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발아래 시체가 가득하다
땅만 보고 걷지 않았으면
알아챌 일도 없을 텐데
차
차를 영영 사지 말아야겠다
돈도 없거니와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밟고도
모를 것인가
가장 아름다운 소년
버스 기사
카아드으 맨날 안 가지고 타시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꺼?
버스 출발하고
비닐에 든 것이 쾅 넘어진다
지팡이 탁 떨어진다
앉으시소 출발합니더 일어나면 안 됩니더 앉으시소
아니이 맨날 카드 안 보여 주시잖아예 그래서 오늘 물어봅니다 그거 보여 주셔야 됩니더 예 알겠습니다 앉으셔야 됩니다
아기가 버스라도 깨끗이 반을 갈라 두 동강 낼 듯 운다
한 손으로 아기를 들고 있다 한 손으로 들기엔 너무 무거워 보이는데 아기는 짐승처럼 운다
예?
예? 만촌네거리예? 지났습니다 ― 여기 내려서 반대로 걸어가셔야 됩니다 ― 버스는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온 참이었다
아이가 운다
신생아는 한 시간 삼십 분마다 먹여야 된다고 했다
황금네거리를 지나 가구거리 웨딩거리 한복거리 문화의 거리 청춘의 거리를 지나 소라 드 벨라즈케즈를 보러 가는 길에 향수 냄새가 길 밖까지 나는 갤러리에 들렀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 돌아오는 길에는 거제도 냄새가 났다
그때는 왜
모든 것이 쉬웠을까
대구
바다도 아닌데 바다 냄새가 났다
새우
비릿한, 여름 저녁의 된장찌개 냄새
언니들은 왜 구두를 신을까 왜 공중전화에 매달려 살까
집에도 다 전화기가 있는데
아빠는 나에게 걸려 온 장우혁 닮은 사람의 전화를 끊었다
잘 들으세요
미성년자와 관계를 맺는 성인은
야 진짜 존나 크리피하지 않냐?
그때
그 애 열
다섯 살이었잖아 내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나의 완전한
로맨스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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