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후 변화, 인류의 진화를 추동하다
― 기후 변화와 인류의 이동
중생대 백악기 말의 운석 충돌에 따른 환경 변화로 공룡이 멸종한 후, 지구는 온화한 제3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제3기 후반부 마이오세부터 기온이 점차 하강해 지구에는 빙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플라이오세를 거쳐 제4기가 시작되면서 기온은 더욱 떨어졌다. 낮아진 기온 탓에 지구의 빙하는 거대해졌다. 제4기는 우리가 흔히 빙하기라 부르는 시기다.
기후 변화와 직립보행
중앙아프리카 차드에서 화석이 발견된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와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확인된 오로린 투게넨시스Orrorin tugenensis는 고인류 학계에서 최초의 인류 후보로 꼽는 종들이다. 특히 오로린은 넓적다리뼈의 형태가 직립보행의 특징을 갖추고 있어 인류의 최초 조상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는 대략 700만~600만 년 전으로 지구의 한랭화가 시작되던 마이오세 말이다그림 1.1. 기후 변화는 이 최초의 인류가 인간-침팬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기한 뒤 초기의 직립보행 기능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기후가 눈에 띄게 건조해지면서 빠른 속도로 환경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숲은 감소했고 사바나 지역은 늘어났다.
축소되던 숲의 주변부에서 나무 열매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인류의 조상 중 일부가 사바나 지대로 내려왔다. 먹을거리를 두고 벌이던 경쟁에서 밀렸거나 아니면 모험심이 강한 개체였을 수 있다. 이들은 기후 변화로 나타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직립보행을 시작하게 된다. 사바나 환경에서는 두 발로 서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동물이 유리했다. 숲보다 먹을거리가 부족한 사바나 지대에서 살아남으려면 훨씬 많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네 발로 걷는 것보다는 두 발로 걷는 것이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또한 사바나 지대에서 채집할 거리를 찾거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맹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두 발로 서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유리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인골 덕분에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루시’라는 이름이 붙은 이 인골은 대략 390만 년에서 32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한 여성의 뼈대로 추정된다. 루시의 뼈 형태에서 드러나듯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확실히 두 발로 서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기후가 지속적으로 건조해지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숲이 사라진 자리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바나 식생에 적응해야 했다. 이들은 부드러운 열매가 아닌 질긴 풀, 뿌리, 씨앗을 주식으로 삼았다. 당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냥을 하지 못했으므로 맹수들이 먹고 남긴 동물의 썩은 시체는 이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턱뼈는 식물을 잘게 부수기에는 좋았지만 살코기를 물어뜯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이들은 동물 뼈에 붙어 있는 고기를 떼 토막 내기 위해서라도 도구를 사용해야 했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한 역사는 장구하다.
이후 약 280만 년 전, 호모 속의 첫 단계인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아프리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190만 년 전에는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출현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어금니 크기가 확실히 작았다. 성분이 부드러운 뿌리 열매 혹은 고기를 지속적으로 먹으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죽은 동물의 살코기는 오랫동안 고인류에게 단백질을 제공하는 중요한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였지만, 다른 동물과의 경쟁 속에서 원하는 만큼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호모 에렉투스는 수동적인 청소부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수렵 활동을 펼치는 전문 사냥꾼으로 변모하게 된다.
호모 에렉투스는 사냥감을 쫓아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유라시아는 물론 멀리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했다. 동남아시아까지 퍼져나간 호모 에렉투스의 장거리 이동은 직립 원인을 뜻하는 ‘에렉투스erectus’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두 발로 보행하면서 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직립보행은 이미 오래전,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전에 이루어진 변화였으므로 직립한 사람이라는 뜻인 호모 에렉투스라는 학명은 그리 정확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호모 에렉투스가 엉덩이뼈와 다리뼈 등의 진화를 통해 에너지 측면에서 이전 고인류보다 효과적으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두 발로 걸으면서 부수적으로 손과 팔의 자유를 얻었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채집 도구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식량을 확보하기가 더 쉬워졌다. 도구로 가공된 음식물을 섭취함에 따라 영양분의 흡수율은 높아졌다. 직립보행 덕에 손짓을 이용한 의사소통이 상시 이루어지면서 동료와의 협업 수준이 올라갔다. 무엇보다 정확한 소통에 기반한 긴밀한 협동 덕에 대형 동물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직립보행과 함께 초기 인류의 뇌 기능 또한 크게 상승했다. 이전에 먹을거리 확보와 소화에 투입되던 에너지의 일부를 뇌로 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바나 지역에 서식하던 대형 포유류의 사냥을 위해 협업이 일상화되고 상호 교류가 활발해진 것도 뇌의 용량이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데 일조했다. 무엇보다 제4기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은 호모 속의 뇌 기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들은 뇌의 발달로 몸동작과 함께 표정까지 다양해졌고, 결국 언어를 구사하는 단계에 다다르게 된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뇌를 지녔기 때문에 지구에서 가장 강한 동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인간의 뇌 발달은 결국 기후 변화가 인간의 직립보행을 유도하고 생존 본능을 일깨운 결과로 창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기후는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인이었다.
낮아진 해수면과 인류의 장거리 이동
몸의 진화 덕에 호모 에렉투스는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탈출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진화는 광범위한 확산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왜 이동하기 시작했을까? 사바나 식생이 확장하면서 인류의 조상이 처음 두 발로 걷기 시작했던 것처럼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변화가 호모 에렉투스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하고 이동했던 190만~160만 년 전은 지구가 빙하기로 진입한 후 지속적으로 기후가 악화되는 시기였다.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호모 에렉투스는 생존을 위해 이동을 결심한다. 또한 기온 하강으로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도보로 홍해를 통과해 아프리카를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도 그들이 유라시아로 퍼져나갈 수 있던 한 요인이었다.
한편 최근에는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처음 기원한 후 아프리카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 밖으로Out of Africa’라는 오랜 가설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 가설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예상 밖의 고인류학적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은 곧 호모가 아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프리카에서 먼저 이동해 나와 아시아에 정착했고, 이들로부터 호모가 기원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또한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난 이후 수차례에 걸쳐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호모 에렉투스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앞서 봤듯이 이견이 존재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편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은 호모 에렉투스의 경우와는 다른 조건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습윤해진 기후 덕에 사하라 사막의 일부가 스텝이나 사바나 식생으로 덮여 이동 통로가 확보될 때 움직였다. 식생 지대를 따라 북부 아프리카를 건넌 후 홍해의 양 끝을 통해 아라비아 사막이나 레반트 지역으로 이동했다.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에 의해 북반구에 유입되는 일사량이 증가하고 열대수렴대의 위치가 북쪽으로 이동한 시기가 12만 5000년 전, 10만 년 전, 7만 5000년 전, 5만 5000년 전, 3만 년 전이다. 대략 2만~2만 5000년 주기로 북부 아프리카 지역의 강수량은 높아졌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사막은 축소되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욕구와 모험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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