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치의 출현과 민주주의의 발명
정치의 출현:
목적론과 현실주의
우리는 지금부터 ‘정치’라는 바다에 뛰어들어 ‘민주주의 호號’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항해해 나갈 것이다. 정치는 매우 일상적으로 접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정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며 정치라는 바다의 해도海圖를 그려보아야 물길을 잃지 않고 항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는 과연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출현한 것일까. 정치의 출현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가 특정한 목적을 이뤄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목적론’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정치가 어떤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집중해 설명하는 ‘현실주의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공자, 맹자는 정치를 목적론으로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육체적으로는 포유류 동물에 불과하지만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완성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적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의 이런 활동을 통해 정치와 국가가 육체적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사회’에서 행복과 선을 실현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윤리적 ‘정치사회’로 자연스럽게 진화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과 춘추전국 시대 중국의 스승인 공자는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했는데, 이들 모두 정치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출현했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치는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를 조화롭게 실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공자는 《논어》에서 ‘정자정야政者正也’, 즉 정치란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공자를 이은 맹자도 양혜왕이 “장차 우리 나라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자 “왕께서는 하필 이利를 이야기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만 있을 뿐입니다”라면서 정치는 오로지 사랑과 정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을 지닌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정치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고 지위, 기술, 지식과 같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필요’ 때문에 생겨났다는 뜻이다. 현실주의적인 정치 출현 이론은 놀랍게도 성경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구약 신명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와의 언약을 통해 갈등 해결 방법, 율법, 의식, 생활규범을 자세하게 규정한 헌법을 만들어 인간의 정치생활을 신의 이름으로 규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구약 사무엘 상 8장은 예언자 사무엘이 정치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이해한 최초의 현실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세우려 하자 “신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한 상태인데, 인위적으로 왕을 세우게 되면 왕과 인간은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에 들어간다”며 반대했다. 사무엘은 병역, 납세, 징용의 의무를 져야 하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며 왕에게 복종해야 하는 데도 왕을 세워야겠느냐면서 이스라엘인들을 말렸으나, 이스라엘인들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며 집단적 의지를 관철해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이스라엘 왕국을 탄생시켰다.
현실주의 이론은 정치가 왜 필요했으며, 어떻게 출현했는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한다. 앞서 살펴본 구약 사무엘 상 8장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고 무기를 비축하는 등 공공재를 마련하고자 정치가 출현했다는 ‘공공재 정치이론’을 이야기한다. 한편 정의학자 러셀 하딘은 무정부적인 자연 상태에서 벌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상호 협력으로 조정하기 위해 정치가 출현했다는 ‘조정이론’을 제시했다.
또한 토머스 홉스는 ‘사회계약론’으로 정치의 출현을 설명했다. 인간은 ‘외롭고, 빈곤하고, 비열하고, 잔인한’ 자연상태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가 되고 그 결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가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죽음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최악의 자연 상태에 있던 인간들이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받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어 국가를 건설한 것이 곧 정치의 출현이라고 본 것이다. 이들 설명의 공통점은 국가 또는 정치가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국가를 만든 것은 시민의 안전 보호나 갈등 조정을 하는 데 있어 국가가 어떤 사회집단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다른 사회집단보다 근대 국가가 우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를 “국가가 물리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이 남에게 피해를 입었다 해서 상대의 신체를 구속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사적으로 보복하면 불법이 된다. 하지만 국가는 죄가 있는 사람을 합법적으로 인신 구속하거나 필요하다면 무력도 동원할 수 있다.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면 군사력을 동원해 싸울 수 있다. 이렇게 합법적인 강제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는 대외적으로 배타적인 주권을 유지하고, 국내에서는 위계에 의해 인적, 물적 자원을 통제해서 국민 모두를 위한 자원 생산과 공급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현대의 현실주의 정치이론가인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했다. 경제는 돈을 배분하고, 문화는 상징을 배분하고, 정보통신기술IT은 정보를 배분하고, 사회 자본은 신뢰를 배분한다면, 정치는 ‘권력’을 배분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도 정치를 ‘누가, 언제, 어떻게 가치와 자원을 획득하는가를 결정하는 기제’로 정의한다.
그렇다고 목적론과 현실주의 정치이론이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두 이론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막스 베버는 근대국가를 현실주의적으로 정의했으나, 동시에 ‘근대국가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목적론적 정의도 덧붙였다. 베버는 근대국가 권력은 국민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정통성 있는’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들에게 열정과 신념을 지키고 정치적 이상을 추구하되, 차가운 정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하고, 항상 양자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권고했다.
민주주의의 발명, 승리,
위기 그리고 혁신
민주주의는 기원전 5세기에 고대 아테네 도시국가polis에서 발명되었다. 민주주의호의 항로는 순탄하지 않았고 승리와 패배, 그리고 부활의 순환을 반복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참주정의 도전을 받았고, 로마의 공화주의는 제국에 의해서 종말을 고한 뒤, 민주주의는 긴 중세의 잠에 빠졌다.
민주주의는 근대의 여명을 알린 르네상스 시대에 그레코-로만, 즉 그리스 로마 식 공화주의 형태로 자유도시국가에서 부활했으나, 당시 대세는 절대주의 국가였다. 근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자유주의적 대의代議민주주의가 등장하여 보통평등선거원, 대의제, 연방제, 비례대표제와 같은 제도적 혁신을 통해 발전했지만, 근대 민주주의호는 항상 독재와 전체주의 같은 적선敵船에 둘러싸여 있었다. 민주주의는 근대 세계에서 ‘예외적’인 정치체제를 면치 못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비민주적 또는 반민주적 정치체제가 정상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보통선거권이 실현된 1828년부터 1992년까지 세 차례의 민주화 물결로 자유민주주의는 지구촌의 보편적인 정치체제가 되었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헤겔이 이야기한 역사의 진보가 최종적으로 실현되었다고 《역사의 종언》에서 선언했다. 하지만 2011년과 2012년에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난 네 번째의 민주화 물결이 곧 역류하면서 ‘민주주의가 역사의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후쿠야마의 승리 선언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재 선진 민주주의 국가나 신흥 민주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많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치고 있으며, 이 틈을 노린 극단주의자와 포퓰리스트의 공격으로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시민들은 현존 민주주의에 대해 실망하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과연 민주주의가 최상의 정치체제인지 의심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도 세계적 민주화의 물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시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많은 식민지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의해 ‘민주화’되었을 때 이 물결에 동승해, 1948년에 신생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이승만 자유당정권의 민간 독재로 민주주의가 역류하는가 했으나 한국 시민들은 4·19 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제2차 세계적 민주화의 역류 물결에 예외가 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1년 만에 5·16 군사쿠데타로 어렵게 이룩한 신생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그 후 26년간 군부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은 자생적이고 자발적인 민주화 운동을 통해 1987년 6월에 민주주의를 회복시켰고, 지금까지 세 차례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해 민주주의를 확실히 뿌리내렸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지속가능성과 내구성에서나 자유, 평등, 책임성, 응답성 등의 면에서 모두 ‘질 높은 민주주의’로 발전했다. 하지만 세계의 다른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현존’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세계화, IT혁명, 4차 산업혁명이 주는 기회를 활용해서 새로운 민주주의로의 혁신을 이루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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