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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로에서 멈춘
강서습지의 삵 영준이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보이는 한강의 양옆으로 세속 도시의 수직 구조물이 가득하다. 한강은 족쇄에 채워져 인간 앞에 무릎을 꿇은 맹수의 표정으로, 박제화된 거대한 하수구로 전락하여 대도시의 한복판을 기어이 통과한다. 한강은 굽이치지 못하고 여울지지 못한다. 한강은 공격사면강물이 들이치는 곳 산모퉁이를 허물어 내지 못하고 활주면에 반짝이는 모래톱을 키워내지 못한다. 상류는 수많은 댐으로 막혔고, 도심 구간 유역은 콘크리트 둑방과 강변북로, 올림픽대로로 꽁꽁 포위되었다. 방화대교를 지나면 비로소 한강은 도심 구간을 뒤로 밀쳐 내면서 강안과 주변 산능선을 조금씩 회복한다.
방화대교 남단에서 행주대교 남단 사이 한강둔치에는 강서습지생태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수령 30년 이상의 버드나무숲과 갈대습지, 담수지와 저습지가 어울러져 야생성을 구긴 한강의 체면을 그나마 세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는 천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아간다.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 구조물이 도시에는 가득 차 있다. 놀랍게 그 도시에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도시의 구조물 틈에서 야생동물의 이야기가 간간이 들려온다. 종묘와 양재천의 너구리, 한강의 살쾡이, 중랑천의 수달, 북한산의 멧돼지, 용마산과 인왕산의 산양 등.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도시로 왔는지,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도시로 왔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
발신기를 채운 삵과 너구리를 대상으로 무선 추적 연구를 했다. 도시에서 그들의 삶은 어떠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아내려 애썼다. 그들을 좀 더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시간과 공간에 적응해야 했다. 나도 따라 야행성 동물이 되어야 했다. 날이 밝고 삵과 너구리의 움직임이 잦아들면 나도 하루 일과를 마무리지었다. 강서습지는 야생동물 공부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가진 연구 대상지였다.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만큼 용감했다. 부딪히면 넘어지고, 일어서다 다시 부딪히고. 그리고 다시 일어서고를 반복했다.
발신기를 달고 있는 개체와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듯했다. “뚜뚜뚜” 발신기에서 규칙적으로 울리는 신호음은 은근 중독성이 있다. 소싯적 유행했던 집중력 향상 기계의 공부 유도음 같기도 하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신호음은 때로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초단파 파장VHF은 직진한다. 단파처럼 지구를 둘러싼 전리층에서 반사되지 않고 통과해 버리기 때문에 초단파를 이용한 통신은 대상물의 일직선 범위 내로 한정된다. 따라서 산과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신호가 들리지 않는다. 반면 해당 발신기와 거리가 멀어도 무려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도 중간에 가로막힌 장애물이 없으면 신호가 들린다.
밤샘 무전 추적은 외롭고 힘든 작업이었다. 안테나를 휘저으며 녀석의 방향과 위치를 가늠했다. 한 달에 일주일 남짓 강서습지에서 삵과 너구리를 따라다녔다. 짧게 스쳐간 개체도 있었고, 2년 가까이 서로를 의식하며 관계를 이어간 아이도 있었다.
알싸한 추위가 들이닥치기 시작한 12월 중순에 강서습지에 트랩을 놓고, 미끼를 넣어두었다. 트랩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신호를 보내는 트랩 발신기를 설치했다. 트랩에 갇힌 동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빠른 처치를 위해 인근에서 대기했다. 첫 기다림인만큼 설레임과 기대가 컸다. 트랩을 작동한 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트랩 발신기에서 신호가 울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트랩에 접근하니 “크으윽 크엌” 웬 생명체가 쇠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경계음을 내고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이었다. 트랩에 들어온 삵은 잔뜩 웅크린 채 경계하고 있었다. 주사제로 마취한 뒤 재빨리 목걸이형 발신기를 달았다. 몸무게 5.9킬로그램의 건강한 수컷 성체였다. 이빨 마모도 적고 털 상태도 훌륭했다. 삵과 같은 육식동물의 신체 중 중요한 부위는 바로 이빨이다. 사냥감의 제압과 사냥의 성공을 위해 건강한 이빨, 특히 날카로운 송곳니의 유지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나이 들어 이빨 상태가 좋지 않은 육식동물은 사냥 성공률이 떨어져 자연스레 도태된다. 이 녀석은 젊고 건강한, 강서습지를 호령하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각성제를 맞은 녀석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귀가 먼저 조금씩 펄럭거리더니 고개를 뱅뱅 돌리면서 점차 정신을 차려간다. 네발로 지탱해 지면에서 완전히 일어나 다시금 야생 특유의 경계심을 찾으면 비로소 방사할 때가 된 것이다. 트랩 문을 열고 조심스레 옆으로 빠지자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힘차게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뛰어나갔다. 방사하는 순간을 촬영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갈대밭으로 뛰어들기 직전 녀석의 복실한 꼬리를 찍은 것이 전부였다. 녀석의 이름은 마취를 도와준 수의사를 이름을 따 ‘영준이’로 지였다. 야생성을 잃지 않은 사나운 성질이 그를 빼닮았다.
안타깝게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이 땅에서 매력적인 맹수들을 잃어버렸다. 호랑이는 1920년대, 표범은 1970년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삵은 우리나라 야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고양잇과 야생동물이 되었다. 삵은 중간 포식자로서 육상생태계먹이사슬에서 설치류를 제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식자인 삵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강서습지의 먹이사슬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야생동물은 생태적 가치, 경제적 가치, 문화적 가치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 내가 주목하는 것은 ‘존재 가치’다. 존재한다는 것, 우리 곁에 살아 숨 쉰다는 것, 상위 포식자며 멸종위기종 삵이 인구 천만 대도시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어쩌면 그들의 존재는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자랑이며, 그들은 천만 시민과 함께 서울시의 자랑스러운 구성원이다.
처음 해보는 무선 추적이라 안테나로 영준이가 있는 방향을 잡고 녀석의 위치를 추정하는 작업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반복되는 신호를 들으며 녀석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영준이와 무선으로 이어진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선 추적이 시작되고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영준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의 신호가 한곳에 멈춰 있었다. 영준이와 이름이 같은 수의사가 올림픽대로 한 켠에서 영준이의 주검을 찾아냈다. 영준이는 발신기를 목에 단 채 갓길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영준이 주검 곁에는 운전자가 버리고 간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 가지런한 앞니, 날카로운 송곳니, 윤기나는 털은 여전했다. 생전 건강했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혈기왕성했던 강서습지 최상위 포식자의 최후치고는 허무했다.
영준이를 잡고 나서 한동안 트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추운 겨울 기나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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