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쉼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한국어로 숫자 읽기를 어려워합니다. 아라비아 숫자를 쓸 때 세 자리마다 찍는 쉼표 탓입니다. 가령 이렇게 말이지요.
2,159,524
왜 세 자리마다 쉼표를 찍을까요. 영어권에서 세 자리마다 쉼표를 찍어서 그렇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왜 세 자리마다 쉼표를 찍을까요. 세 자리마다 숫자 단위의 이름이 달라져서 그렇습니다. 가령 위 숫자를 영어로 읽으면 two million one hundred fifty-nine thousand five hundred and twenty-four입니다. 영어에서도 쉼표 앞의 자리만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오른쪽부터 첫째 쉼표 앞자리는 thousand 곧 ‘천’이고 둘째 쉼표 앞자리는 million 곧 ‘백만’입니다. 그래서 2,000,000은 million이 두 개 있다고 해서 two million이고 159,000은 thousand가 159개 있다고 해서 one hundred fifty-nine thousand입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네 자리마다 숫자 단위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영어는 one, ten, hundred 다음에 one thousand가 오고 다시 ten thousand, hundred thousand를 거쳐 one million이 되지만 한국어는 일, 십, 백, 천 다음에 만이 오고 다시 일만, 십만, 백만, 천만을 거쳐 일억, 십억, 백억, 천억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한국어 숫자 읽기를 가르칠 때는 마음속으로 쉼표를 네 자리마다 찍으라고 합니다. 그럼 아주 잘 읽습니다.
영어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아라비아 숫자를 쓸 때 세자리마다 꼬박꼬박 쉼표를 찍지 않습니다. 주식 시장은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있지만 오직 한국 주식 시장에서는 주가 지수에 쉼표를 찍어줍니다. 누구를 위해서 쉼표를 찍어주는 것인지 납득이 잘 안 됩니다.
쉼표는 한국어 숫자 표기에서만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한국어 문장에서도 쉼표가 부쩍 늘었습니다. 하지만, 따라서, 더욱이, 다음에는 무조건 쉼표를 찍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영어에서 however, therefore, moreover 다음에는 쉼표를 찍으니까 그냥 따라서 찍는 거겠지요. 단어 차원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자가 자기소개를 안 했으면, 통 못 알아볼 뻔했다.
그 남자를 좋아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존경은 한다.
그 남자는 한번 마셨다 하면, 멈추질 못한다.
긴 문장이 아닌데도 별 생각 없이 글 안에 쉼표를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역시 영어의 영향 탓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영어에서 쉼표를 찍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가령 이런 영문이 있다고 합시다.
Although the shooting has stopped for now the damage is enormous.
이 영문은 모호합니다. ‘총격이 그쳤지만 당장은 피해가 막심하다’고 볼 수도 있고 ‘당장은 총격이 그쳤지만 피해가 막심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앞의 뜻이 되려면 for now 앞에 쉼표를 찍어야 하고 뒤의 뜻이 되려면 for now 뒤에 쉼표를 찍어야 합니다.
영어에서는 although 같은 접속사가 거느리는 종속절이 앞에 오면 종속절이 어디에서 끝나고 주절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속절과 주절이 갈리는 곳에 쉼표를 찍어줍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지만’ 같은 영어 접속사 although에 해당하는 어미가 문장 중간에서 종속절을 잘 매듭지어주므로 쉼표에 크게 안 기대어도 됩니다. 영문에서도 주절이 앞에 오면 종속절 앞에 쉼표를 안 찍어도 됩니다. 종속절을 이끄는 although 같은 접속사가 문장 중간에 박혀서 종속절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잘 알려주니까요.
The damage is enormous for now although the shooting has stopped.
The damage is enormous although the shooting has stopped for now.
처음에 예로 든 세 국문은 아래 세 영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If she hadn’t introduced herself, I would never have recognised her.
Although I have never liked him, I do respect him.
When he starts drinking, he can’t stop.
종속절이 앞에 오는 영문을 쉼표까지 그대로 살리는 번역의 영향을 받아 한국어로 글을 쓸 때에도 기계적으로 쉼표를 찍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영문이든 국문이든 글쓰기의 이치는 같습니다. 군살 없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불필요한 쉼표는 글을 지저분하게 만듭니다.
한국어는 ‘-면’ ‘-지만’뿐 아니라 ‘-고’ ‘-며’처럼 어미가 발달해서 쉼표에 기대지 않고도 글을 얼마든지 길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1.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 나라 국민은 애국심이 강하고, 재간이 많고, 외국이 자기네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며, 어느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싶어한다.
2.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 나라 국민은 애국심이 강하고 재간이 많고 외국이 자기네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며 어느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싶어한다.
여러분은 쉼표를 찍은 문장 1과 안 찍은 문장 2 중 어느 쪽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시나요? 고정관념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글을 읽다가 쉼표를 만나면 자꾸 호흡이 끊기는 느낌이 들고 가독성도 떨어진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중략)
쉼표는 서양에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쉼표 같은 문장부호를 처음에는 안 썼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글은 입으로 소리 내어 낭송하라고 쓴 것이었지 눈으로 말없이 묵독하라고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수사학을 배우는 것은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수사학이 중요했던 것은 글을 잘 쓰는 데 도움을 주어서가 아니라 말을 잘하는 데 도움을 주어서였습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발달했던 그리스에서 광장에 모인 군중을 설득하려면 정치인의 언변이 뛰어나야 했습니다. 말솜씨가 먼저였지 글솜씨는 뒷전이었습니다.
지나간 영국 작가 중에서 아서 쾨슬러, 힐레어 벨록처럼 온전히 책을 써서 생계를 꾸려간 다작 저술가는 비서에게 구술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절대 다수의 현대 작가는 자기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본인의 손으로 적어내려 갑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는 절대 다수가 구술에 기댔습니다. 작자가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적는 서자가 따로 있었습니다. 서자는 주로 노예 아니면 노예 출신 자유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서자는 글은 깨쳤어도 학식이 아주 깊지는 않았습니다. 작자가 불러주는 내용은 문장부호와 띄어쓰기도 없이 무작정 받아적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글을 안다고 해도 낯선 책을 선뜻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훈련받은 전문가의 몫이었습니다.
로마 시대로 내려와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아울루스 겔리우스라는 2세기 로마 작가는 처음 접하는 글을 사람들 앞에서 낭송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용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글을 어떻게 읽는단 말인가 제대로 끊어읽지 못해 어지러울 텐데” 하며 난감해했습니다. 세르비우스라는 4세기 로마 문법학자는 한 낭송자가 트로이 함락 뒤 피난길에 올라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의 주인공 아이네아스의 유랑을 노래했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구절 collectamexiliopubem을 collectam exilio pubem피난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아니라 collectum ex ilio pubem트로이에서 몰려든 사람들으로 잘못 읽었다며 나무랐습니다.
쉼표, 콜론, 마침표 같은 문장부호는 사람들 앞에서 글을 소리 내어 읽는 낭송자나 글을 배우는 학생에게 끊어읽는 곳을 알리려고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던 아리스토파네스라는 문법학자가 개발했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점의 위치로 숨 길이를 구분했습니다. 꼭대기에 찍은 점은 숨을 가장 길게 쉬었고 지금의 마침표에 해당했습니다. 밑바닥에 찍은 점은 숨을 덜 쉬었고 지금의 콜론 곧 쌍점에 해당했습니다. 가운데에 찍은 점은 숨을 가장 짧게 쉬었고 지금의 쉼표에 해당했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대다수 저술가는 문장부호를 여전히 하찮게 여겼습니다. 로마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래 로마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 점을 찍는 전통이 있었지만 그리스 ‘선진’ 문명에 압도된 나머지 그리스처럼 글자를 붙여썼습니다. 로마의 정치인이며 명연설가였던 키케로는 모름지기 글이란 리듬으로 읽어야 한다며 문장부호를 찍는 사람을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퍼지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기독교인은 신의 말을 정확히 옮겨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글을 정확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6세기가 되면 기독교 저자는 본인의 책을 쓰면서 문장부호를 써넣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글은 입으로 한 말을 그대로 적어놓은 입글이었습니다. 글을 입으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시대가 열리면서 기독교 교부가 쓴 글은 마음속의 믿음을 정확히 담아내려 했습니다. 뜻을 정확히 담아내려다보니 문장부호에 기댔고 문장부호 덕분에 글의 문턱이 낮아지다보니 글을 눈으로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시대에 들어와서 글은 낭독하는 입글이 아니라 묵독하는 눈글로 바뀌어갔습니다. 세비야의 대주교 이시도르560?~636는 사장되었던 아리스토파네스의 문장부호를 재발굴해서 널리 알렸습니다. 이시도르는 글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수월하다며 낭독보다 묵독을 권장했습니다.
점이나 빗금으로 나타냈던 쉼표를 지금의 맵시 있는 꼬리점,으로 바꾼 사람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선도한 베네치아의 출판업자 알두스 마누티우스1449~1515였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유럽은 지중해를 통해 인도, 중국과 교역했는데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가 바로 베네치아였습니다. 베네치아는 유럽의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면서 엄청난 경제력을 쌓았습니다. 1453년 동로마제국 곧 비잔티움제국이 오스만제국에게 멸망하면서 베네치아는 문화 도약의 호기를 맞았습니다. 그리스어권이었던 비잔티움제국에서 그리스어에 능한 지식인이 베네치아로 대거 망명하면서 베네치아는 고대 그리스 문화 중흥의 거점이 되었고 출판업은 문화 중흥의 핵심이었습니다. 마누티우스는 중구난방이었던 문장부호 체계를 깔끔하게 가다듬었습니다. 마누티우스가 정리한 문장부호는 마누티우스가 찍은 인쇄본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마누티우스는 글을 정확히 독해하는 데 중점을 두어 쉼표를 찍었지만 저자들은 숨 쉴 만한 곳이 되었다 싶으면 쉼표를 찍으면서 쉼표를 거침없이 써나갔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영국의 저자들은 독자가 글을 읽어나갈 때 숨 쉬는 곳을 알릴 셈으로 쉼표를 찍었습니다. 낭독자의 쉼표였습니다. 조지프 로버트슨이라는 영국 평론가는 1785년에 낸 《구두법론》이란 문장부호 입문서의 서문에서 문장부호는 글을 명료하게 만들어주므로 글쓰기에서도 중요하지만 복잡한 문장을 적절히 끊어가며 멈출 곳을 나타내주므로 글읽기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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