우기를 반복하셨다. 어렸을 땐 더욱 심하셨고, 그럴수록 나는 더 자주 기절했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제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을 만큼 쇠약한 아이였다. 머릿속은 안개로 가득 찬 것 같았고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었다. 수시로 환각이 침범해 왔고 곧잘 신경이 예민해져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기절하는’ 의식을 시작한 것은 우리 집에서 잠시 머물렀던 밥하는 아주머니의 영향이다. 배운 것은 없지만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분은 어린 시절에 천식을 앓았고 병과 함께 사는 법을 아셨다. 병과 싸우지 말라고 하셨다. 병은 성질이 나쁜 친구니, 함께 살아갈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그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도 다른 기면증 환자들처럼 일찍 죽었을 것이고, 이 나이까지 살았다 해도 정상적인 정신과 몸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은 내가 기절하도록 내버려두셨다. 여섯 시간이고 여덟 시간이고 기절한 동안은 깨우지 않으셨다. 이 사실을 안 부모님은 난리가 나셨다. 아동학대로 신고하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나는 건강해졌고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는 밖에 나가 운동할 수도 있게 되었고, 의식을 잃는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도 그즈음에야 알았다.
부모님은 지금도 내가 규칙적으로 의식을 잃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신다. 내가 상자에 들어갈 때마다 창피해하신다. 수시로 나를 붙들고 ‘포기하지 마라. 너는 나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집을 떠나와 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분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도 변함이 없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내 방법을 다른 기면증 환자들에게도 추천하는데, 언제나 그들의 부모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의식을 잃도록 내버려두라고 하면 대부분 경악한다. 하지만 내 방식을 따라 한 환자들은 대부분 건강해졌다고 답신을 보내온다.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내 생각이지만, 아마 내 말을 믿지 않고 몰래 아이를 깨우곤 했을 것이다. 죽은 듯 보이는 아이를 몇 시간이고 참고 지켜볼 수 있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기면증 환자의 대부분이 지능이 낮다고 한다. 헛소리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몇 년을 연구해보았자 평생 기면증 환자로 산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알지 않겠느냐. 기면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그들이 기면증에 저항하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을 잃을 필요가 있는데, 치료는 늘 이를 막는 쪽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면증 환자가 정신분열 증세를 보인다고 소개하는 책도 있다. 기절하는 동안 나타나는 기괴한 환각 때문에 그런 해석이 나온 것 같다. 그에 관해서는 나도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지만, 역시 깨어 있는 동안에는 나타나지 않고, 그 환각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이 네게는 생소할 것이다. 이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부모님도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들은 네게 언제나 내 정상적인 부분, 다른 사람과 같은 부분만을 보여주고 말하기를 원하셨다. 내가 의식을 잃은 모습을 네게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셨지. 그게 네게 도움이 되리라 믿으셨고, 어떤 면에서는 그분들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에 관한 문제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 너는 자신을 닮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세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에겐 스승도 제자도 없으며 동료도 소속할 곳도 없다. 일생 스스로를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에게 맞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너는 나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싸우며 살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기면증과 싸우다가 몸과 뇌를 완전히 망가뜨리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내 입장에서 ‘낫는다’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니 아무 상관도 없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병일 뿐이잖아요.”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나. “나으려고 하는 게 뭐가 이상하죠?”
낫세포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겠지. 적혈구 기형인 이 세포는 심각한 빈혈을 유발하지만, 이 병이 생겨난 지역의 열병에 대처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라고 한다. 나는 내 문제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한다. 어떤 환경적인 문제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증상을 가진 사람이 이토록 많을 리가 있겠느냐.
주기적으로 의식을 잃는 것이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너는 물을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효율적이지 않다. 의식을 잃은 동안 나는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없다. 남들이 공부를 하고 자기 개발을 하는 동안 나는 기절한 채로 보내야만 하니 말이다.
의식을 잃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다. 네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환각도 좋아한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구나.
어린 시절에 나는 늘 어딘가에는, 기면증 환자들로 가득 찬 세상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서로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웃으며 기절하고, 기절하는 시간에는 서로에게 ‘잘 기절하라’라고 인사를 나누고, 깨어나면 ‘잘 기절했느냐’라며 안부를 물을 것이라 생각했다. 웃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지금도 진지하게 그리 생각한단다.
나는 이 섬에서 동굴을 연구하고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세상이다. 한 발짝 더 들어갈 때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침묵과 고독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어둠의 세계가 얼마나 생명력과 활기로 시끌벅적한지 알면 너도 놀랄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눈도 색깔도 없는 도롱뇽을 발견했다. 무색투명해서 몸 안의 뼈와 내장이 들여다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신묘한 생물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눈이 없는 새도 한 종 찾아내었다. 눈처럼 보이는 부분은 검고 딱딱한 껍질뿐이다. 깜박이지도 않고 초점이 없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것처럼 보인다.
내가 어둠을 사랑하는 줄을 너도 알 것이다. 아마도 내게 어둠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나는 의식을 잃었을 때 작은 빛만으로도 쉽게 깨어나기에, 필요한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고 기절하기 위해서는 어둠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는 부모님께는 하지 말아주렴. 내가 상자 속을 어둡게 해놓는다는 사실을 아시면 아마 부모님은 또 화를 내거나 우실 테니까.
내가 요즘 관심을 갖은 것은 동굴 입구 근처에 사는 동식물이다. 이곳에는 빛이 들어서 동굴 안쪽보다 훨씬 다양한 생물군이 산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아주 특이한 생물군을 발견했다.
이곳의 식물은 하루의 절반은 꽃을 피웠다가 절반은 시든다. 잎도 만개했다가 접는다. 마치 하루의 반은 완전히 생명활동을 멈추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식물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토록 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나는 동굴 입구에 사는 동물들의 거주지 근처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들이 나처럼 기면증을 앓는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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