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만성중독자에서
중독을 연구하는
뇌 과학자가 되기까지
스물두 살이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된 약물 거래에서 이득을 본 측이었다. 1985년 어느 겨울 꼭두새벽, 플로리다의 이름 없는 식당 뒤편에서 딜러는 나와 친구에게 엉뚱한 봉지를 건넸다. 중서부 어딘가에 사는 친구의 친구에게 전달하기로 했던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약물을 손에 넣게 된 내가 이 거래의 ‘승자’였다.
당시 노숙자 신세였던 친구와 나는 디어필드 비치의 싸구려 모텔에 체크인 했다. 예상했겠지만 우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에 더해 새로 획득한 이 잉여분의 약물까지 모두 사용했다. 흥청망청 사용한 끝에 쟁여두었던 물량도 바닥을 드러냈고, 둘 다 진이 빠지고 예민해지자 친구는 뜬금없이 우리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한 양의 코카인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약에 압도된 상태에서도 이 예언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중독자라면 그러하듯, 나 역시 약에 취해 ‘고양감’을 느끼던 나날은 이미 지나간 상태였다. 나의 약물사용은 충동적이었고, 황홀한 감각을 경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현실도피 목적이 더 컸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이미 오랜 기간의 삽질을 통해 깨달았다. 궁극적인 도피, 즉 죽음만이 내 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사실 그 또한 내게는 그다지 대단한 일처럼 와 닿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6개월 뒤, 딱히 개인적인 통찰이나 의지력 덕분이 아니라 그저 일련의 환경적인 요인들 덕분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약에 찌들지 않고 정신이 맑아져 이전만큼 멍하지는 않은 상태가 되었다. 나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전처럼 내 정신질환과 손잡고 이 녀석이 가차 없이 나를 갉아먹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찾을 수도 있었다.
내 경험상 이와 같은 타락과 갱생의 갈림길을 마주한 이들 중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이는 아주 극소수였고, 나도 처음에는 다수와 같은 길을 갔다. 약을 끊은 대가는 너무나도 커보였다. 아니, 약이 없다면 뭘 위해 산단 말인가? 하지만 나를 약물중독에 빠지게 했던 것에 버금가는 집요함으로 고민을 거듭한 결과, 어쩌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껏 수많은 난관을 잘 헤쳐 나왔다. 폐건물이나 경찰서에서, 장전된 총구가 겨누어졌든 그렇지 않든 모두 우호적이거나 익숙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좋지 못한 거래들이었다. 그러다 중독의 의학적 모형을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내 질병이 손 쓸 수 있는 생물학적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약물을 사용하면서 생긴 문제들을 없앨 수 있도록 중독을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벌써 세 군데나 되는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행동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독 행동의 신경생물학, 화학, 유전학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누군가의 눈에는 대단히 이례적으로 비칠 정도의 의지력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같은 성과는 자신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으며 그 밖의 모든 희생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대부분 중독자의 눈에는 별로 특별해보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치료센터에서 시작된 1년간의 극적인 변화를 포함하여 대학을 졸업하는 데 총 7년이 걸렸으며, 그 뒤로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7년이 더 소요되었다.
이 책은 내가 지난 20여 년간 중독의 신경과학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내용들을 요약해둔 것이다. 비록 내가 미국 국립 보건원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고 마약단속국DEA의 규제약물 사용 면허를 소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는 유감스러운 말을 전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약에 손을 대기도 전부터 갖고 있는 차이와 중독성 약물들이 우리의 뇌에 미치는 작용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공유하는 정보가 약물중독자와 가까운 사람들과 중독자의 보호자들, 그리고 공공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는 어쩌면 직접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는데, 약물 따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제법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독은 사회에 만연한 대재앙이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뇌 기능에 인공적인 변화를 주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자비 없는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을 다들 한 명쯤은 알고 있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번져 쉬이 수그러들지 않는 충동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거대해 거의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다. 미국에서는 12세 이상 인구의 약 16퍼센트가 물질사용장애 기준에 부합하며, 전체 사망자 수의 약 4분의 1이 과도한 약물사용으로 목숨을 잃는다. 매일 전 세계에서 만여 명의 사람이 물질남용 탓에 죽는다. 이 죽음의 길에는 기겁할 만큼 연쇄적인 상실이 따른다. 희망, 존엄성, 관계, 돈, 생식성, 가족 및 사회적 구조, 그리고 지역사회 자원의 상실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중독은 15세 이상 인구 다섯 명당 한 명이 겪는, 가장 가공할 만한 건강 문제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에이즈의 다섯 배, 암의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이 든다. 이 같은 수치는 곧 미국 전체 보건의료 지출 중 10퍼센트가 중독성 질병의 예방과 진단, 치료에 쓰인다는 뜻이며, 그 외 서구문화권 대부분의 통계도 이에 못지않게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 모든 비용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회복할 가능성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가 없다.
약물중독 문제에 이처럼 엄청나게 광범위하고 막대한 비용이 지속적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남용은 지리적인 특성이나 경제적 상황, 민족, 성별을 막론하고 몹시 흔하다. 또한 치료에도 저항성이 매우 높다. 확실한 추정치는 알기 어렵지만 대다수 전문가가 물질남용자 중에서 상당 기간 동안 물질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질병으로 치면 이 비율은 거의 독보적으로 낮은 편인데, 어찌나 낮은지 뇌암 생존율이 차라리 두 배 더 높을 것이다.
통계적 전망이 암울하기는 하지만 희망을 걸어볼 근거도 없지 않다. 분명 일부 중독자들은 한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었더라도 결국 중독물질사용을 중단하고, 중독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며, 나아가 생산적이고 행복한 삶을 산다. 신경과학은 이 같은 변화를 가져온 기제를 완전하게 파헤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문제의 원인에 관해서는 제법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령 중독이 유전적 소인, 발달 과정에 따른 영향, 환경적으로 제공된 요인 등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발생한다는 사실 같은 것들 말이다. 복합적이라고 한 이유는 이 각각의 요인 역시 매우 많은 변인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수백 개의 유전자와 셀 수 없이 많은 환경적 요소가 관여하며, 이 요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예컨대 DNA의 어느 특정 가닥은 특정한 유전자가 존재혹은 부재할 때, 발달 과정출생 전이든 후이든상 특정한 맥락에서 특정한 경험이 일어날 경우 중독에 빠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니까 중독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 같은 복합성 탓에 여전히 우리는 어떤 사람이 중독에 빠지게 될지 아닐지를 예측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경로는 중독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모든 강박적 사용의 기저에는 뇌 기능의 일반적인 원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는 목표는 이러한 원리들을 공유하여 물질 사용 및 남용을 영속하게 만드는 생물학적인 교착 상태에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핵심은 뇌의 학습 및 적응 능력이 사실상 무한하기에 뇌가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의 약물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약물로 고양된 시간이 이따금씩 정상적인 상태에 끼어드는 정도지만, 어느샌가 주객이 전도되어 ‘정상’적이었던 상태는 약물을 통해서만 일시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절박한 상태로 가차없이 변한다. 중독자 한 명 한 명의 경험 뒤에 숨은 기제를 이해한다면, 죽거나 장기간 중독물질을 끊는 것 감고는 물질에 노출되는 사이사이의 시간 동안 날카롭게 요동치는 욕구를 가라앉힐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아주 분명해진다. 병리적인 양상이 행동을 결정하는 시점에 이르면 대부분의 중독자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를 만족시키려 애쓰다 죽음을 맞이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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