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어느 ‘슈퍼전파자’의 고백
이 책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황당한 포스트모던 전염병에 대한 역사를 엮은 것이 아니며, 팬데믹의 세계사를 정리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지질학적 재난에서 지정학적 재난, 또 생물학적 재난에서 기술적 재난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참사에 대한 일반적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 모든 재난이 그렇지만, 특히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재난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이러한 폭넓은 시각에서 보는 것 괴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의 생전에 지금처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심대함과 동시에 과거에 대한 무지가 하늘을 찌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 심각성와 의미를 파악한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나는 2020년 1월 26일에 쓴 글에서 이 사태가 전 세계적 팬데믹이 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나를 그저 괴짜로만 여겼다(당시 다보스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at Davos에 모인 이들 대다수는 분명히 그랬고, 이 사태의 위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폭스 뉴스Fox News든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든 당시의 매체들은 한결같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을 그저 겨울에 유행하는 독감 이상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2월 2일에 쓴 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유행병이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에서 돌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곧 세계적 팬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상당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우리는 이상한 숙명론 같은 것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대부분은 여전히 외국 여행 계획을 취소하지 않았고, 마스크도 귀찮다며 쓰지 않고 있다. 위험한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이상한 숙명론을 떨쳐내는 것이 우리에게 닥친 도전이다.
지금 돌아보니 이 문장들은 사실 나 스스로의 행태를 실토한 것이었다는 점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나는 과거 20년의 대부분 동안 그랬듯 2019년 1월과 2월에도 이 나라 저 나라를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다. 런던에서 댈러스, 댈러스에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에서 홍콩1월 8일, 대만1월 10일, 싱가포르1월 13일, 취리히1월 19일, 다시 샌프란시스코1월 24일, 푸드 로더데일1월 27일 ― 이것이 나의 1월 여정표였다. 마스크는 한두 번 쓰긴 했지만 1시간쯤 지나고 나니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벗어버렸다.
2월에도 1월과 거의 비슷한 빈도로 쏘다녔다. 뉴욕, 선 밸리, 보즈먼, 워싱턴 D.C., 리포드케이 등 비록 이동 거리는 짧아졌지만 말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느냐고 여러분이 내게 물을 듯한데, 강연 일정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잡혀 있어서 나는 ‘국제적인 역사 과목 일타강사’가 되었다는 농담을 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나는 어쩌면 ‘슈퍼전파자’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미친 듯 여행을 다니면서 아시아에서 세계 곳곳으로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수 있으니까.
2020년 상반기에 내가 매주 쓴 신문 칼럼은 일종의 전염병 일지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내 몸이 2월 거의 내내 아픈 상태였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심히 고통스런 기침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카치위스키를 마셔대야만 했다. 2월 29자 칼럼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조부모님들을 걱정하자. 40세 이하의 사람들에 대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0에 가깝지나 80대에선 14퍼센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 글에 쓰진 않았지만 천식을 앓는 50대 중반의 경우 역시 치사율이 높다는 우울한 데이터도 있었다. 또한 나는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두 번이나 검사키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야 했다당시 미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러했다는 이야기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그저 이 사태가 심각하다는 점, 그리고 나와 내 가족만 이 위험에 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건 그냥 독감일 뿐이야.”라고 경망스럽게 말하는 이들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이 병은 초기 단계에서 감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큰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감염되어 병을 옮기며 다니는 중임에도 아무 증상조차 없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의 수를 확실하게 파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그 재생산 지수도, 또 그 치사율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백신과 치료제도 없는 상태고 말이다.
3월 8일자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 기고한 다른 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미국의 인구당 감염자 비율이 한국과 동일하다면 미국 내 감염자 수는 곧 4만 6,000명에 달할 테고 사망자 또한 300명을 넘을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의 치사율이 이탈리아와 같다면 사망자 수는 1,200명에 이를 것이다.” 이 글을 쓸 당시 미국 전체의 확진자 수는 541명, 사망자 수는 22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2주 후인 3월 24일이 되자 확진자는 4만 6,000명에 이르렀고, 3월 25일엔 사망자 수가 1,200명으로 늘었다. 3월 15일에 쓴 글을 다시 본다. “어제 뉴욕의 JFK 공항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돌림병이 돌 때마다 사람들이 했던 일, 즉 큰 도시를 벗어나는 (그러면서 바이러스를 사방에 퍼뜨리는) 일을 하는 이들로 말이다. (…) 우리는 이제 팬데믹의 패닉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날은 나 역시 아내와 가장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캘리포니아에서 몬태나까지 비행기로 이동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몬태나에서 꼼짝 않고 지내는 중이다.
2020년 상반기에 내가 생각하고 또 글을 썼던 주제는 거의 전부가 코로나19였다. 나는 왜 이 문제에 그토록 강렬히 집착했을까? 물론 가장 핵심적인 전문 분야는 금융사金融史이지만,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인 대학원생 시절에 1892년의 함부르크 콜레라 사태를 연구한 이래 나는 역사에서 질병이 차지하는 역할에 항상 깊은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콜레라 사태에 대해선 리처드 에번스Richard Evans가 세세하고 꼼꼼한 연구를 내놓은 바 있는데, 그의 저서를 보면서 나는 치명적인 병원체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사태는 해당 병원체의 공격에 노출된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에번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함부르크에서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보다 사람들을 더 많이 죽인 원흉은 바로 계급 구조였다고 한다. 이 도시의 토지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탄탄한 기득권을 이용하여 도시의 낡은 상하수도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하게끔 철저하게 막아섰고, 가난한 이들의 치사율은 부자들보다 무려 열세 배가 높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끔찍한 전쟁The Pity of War』을 저술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했을 때 나는 1943년에 독일군이 갑자기 무너진 이유를 암시하는 통계를 접하고서 충격을 받았다. 최소한 그 부분적인 원인은 갑자기 군대 내에 돌림병자가 폭증했기 때문이었고, 그 병은 다름 아닌 스페인 독감이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내 또 다른 저서인 『증오의 세기The War of the World』는 1918~1919년에 있었던 팬데믹의 역사를 좀더 파고들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해서 스페인 독감과 볼셰비즘 이데올로기라는 두 개의 팬데믹으로 끝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 바 있다.
2000년대에 들어 내가 여러 제국들에 대해 집필한 저작 『제국Empire』 역시 전염병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대륙’에 유럽인들이 정착한 과정을 이야기하다 보면 질병이 수행했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1690년대에 캐롤라이나의 총독이었던 존 아치데일John Archdale이 냉혈한처럼 말한 바 있듯, “영국인들에게 자리를 내주려면 인디언들의 머릿수를 줄여야” 했을 것이다『제국』 2장의 제목은 ‘백색 역병white Plague’이다. 또한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 파견되어 열대 지방의 질병과 마주해야 했던 영국군 병사들의 끔찍한 생존율도 충격적이었다. 그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두 명 중 한 명꼴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저서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The Civilization』을 쓸 때 나는 서양인들의 정착지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근대 의학이 맡았던 역할에 한 장 전체를 할애했다. 근대 의학을 통해 식민지 체제가 형성되었고 인류가 각종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이 개선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된 방법이 심히 잔인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또한 『니얼 퍼거슨 위대한 퇴보Great Degeneration』에선 본질적으로 ‘전염이 퍼져나가는 속도와 정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 바이러스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네트워크의 구조’라는 생각을 토대로 세계사를 일별한 바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2020년 9월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혈청학적 통계 조사에 근거하여 판단해볼 때 전 세계의 확진자 수는 거의 2,6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사망자 또한 90만 명에 육박하는데, 일부 큰 나라들ㅗㅗ특히 이란과 러시아의 통계치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누적 사망자 수의 증가율은 6퍼센트를 넘고 있으며, 건강에 영구적 손상을 입은 이들의 수는 지금껏 전혀 추산조차 된 바 없다. 영국의 천문학자 리스 경Royal Lord Rees은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와 “생물학적 테러 혹은 생물학적 사고로 인해 6개월 안에 100만 명이 희생되는 사태가 2020년 12월 31일 이전에 발생할 것”을 놓고 내기를 벌였는데, 아무래도 승자는 리스 경이 될 듯싶다. 일부 감염학자들은 경제적 봉쇄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최종적인 사망자 수가 3,000만~4,000만에 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정부가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사람들의 행동에도 그간 여러 변화가 있었으니 분명 그렇게까지 숫자가 치솟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비非의학적 개인들’로 인해 세계 경제가 받은 충격은 2008~2009년에 있었던 금융위기보다 훨씬 커서, 1930년대 대공황 다시의 충격이 몇 년이 아닌 몇 개월로 압축된 수준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19 사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체 나는 무슨 역사책을 쓴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이 책은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나타난 이 황당한 흑사병의 역사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물론 9장과 10장에선 이번 전염병을 잠정적으로나마 개괄하고 있다 나는 팬데믹뿐 아니라 지질학적 참사지진에서부터 지정학적 참사전쟁, 또 생물학적 참사팬데믹에서부터 기술적 참사핵발전소 사고 등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재앙들을 폭넓게 다루며 재난의 일반사를 쓰고자 한다. 지구와 충돌하는 소행성, 화산 폭발, 지독한 기후 재난, 기근, 파국적 사건들, 경제공황, 혁명, 전쟁, 인종학살 등 오만 가지의 삶과 오만 가지의 삶과 오만 가지의 죽음이 이 책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현재의―사실은 그 모든―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과연 있을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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